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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월호

이옥섭 감독의 <메기>의심과 믿음, 그 쌍둥이의 표정
어린 시절 본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의 끝은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무섭고 무겁다.
왕눈이를 괴롭히던 아로미 아빠 투투가 세상 최고의 악당인 줄 알았는데, 그 위에 도롱뇽 떼가, 또 그 위에 메기가 있었다.
그러니 왕눈이가 아무리 피리를 불어봐야 무지개 언덕에 웃음꽃이 필 일은 없었다.
악당처럼 보이지만 투투 역시도 누군가에게 지배받는 지질한 약자라는 사실은 곱씹어 보면 씁쓸하고 처연하다.
어쩌면 이 불가해한 세상의 먹이사슬 아래를 보지 못하고 우리는 그냥 요란하게 피리만 불어대며 의미 없는 희망을 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데 아로미는 아빠의 악행과 그 배후를 정말 몰랐을까?
이렇게 믿음이 깨지면 의심이 생긴다. 아니, 의심이 생겨 믿음이 깨지는 건가?

의심의 구멍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작은 의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믿음이라는 커다란 원이 생긴다고 이야기하는 영화다. 이야기는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시작된다. 엑스레이실에서 남녀의 섹스 장면을 누군가 몰래 찍는다. 온갖 추측과 호기심 사이, 사람들은 간호사 윤영(이주영)이 엑스레이 사진의 주인공이라 믿는다. 부원장 경진(문소리)은 추측만으로 윤영에게 퇴사를 권하지만, 그녀는 거부한다. 일자리가 없는 윤영의 남자친구 성원(구교환)은 도시에 갑자기 싱크홀이 생기는 바람에 싱크홀을 메우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의심과 믿음 사이를 어항에 갇힌 메기(천우희)가 바라본다.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사실 줄거리를 쉬 나열할 수 없는 영화다. 인물들 각각의 이야기 전개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천우희가 목소리 연기를 한 어항 속 메기가 각각의 에피소드를 동그랗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랑병원에 갇힌 환자들과 윤영과 성원 주위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만의 의심을 키워나가는데 그런 의심은 도심에 생겨버린 싱크홀처럼 깊고 어둡다.
이옥섭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드커버 노트가 아니라 한 장의 포스트잇 위에 적는 것 같다. 의심이 구덩이처럼 커진 현대사회를, 어쩌면 청춘들의 희망을 앗아버린 우리 사회를 휘갈기는 이야기가 무겁지 않지만 형광색처럼 눈에 잘 띈다. 싱크홀이 생겨버린 이유를 끝내 밝히지 않듯이 모순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를 바꿔보려 하지 않는다. 재개발 지역을 해수욕장처럼 꾸민 퍼포먼스를 보면서, 당장 쫓겨날지도 모르는 자신의 상황을 걱정하지 않는 청춘들의 무기력함과 무감각을 그저 묵묵히 하나의 현상처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지각변동을 느낄 때 메기가 어항 위로 솟구쳐 오른다고 믿는다. 그리고 메기는 두 번 솟구쳐 오른다. 하지만 메기가 다시 떨어지는 곳은 넓은 세상이 아니라 어항 속이다. 사람들은 메기를 믿고 세상을 의심한다. 그러니 의심이라는 것은 믿음의 또 다른 얼굴 같다. 어쩌면 믿음과 의심이라는 것은 각각 표정을 다르게 지은 쌍둥이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믿음의 구멍

도시에는 싱크홀이라는 엄청난 문제가 생겼지만, 그로 인해 직업이 생긴 성원은 즐거워 춤을 춘다. 길을 지나가던 누군가는 그 속으로 쓰레기를 버린다. ‘도촬’과 데이트 폭력, 노동착취, 도시의 재개발, 청년 실업 문제 등 엄청나게 무거운 소재들을 가져오지만 <메기>는 무거워지지 않는다. 영화 속 메기가 아주 큰 몸집을 하고 있지만 아주 작은 어항에 갇혀 있는 것처럼,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아주 커다란 이야기를 가장 작은 단위로 흩어놓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계속 무언가를 의심한다. 깊은 의심은 곧바로 강한 믿음으로 표정을 바꾼다. 부원장은 직원들이 아프다는 핑계를 댄다고 의심하는 동시에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다. 성원은 잃어버린 반지를 동료가 훔쳤다고 의심하는 동시에 그가 훔쳤다고 믿는다. 하지만 윤영은 좀 다르다. 성원이 옛 여자친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의심하지만, 그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의심하고, 의심하고 싶은 대로 믿는다.
하나씩 밝혀지지만, 직원들은 진짜 아팠다. 성원의 동료는 반지를 훔치지 않았다. 하지만 성원은 윤영의 질문에 진짜 여자친구를 때렸다고 답한다. 순간 커다란 싱크홀이 생기면서 성원은 낙하한다. 어쩌면 싱크홀은 계속 의심했지만 절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던 윤영의 마음에 생긴 구멍 같다. 영화의 대사처럼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얼른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원이 갇힌 구덩이를 피해 신속히 달아나는 윤영의 선택은 응원해 주고 싶을 만큼 경쾌하다.

<메기>(2018)
감독 이옥섭
출연 이주영(여윤영 역), 문소리(이경진 역), 구교환(이성원 역), 천우희(메기 역)
글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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