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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7월호

예술의 매체, 광장의 목소리가 된 포스트잇 포스트잇, 어디에나 각자의 이유로 붙어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와 지하철 구의역 승강장의 스크린도어 앞이 지난 5월 이후 포스트잇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5월에 잇달아 발생한 두 비극적 사건에 시민들이 추모의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각기 다른 손 글씨가 적힌 포스트잇 물결은 쉽게 기억하고 쉽게 버려지던 본래의 속성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 뉴욕에서 포스트잇은 이미 예술 작품이 되기도 했다.

현대인의 속성을 닮은 접착 종이의 탄생

어디에나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네모난 종이. 수험생의 참고서 곳곳에 끼어 있고, 회사 세미나실의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편의점, 문구점 어디서나 살 수 있고, 누군가의 가방에서 튀어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그 종이가 이상한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파리와 뉴욕의 건물 유리창을 가득 채우며 작은 아트 쇼를 연출하기도 한다. 강남역 10번 출구와 구의역 전철 스크린도어에 무수히 달라붙어 울음과 분노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무엇을 ‘포스트잇’이라 부른다.
쓰리엠(3M)이 1970년대에 개발한 이 독특한 접착 종이는 실수와 행운이 번갈아 작용하며 태어난 발명품이다. 처음에는 한 연구원이 접착제를 개발하다 실수로 접착력이 약해 금세 떨어지는 접착액을 만들어냈다. 몇 년 뒤 다른 연구원이 이 불량품을 떠올린다.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성가집에 끼워둔 책갈피가 자꾸만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다. “가볍게 붙였다가 쉽게 뗄 수 있는 종이를 책갈피 대신 쓰면 어떨까?” 다시 몇 년간의 연구 끝에 태어난 것이 노란색의 3인치짜리 오리지널 포스트잇이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비서들에게 견본품을 보냈는데, 바로 그때부터 주문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은 삽시간에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20세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가볍게 붙였다 뗄 수 있는 것이 즉흥적 사랑과 닮아 있다. 작지만 밝은색으로 눈에 띄는 모양은 복잡한 정보 세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작은 메모지 형태의 몸통은 디지털 시대 손글씨의 마지막 피난처로도 보인다. 회의실 벽에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옮겨가며 작은 아이디어의 전달자가 되기도 한다.

재치 있는 소통과 예술로 발전한 포스트잇

그러다 최근 포스트잇은 뜻밖의 곳에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2011년 파리의 여름은 ‘포스트잇 전쟁’이라는 즐거운 다툼으로 뜨거웠다. 어느 게임 회사 직원이 무료함을 달래려 유리창에 포스트잇으로 게임 캐릭터 ‘팩맨’을 만들어 붙였다. 이를 본 길 건너편의 은행 직원이 또 다른 포스트잇 작품으로 화답했다. 이어 파리 곳곳에서 포스트잇 아트 배틀이 벌어졌다. 올해 봄에는 뉴욕의 빌딩들이 새로운 포스트잇 전쟁에 들어갔다. 광고 회사의 한 직원이 창에 포스트잇으로 ‘HI’라는 글자를 붙였는데, 이를 본 주변 건물의 사람들이 온갖 아이디어로 응답한 것이다. 슈퍼마리오, 스파이더맨 등의 캐릭터만이 아니었다. 건물 전체의 창을 이용해 거대한 마이크를 떨어뜨리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포스트잇 아트는 복고풍의 이미지 놀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색의 낱장 하나하나는 컴퓨터 화면의 픽셀 같은 역할을 한다. 초창기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에서는 용량 문제 때문에 작은 픽셀들을 하나씩 찍어 그림을 만들어냈다. 파리와 뉴욕의 사무실 노동자들은 그런 추억을 떠올리며 삭막한 빌딩의 유리창을 거대한 그림판으로 변신시켰다.
도심의 또 다른 곳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몰려 있는 포스트잇도 있다. 이들은 저 멀리서 바라보면 안 된다. 가까이 다가가 안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를 읽어야 한다. 포스트잇은 언제부터인가 작은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대형 콘서트장에서 관객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수단으로도 사용하고, 아이돌 가수를 응원하는 문구를 적어 붙이기도 한다. 팬 사인회에서 스타에게 질문할 내용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놓고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공공장소에서 작은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 운동, 촛불 문화제 등에서 시민은 포스트잇에 다양한 주장을 적어 붙이기 시작했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는 시민들이 정부 청사의 계단 옆에 다양한 주장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여 또 다른 토론장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강남역 10번 출구와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추모, 사과, 울분, 주장을 담은 포스트잇을 만나게 되었다.

이명석의 썰 관련 이미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작지만 큰 메모지

어디에나 있는 작은 종이에, 손으로 글을 써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붙여놓았다. 그것은 ‘내가 찾아왔다’는 방명록, 공개적인 추모사, 자신의 주장을 써 붙인 대자보의 기능을 대신하면서도 그 모든 것과 달랐다. 포스트잇은 죽은 이에게, 남은 이에게, 스스로에게 전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또한 조금 씩 얼굴을 내밀며 ‘나를 봐달라’며 붙어 있었다. 비바람에 날아가거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쉽게 뜯겨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SNS를 통해 무수히 퍼져나가기도 했다.
그때 이후 포스트잇이, 거기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가 달라 보인다. 중고 거래로 택배를 받았는데, ‘자리가 남아서 과자도 좀 넣었어요’라는 쪽지는 얼마나 다정한가? 현관문에 누군가 써 붙인 ‘밤중에 쿵쾅대지 맙시다’라는 쪽지는 기분을 과히 좋지 않게 한다. 그래도 다짜고짜 문을 두드리며 소리지르거나 전화로 야단치는 것보다는 낫다. 그것은 어쩌면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를 통해 전하는 익명의 글과도 닮았다. 조용하고 솔직해서 좋을 수도 있고, 자기 할 말만 하고 달아나는 얌체짓일 수도 있다. 영화 <소셜포비아>에서는 SNS를 통한 마녀사냥을 주인공의 사물함에 가득 붙은 악담의 포스트잇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전 어느 신문 기사에서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책을 들고 출판사에 찾아오는 할아버지 독자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 포스트잇으로 표시하고 적어둔 것이라면, 우리는 세심히 들여다보고 확인해야 한다. 지적한 내용을 고쳤으면 포스트잇은 이제 필요 없다. 가볍게 떼서 버리면 된다. 그러나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두어야 한다. 강남역과 구의역에 붙어 있던 수 많은 포스트잇은 아직 우리 마음에 남아 있어야 한다. 성급히 떼어버리고 잊어서는 안 된다.문화+서울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 겸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여행의 즐거움과 인문학적 호기심을 결합한 <여행자의 로망백서>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모든 요일의 카페> 등의 저서가 있고, KBS 라디오 <신성원의 문화공감>,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 고정 출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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