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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월호

시집 서점 주인장 유희경 시인의 ‘이대 앞’이대 앞 ‘맛탕들’에 대하여
‘이대 앞’은 오랫동안 크고 작은 옷가게들이 빽빽이 자리 잡아 패션과 쇼핑으로 기억되던 곳이다.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의 단골 코스 중 하나. 그러나 이화여대와 신촌기차역 사이 지역에 요즘 들어선 작은 서점들과 골목 안쪽에 자리한 맛집 멋집은 이곳만의 ‘문화’를 엿보게 한다. 시집 서점을 연 유희경 시인은 ‘맛탕’처럼 따뜻한 이곳 가게들의 풍모가 오래갔으면 한다.

신촌기차역 맞은편에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열었습니다. 지난 2016년 6월의 일입니다. 시집만을 취급하는 서점이라는 것이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나 봅니다. 4개월 가까이 되는 동안 크고 작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꽤 알려져 손님도 많이 찾아옵니다. 손님이 온다는 것은 사람이 온다는 뜻이고 그러한 일은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처럼,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서 짧은 사이 많은 이야기가 쌓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서점의 이야기가 아니라 서점이 있는, 그래서 제가 하루 종일 머무르게 되고 만 신촌역 주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습니다. 마음의 빚 같은 것도 있고, 왜 젊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홍대 등지가 아닌 신촌에 서점을 열었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단상 관련 이미지

엄마가 사주시던 ‘맛탕’으로 기억되는 곳, 이대 앞

우선 신촌기차역 주변은 ‘신촌’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행정구획상으로도, 일반적 통념상으로도 이곳은 신촌이 아닙니다. 신촌에서 약속한 뒤 이 근방에서 기다리면 욕먹기 십상이라는 뜻이죠. 이곳의 정식 명칭은 대흥동입니다. 이제는 이화여대길이고요. 그렇지만 통상, ‘이대 앞’이라고 하죠. 이대 앞은 상점가입니다. 오래전부터 패션?뷰티 관련 가게가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대 앞 부근에서 자라서 이곳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친구와 함께 싸고 멋진 옷을 사기 위해 기웃거린 적도 있고요, 꽃다발을 들고 이대 정문 앞에 서서 ‘잠정적 동지’들과 무리 지어 서 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대 앞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엉뚱하게도 ‘맛탕’입니다. 엿기름에 고구마를 튀겨 만든 간식거리 말이죠.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얘기입니다. 엄마와 함께 이따금 이대 앞에 오곤 했습니다. 이곳을 찾는 엄마의 주된 용무는 옷 수선이었습니다. 당시 이 부근엔 솜씨 좋게 옷을 수선해주는 작은 가게가 아주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가게들이 남아 있지요) 그중 한 곳이 어머니의 단골 가게였습니다. 매번 엄마를 따라나 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부디 이대 앞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랐는데, 그 까닭은 가면 얻어먹을 수 있는 맛탕 때문이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걱정 없이 엄마와 사이좋게 어떤 것을 먹는 게 좋았던 것이겠지만요. 어쨌든 그래서 아직도 저는 ‘이대 앞’이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오게 되면 먼저 맛탕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니까 맛탕의 맛이 제게 중요한 기억이자 곧 이대 앞이라는 이야기지요.
가게의 입지에 대해 고민할 때, 저는 이 가게가 누군가의 ‘맛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외 관광객을 위한 상점만 즐비할 뿐인 거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러 찾아갈 만한 가게 하나 없이 추억 속 아련한 상점 거리가 되어가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대 앞이었습니다. 이 거리를 추억이 생길 만한 상점가로 만드는데 한몫해보자는, 귀염 섞인 포부이자 야심이 있었어요. 이따금 서점에 찾아오시는 손님 중에 이곳이 참 오랜만이라고, 언제 이러저러한 추억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 때 더없이 반갑고 감사한 것은 그러한 까닭입니다.

골목골목 자리 잡은 ‘맛탕’스러운 공간의 매력

사실, 이대 앞의 맛탕이 되어가는 곳은 저희 서점뿐이 아닙니다. 구석구석 숨어 있는 곳이 많아요. 큰길만 다녀서는 이 거리의 참멋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아니, 진짜 알짜배기는 골목골목에 숨어있습니다. ‘오래된 동네’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볼게요. 이화여대길은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편의상 앞길, 뒷길로 나눠보죠. 요란한 가게들과 행인으로 가득한 앞길과는 달리 뒷길은 접어들기 어렵고, 그래서 한적하죠. 제가 생각하는 이대 앞은, 당연하게도 뒷길 쪽입니다. 자꾸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작은 가게들이 잔뜩 있습니다. 장르문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 미스터리유니온, 소소한 한 그릇 밥으로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을 살펴주는 소오, 솜씨 좋은 타투 가게도 있고요,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민화 가게나, 한두 평 남짓한 작은 갤러리들도 있습니다. 큰돈을 벌고 싶다기보다 즐거운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그 즐거움이 손님들의 뺨에 이마에 눈에 번져 자꾸 웃게 만드는 가게들입니다. 이렇듯 이대 앞 크고 작은 골목 속에는 맛집 멋집들이 숨어 있어요. 그런 골목이 이대 앞의 진짜 풍모를 지켜주는 셈이죠.
이대 앞은 여전히 관광객의 거리입니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외국어에 ‘내’가 외국인이 된 듯한 착각마저 일어날 지경이죠. 혹자들은 관광객이 더 이상 찾지 않으면 이 거리는 어쩌나 걱정도 합니다. 또 한쪽에선 지나치게 상업화가 된다고 걱정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 분들께, 넌지시 골목을 찾아보시라고, 좁아 보이더라도 꼭 들어가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혹은 새롭게 이곳만의 기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되도록 이곳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누군가, 어릴 때 왔었어요, 하고 말해줄 때까지요.문화+서울

글 유희경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이 있다. ‘2011년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다.
그림 M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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