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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2월호

청책(聽策)을 너머 창책(創策)으로 청년을 믿자, 들어주자, 직접 하게 하자
청년정책은 청년들 스스로 짜도록 늘 절차를 섬세하게 관리해야 한다. 건의를 듣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청년들에게 적합하면서도 사회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만한 제도를 직접 설계해보는 힘을 기르도록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테마 토크 관련 이미지

지난해 12월 서울문화재단 공공예술센터가 주최한 라운드 테이블 <2016 청년, 문화 예술 토론>에 진행자로 참여했다. 라운드 테이블은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고 네트워킹하는 자리였다. 청년의 곁으로 다가가서 ‘듣는 자리’. 그때 답을 듣기 전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했다. 그 질문은 청년들에게 ‘무엇을 해내고 싶은가’ 하고 되묻는 질문이었다. 청년정책이 청년이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움직이고 청년에게 어떤 기회를 줘야 할까.
가상으로라도 현실성 있는 청년제도를 스스로 짜서 발표하고 이를 시민에게 홍보까지 해보도록 하는 창조행위인 ‘창책(創策)’의 기회를 꾸준히 열어주는 건 어떨까? 청년 자신을 위한 정책 설계를 해봐야, 비로소 청년이 사회 전체를 위해 정책을 짜는 상상력을 갖게 된다. 그래야 이 사회가 발전한다. 그러자면 먼저 청년들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여러 집단을 돌아다니며 들어야 한다. 또한 청년들은 지원사업을 건의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더 폭넓게 정책을 개선해 청년의 여건이 바뀌는 효과까지 다뤄야 한다. 행정 시스템의 혁신 사항을 짚고 대안을 말해야 한다.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청년이 청년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의 고민을 해결하려는 지점에 설 수 있다. 청년들이 직접 설계하고 실현가능성까지 깊이 논의하는 장을 열고, 이를 정부와 지자체에 스스로 건의하는 채널까지 구성하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사회는 그렇게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사회가 청년을 성장동력이라고 본다면 이는 당연하다. 기존의 프레임을 깨고 청년들이 사회를 설계해도 세상은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그 반대로, 창조의 질서가 시작된다. 어느 시대에나 그랬다. 청년 스스로 하게 하라.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

청년정책은 예술가에게 한정되지 않고 문화기획자에게 폭넓게 적용되어야 한다. 기업가정신을 갖고 크리에이티브한 일에 종사하는 많은 청년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가 산다.
청년을 39세 생물학적 연령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청년 문화예술인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바로 위 선배 집단을 함께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40대에 이른 문화기획자,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현장 경험과 청년기에 아쉬웠던 점을 후배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존재다. 40대가 30대에게 조언하고, 30대가 20대에게 기회를 주고, 20대가 10대를 키우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청년정책은 이처럼 청년들이 후배를 기르도록 함으로써 기성세대 선배와도 나눌 주제가 생기도록 해주어야 한다. 40대에 다다른 현장의 청년들을 꾸준히 만나면서 자신의 현장과 노동 경험이 분명한 그들의 힘을 보았다. 현장을 가진 청년들에게 비전이 있다. 우리 사회는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가.
보는 눈을 달리하면 ‘일자리 창출’ 중심의 낡은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다. 지원액과 지원자 수를 늘리는 것으로는 의존성 높은 긴급 수혈을 하는 데 머문다. 정부는 예술가 지원사업, 고용 창출, 창업자의 수를 늘리는 등 실적에 관심이 많은 반면, 청년들은 생계를 넘어선 창작의 경험과 자유, 지역사회에서 문화를 만드는 자들에 대한 존중과 격려, 큰돈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면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에 관심이 있다. 이 목소리에 충실한 정책을 짜려면 민간에서 열리는 모임에 나오는 청년 예술가, 문화기획자의 생생한 현실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포럼을 짜기보다 청년 집단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저녁 시간 살롱을 직접 열고 여기에서 나오는 건의 사항을 모으도록 해야 한다.
지난 몇 개월간 청년들 스스로 ‘힙하게합’이라는 개더링(개방적인 무리 짓기)을 해내고 청년의 어젠다, 문화 이슈, 사회문제 개선의 제안을 만들어냈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청년들의 소사이어티(유대와 교감의 장)를 만들면서도 스스로 실천하고 시민사회에 선언하고 정부에 건의하는 뜻을 모아가고 있다.

결속하고 협업할 것, 끊임없이 ‘질문’할 것

지금은 청년 문화기획자에게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가능한 지속성을 짜주어야 할 때다.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는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보다 창의적인 청년들의 ‘생존력 확보’다. 그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 제도가 한 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바꾸고 실험하고 다시 바꾸기 위해서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그간 요청한 것은 자신들의 건의사항 반영과 꾸준한 대화 기회의 마련만이 아니다. 지원금을 줄 것이 아니라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주어, 실험 작업과 탐구 체험, 사회적 실천을 공부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 기획서를 짜서 지원받는 사전 지원보다는 좋은 사회적 실천을 해낸 청년을 찾아 상을 주는 사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참신한 프로젝트를 건의하는 청년들이 모여 직접 우수한 것을 뽑아주는 제도로 동의와 결속 역시 이끌어내야 한다.
사회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청년들의 협업을 독려하는 경진대회와 보상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을 돕는 ‘착한 예술’, 세상의 문제를 밝히는 ‘나쁜 예술’을 청년들이 실천해내도록 말이다. 20년 후를 생각하는 청년의 모임을 일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기성세대 선배들은 십시일반 힘을 모아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로 청년들을 지원해야한다.
멀었다. 충분히 들어줘야 한다. 답을 줄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야 한다. 좋은 선배란 도전할 만한 좋은 질문을 주는 사람 아닌가. 문제를 스스로 찾고 함께 해결하도록 말이다. 선배들이야말로 제각각 따로 놀지 않고 협업해 함께 후배들을 도울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 육성사업, 멘토링, 심사가 있을 때에나 나타나는 것만으로는 청년들의 실천을 돕기 힘들다. 과제는 청년들이 아니라 형식적 소통에 머물렀던 선배들에게 사실상 주어진 것이다.
수개월 동안 저녁시간에 청년들의 살롱에서 끊임없이 귀 기울여 들었다. 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밝힌다.문화+서울

글 안영노
디디비 코리아 부사장
그림 손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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