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시작과 끝, 덕질 덕후 문화 탐방
바야흐로 취미와 덕질의 시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핵심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Life Balance이며, 자기만의 취미를 누릴 수 있는 여가 시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진정한 자아와 인생이 여가 시간에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여가 시간에야말로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가닿는 취미가 있고, 자신이 ‘덕질’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너 덕질하니? 야, 나두
덕질이란, 본래 ‘오타쿠’라는 일본어가 ‘오덕후’로 변화하고, 이후 더 축약해 ‘덕후’가 되면서 등장한 말이다. 예전에는 오타쿠를 떠올리면 방 안에서 만화 등의 취미에만 몰두하는 사회부적응자로 인식하기 쉬웠지만, 갈수록 무엇이든 깊게 몰입하고 좋아하면 ‘덕후’ 또는 ‘덕’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는 이를 ‘역덕’ ‘역사 덕후’라 한다. 역사 공부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역사책을 읽고, 세세한 역사까지 다 외우면서 찾아 읽는 행동은 ‘역사 덕질’이라고 말 하기도 한다.
청년 세대 사이에서 ‘덕질’ 혹은 ‘덕후’는 더는 욕이 아니다. 오히려 덕질 하나쯤 갖고 있어야 안심하는 편에 가깝다. 요즘 덕질하는 연예인, 덕질하는 유튜브 채널, 덕질하는 아이템 등 덕질이 곧 취향이자 개성이고, 자기만의 고유성을 내비친다. 아직 아무것도 덕질하지 않는 사람은 서둘러 자신의 취향을 탐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때론 남들처럼 유행하는 것을, 때론 남들과 달리 자기만 좋아하는 것을 하나쯤 가지는 덕질이 인생에는 꼭 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나아가 덕질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신조어가 ‘개취’다. ‘개인 취향 존중’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가 널리 쓰이면서, 서로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존중하며, 각자의 덕질을 응원한다. 무언가에 ‘진심인 편’이라는 밈meme도 일종의 유행이 됐는데, 무언가에 ‘덕질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가령 “요즘 나는 식물 키우기에 진심인 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요즘 식물 덕질하고 있어” 라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처럼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드러내는 적극적인 문화가 널리 퍼지고 있다.
개인 취향이 모여 시대를 이루다
특히 미디어의 변화는 이런 개개인의 ‘취향 존중’을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였다면 아무리 자기만의 취향이 있다 할지라도, 그런 취향을 마음껏 누리기가 쉽지 않았다. 영상 콘텐츠는 몇 개의 TV 채널 정도가 전부였고, 동네에서 비슷한 취미의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좋아하는 연예인도 TV에 자주 나오는 일부로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튜브·넷플릭스 등 콘텐츠에 대해서 거의 무한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선택지가 넘친다. 원하는 취미를 누리고 싶다면 인터넷이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인플루언서나 셀럽도 워낙 다양해지고 많아져서, 저마다 덕질하는 유명인이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하나의 단일 문화라는 개념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 와중에 ‘성공한 덕후’가 조금씩 등장한다. 가령 책을 덕질하던 누군가는 어느새 책에 대한 전문가가 돼 ‘북튜버’ 혹은 작가가 되기도 한다. 식물을 덕질하던 누군가는 식물에 대해 그만큼 잘 알게 되니 어느덧 화분과 꽃을 배송하는 셀럽이 된다. 어느 셀럽을 덕질하던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SNS 댓글 등으로 안부를 주고 받더니 그 셀럽의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가 된다. 애초에 인생의 여분에서 시작한 덕질이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나아가 직업을 바꾸거나 인간관계마저 바꾸면서 삶을 ‘결정’한다. 그야말로 ‘大’ 덕질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새로운 세대는 문화와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저마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취향에 마음을 아끼지 않고, 덕질에 몰두하며 자기만의 삶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문화가 되고 사회가 된다. 그렇게 보면, 덕질 문화야말로 이 시대를 상징하는 시작이자 끝이기도 한 셈이다.
글 정지우 문화평론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