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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등촌동 골목에 파고든 전시 공간 ‘일년만 미슬관’ 1년 동안 이곳은 작가와 주민의 놀이터
강서구 등촌동은 주거지역과 오피스 빌딩이 적절히 섞여 있는 곳이다. 낙후되지 않은 곳이지만 문화적인 연결고리는 다소 취약한 편. 이곳에 얼마 전 전시 공간이 문을 열었다. 1년만 운영하는 공간이어서 붙은 이름은 ‘일년만 미슬관’. 한정된 기간과 생경한 위치 덕에 호기심을 끄는 이곳은 일곱 명의 작가가 공동 운영하는 공간이다.

1년 동안 맘대로 작업하며 실컷 놀아보자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1 3월 전시 <사건-150306>의 오프닝 행사 장면.

지난 3월 6~18일 등촌동 ‘일년만 미슬관’에서는 이곳의 운영진인 작가 7명의 네 번째 그룹전 <사건-150306>이 진행됐다. 이 전시에서 <이미 일년만 미슬관을 준비하고 있던 우주>라는 작품을 선보인 조은재 작가는 2015년 3월 6일의 수성, 금성, 지구, 달 등의 배열을 그림에 담으며 ‘A라는 사건이 그와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사건 B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고 작품 설명의 운을 뗐다. “건물의 재건축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공항대로 53길’의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었다면, 경기가 불황이지 않았다면, 그래서 장기간 임대가 되지 않아 비어 있던 어느 상가 건물 2층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예술의 잔당들 각 작가들의 개인적 상황이 달랐다면, 아마 일년만 미슬관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준비돼 있던 사건과 상황이 만나 일년만 미슬관이 문을 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는 게 조은재 작가의 작품, 그리고 공간에 대한 설명이었다. 애정과 위트가 엿보였다.
2015년 12월 강서구 등촌동에 개관한 일년만 미슬관은 이름처럼 1년만 운영되는 곳이다. 미술관이 아닌 ‘미슬관’인 이유는 미술관이 법적으로 인증을 받아야만 쓸 수 있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획 하나를 뺀 ‘미슬’을 이름 삼으며 단어에 대해 ‘아름답고 곱다’는 정의를 내렸다. 공동운영진인 7인 작가(박종혁, 심윤아, 썬썬, 이은경, 이정우, 조말, 조은재)는 ‘예술의 잔당들’이라 칭한다. 이 역시 ‘예술의전당’의 ‘전’에서 획 하나를 바깥으로 돌려 만든 이름.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긍정적인 ‘잔당’이 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이름처럼 이들은 자발적으로 공간을 마련했다. 시작은 박종혁 작가였다. “작가들이 전시할 공간이 많이 부족하고 전시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요. 작가 대부분이 공모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찾게 되는데, 그냥 여럿이 모여서 공간을 만들면 저렴한 비용으로 질 좋은 전시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는 2014년 겨울부터 주변 지인들을 모아 모임을 꾸렸다. SNS를 통해서도 뜻이 맞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각자의 사정과 지향이 다르니 뜻을 하나로 모으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지인으로부터 1년만 무료로 쓸 수 있다는 공간을 소개 받았다. 강서구 등촌동 골목 어귀에 있는 건물의 2층 공간은 임대가 안 돼 오랫동안 비어 있었고, 철거 시한을 1년 정도 남긴 상황이었다. 다시 사람을 모았다. 지인의 동료, 학원 제자, 친구, 사부 등 나이, 사는 곳, 하는 작업도 모두 다른 7명의 작가가 모였다. 공간의 지향점이나 1년 뒤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고 작가들 각자 하고 싶은 작업을 실컷 하며 “놀아보자”는 데 만장일치했다 (일년만 미슬관 운영의 기본은 ‘만장일치’다). 그렇게 ‘일년만 미슬관’은 작년 12월 첫 그룹전 <1 >을 선보이며 문을 열었다.

동네에 파고드는 미술, 마실 가듯 들르는 미슬관

연관 일러스트 이미지2 3월 전시 <사건-150306> 전경. 사진2의 왼쪽 벽에 설치된 작품이 <이미 일년만 미슬관을 준비하고 있던 우주> (조은재)다.
3 3월 전시 <사건-150306>에서 선보인 이은경 작가의 <재구성> 연작 중.

일년만 미슬관의 올해 일정은 이미 ‘꽉꽉’ 채워져 있다. 대체로 매월 초 1~2주에는 예술의 잔당들의 그룹 기획전을, 3~4주에는 객원 작가전을 진행하는 것이 기본. 이 패턴이 9월 30일까지 유지되고 그 후에는 잔당들 일곱 작가 각각의 개인전을 진행해 1년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전시 기획과 작업, 설치, 크리틱 모두 잔당들이 직접 한다. 개성 뚜렷한 작가들이 견해 차로 부딪히는 일은 없을까. “의견이 부딪치면 끝까지 설득하고 합의를 봐요.(웃음) 오히려 의견이 부딪칠 때마다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 의견을 정리하거나 몰랐던 부분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학교 때 그렇게 싫었던 크리틱도 지금은 즐거워요. 이 공간이 어떻게 하면 잘 돌아갈 수 있을까를 공통으로 생각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심윤아 작가) 작업 외의 재능도 각자 달라 누구는 SNS 관리를, 다른 이는 인테리어 공사를, 또 어떤 이는 전시 서문 작성을 담당하는 식이다. 공간 운영과 작업을 병행하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개인 작업을 오래해 생각보다 다른 작가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이들에게 지금은 잔당들과 같이 공부하고 소통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사실 일년만 미슬관이 자리한 등촌동은 조금 생뚱맞은 동네다. 이른바 ‘신생 공간’이라 불리는 시각예술 공간이 구도심 곳곳에 산발적으로 생기고 있지만 등촌동은 산업의 맥락과도 거리가 있는 주거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지역적인 특성에 대해 작가들은 ‘어디에나 있을법한 동네 골목에 문화 공간이 자연스레 녹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실 미술이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삶과는 별개의 것이 돼버렸잖아요. 그래서 동네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서관, 체육관이 골목에 어우러지듯 미슬관도 골목골목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작가로 하여금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네 아이들, 떡집 아주머니, 애견숍 가족, 너무 와보고 싶어서 매달 한 번씩 야자에서 도망 나오는 고딩… 이런 관객이 더없이 반갑죠.”(박종혁 작가)
1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한정된 시간과 행운처럼 주어진 공간 덕에 예술의 잔당들은 작업의 동력을 얻어 각자의 실험을 이어가고 있고, 이 공간을 의미 있게 나누기 위해 객원 작가 8팀의 신청을 받아(공모가 아니다!) 전시를 선보이게 됐다. 공간 운영과 그룹전의 A부터 Z까지 모두 잔당들의 몫이기에 손이 부족하지만, 공간이 빌 때 공연과 퍼포먼스 등 전시 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 첫 시도로 지난 3월 19일에는 <회기동단편선의 갈라쇼> 공연이 열렸다. 이 공간이 지속될 때까지 더 많은 사람이 동네 마실 가듯 미슬관에 들를 수 있도록 예술의 잔당들은 즐겁게 움직일 계획이다. 여기서는 1년이지만 전국 곳곳에 다른 ‘일년만 미슬관’이 하나둘 계속 생겨나길 바라며.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제공 일년만 미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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