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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겨울에 돌아온, 심상치 않은 서부영화들 서부극, 다시 한 번 진화한다
서부영화, 하면 모래바람 날리는 황량한 벌판이 먼저 떠오른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 삼았던 ‘보수의 상징’ 서부극도 조금씩 변화해왔는데, 최근에는 설원을 배경 삼은 영화 <헤이트풀8>과 <레버넌트>가 ‘서부극의 21세기 터닝포인트’를 알렸다.

영화 레버넌트 관련 이미지

최근 두 편의 서부영화가 거의 동시에 극장에 등장했다. 하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이며, 다른 하나는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레버넌트>)다. 1년에 한 편도 보기 힘든 서부영화가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한 점도 이례적이지만, 둘 다 대가로 불릴 만한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이라 더더욱 눈길이 간다. 특히나 재미있는 점은 두 작품 모두 서부 개척 시대 ‘설원’을 배경 삼았다는 점이다. 서부영화라고 하면 으레 건초더미가 굴러다니는 드넓은 황무지를 연상하기 십상이지만, 두 작품은 오히려 혹독한 겨울을 앞세워 마치 자연의 준엄함을 과시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 전통적인 서부극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영화 모두 1800년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복수나 대립을 주제로 한 서부극을 그대로 바탕에 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명맥이 끊겼다 이따금씩 새로운 얼굴로 고개를 들곤 하는 서부극의 새로운 표상이라기보다는 온전히 두 작가주의 감독의 새로운 지평으로 읽히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통 서부극의 형태에서 차츰 변신을 꾀하다 마침내 주류의 자리를 내놓고 사라진 서부극의 새로운 진화로도 보인다. 서부영화 장르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서부는 존재한다는 듯 전혀 다른형태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는 두 영화는 그렇게 냉혹했던 시공간 속으로 다시금 우리를 초대한다.

서부극, 영웅주의의 상징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서부극은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스튜디오 시스템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처음부터 하나의 ‘장르’로 시작된 서부영화는 다른 모든 장르영화와 마찬가지로 해당 장르를 규정하는 일련의 형식을 가진다. 이를테면 주로 외부에서 온 영웅에 의해 폭력이 만연하던 사회가 법이 지배하는 정의로운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상반된 가치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 것. 여기에는 오로지 선과 악만이 존재할 뿐, 배제된 다른 한쪽에 대해선 늘 배타적인 자세를 고수했다. 한마디로 서부영화는 미개한 서부지대를 미국인(주로 백인)의 프런티어 정신을 통해 새로운 에덴동산으로 구축해간다는 ‘미국 개척신화’를 지향했다.
이후 서부영화의 상징과도 같던 존 포드 감독이 자신이 구축한 서부영화의 세계를 스스로 허물면서 서부영화의 영웅주의는 점차 혁파되기 시작한다. 그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수색자(The Searchers)>(1956)는 그동안의 이상화된 시민상과는 거리가 먼 인간적인 영웅을 내세웠다. 자연히 이분법적 논리에서도 벗어났다. 캐릭터들은 좀 더 복합적으로 변모하면서 ‘수정주의 웨스턴’이라는 새로운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서부극은 1960, 7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또 한 번 각광의 시절을 거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대표되는 이 이탈리아산 서부영화는 폭력성과 오락성을 부각함으로써 본토 서부극과는 다른 스타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점차 자취를 감췄다. 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이 세운 공식을 완전히 비튼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잠깐 이슈가 되긴 했지만, 그 이후 서부영화는 아직까지도 간헐적으로 만들어지는데 그치고 있다.

두 거장의 새로운 서부극 실험

서부극의 역사와 대조해본다면 <헤이트풀8>은 더더욱 다른 스타일의 영화로 읽힌다. <헤이트풀8>은 그동안의 타란티노 영화에 비하면 조금은 연극적인 스타일의 영화로도 다가올 법하다. 에두르지 않고 본격 미스터리 장르의 클리셰이기도 한 ‘눈 덮인산장’을 무대 삼아 눈보라를 피해 잡화점에 모인 사람들 간의 미묘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죄수를 이송하던 현상금 사냥꾼과 자신의 정체를 숨긴 사람들. 과연 이들 중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지가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쥐락펴락한다. 더욱이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이기에 만연한 인종갈등은 물론 남북으로 대치했던 전직 군인들 간의 갈등까지 더해져 산장에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촉즉발 긴장감은 더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비밀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의 속내가 드러날 때마다 일어나는 몇 번의 무자비한 반전하며, 법보다 폭력이 앞서는 세상을 압축적으로 전시한 잡화점 내의 광경은 마치 대자연이 주선한, 선과 악이 혼재된 살육전을 연상케 한다.
<레버넌트>는 이번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화제작이다. 서부 개척 시대 이전을 배경으로 한 <레버넌트>는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휴 글래스(레오나도 디캐프리오 분)는 동료들과 함께 귀환하던 중 회색곰의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는다. 부상당한 글래스 때문에 귀환은 지체되고 이를 타개하고자 일행은 글래스의 생사를 돌볼 후발대 몇 명만 남기고 먼저 이동하기로 한다. 이때 동료인 피츠제럴드(톰 하디 분)가 후발대를 자원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글래스를 돌볼 생각일랑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글래스의 아들 호크를 죽이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글래스마저 내버려둔 채 서둘러 자리를 뜬다. 버림받은 글래스는 오직 복수를 위해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눈밭을 기어 나아간다. 썩은 고기와 이끼로 연명하고 방금 죽은 말의 배를 갈라 추위를 피하면서. <레버넌트>의 주인공은 대자연 그 자체와도 같다. 마치 휴 글래스를 시험하는 듯, 아니 고문하는 듯한 대자연의 무시무시함은 엄청난 스케일로 다가와 그 어떤 인간보다도 강렬한 응징자이자 중재자를 자처한다. 땅을 빼앗긴 원주민들의 습격과 이를 감내하면서 생을 유지하는 사람들, 여기에 글래스의 혹독한 여정을 더해 서부라는 같은 대지 위에 대자연이 건네는 묵직한 메시지를 새로이 수놓고 있는 것이다.
<헤이트풀8>이 인간의 추악함을 실험하는 영화라면, <레버넌트>는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영화다. 그리고 둘 모두 가혹한 서부 설원에 던져진 인간의 심연을 관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적은 있지만 어디에도 영웅은 없다. 단지 불완전한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미스터리로 똘똘 뭉친 오락영화 <헤이트풀8>과 보는 이에게마저 고통을 전염시키는 <레버넌트>가 그린 서부의 가혹함이야말로 다시금 이 시대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 서부극의 새로운 면면을 대변하는 듯하다.문화+서울

글 강상준
<DVD2.0> <FILM2.0> <iMBC> <BRUT>등의 매체에서 줄곧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 살았다. <위대한 망가>를 썼고, <매거진 컬처> <젊은 목수들>를 공저했으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좀비사전> <탐정사전>을 기획, 편집했다. 현재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겸 프리랜스 편집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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