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기심’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이타심’은 요원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을 우선으로 해 살라는 말이 세상의 격언처럼 된 지 오래지만, 이상하게도 ‘타인의 행복’을 추구할 때,
나의 행복도 함께 올라간다. 마음속에서 간질간질하고 따뜻한 게 생겨나는 일, 그것은 타인의 행복을 생각하는 일이고,
그런 마음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다 보면 무엇이든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영화 <쇼생크 탈출> 중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일
이미 고전이 된 영화 <쇼생크 탈출>은 누명을 쓰고 수감된 한 남자가 쇼생크 수용소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가 지략을 발휘해 결국 20여 년 만에 탈출하는 과정 자체가 무척 흥미진진하고 통쾌한 영화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인 앤디(팀 로빈스)가 수용소 안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자 투쟁하는 과정 또한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는 수용소 생활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대다수의 수감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지성과 감성, 의지로 그곳에서의 삶을 바꾸어나간다.
어디에서의 삶도 다르지 않겠지만, 수용소에서의 삶도 대개는 자기 욕망을 채우고 이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과정으로 점철돼 있다. 성욕을 채우고자 다른 수감자를 강간하는 사람이라든지, 내기를 하면서 담배를 얻거나, 그 속에서도 자기 것을 얻고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일반적인 수감자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주인공 앤디에게는 좀처럼 그런 ‘이기적인 욕망’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그도 홀로 탈출을 계획하면서 교도관이나 교도소장을 이용하고, 다른 수감자를 통해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기보다는 같이 수감돼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한다.
가령,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지붕 위 페인트칠 장면에서, 앤디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세금 때문에 고민하는 교도관에게 다가간다. 당연히 교도관은 그를 위협하면서 빨리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하지만, 그는 자기가 은행에서 일했다면서 그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신 같이 일하는 수감자들을 위해 맥주 몇 병씩만 제공해 줄 것을 제안한다. 교도관은 그것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 그에 응한다. 그리고 앤디는 해 질 무렵 지붕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거워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면서 미소 짓는다.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이지만, 그는 그렇게 수용소 바깥에서나 있을 법한 일상을 만들어낸다. 이웃 사람들과 함께 지붕에 페인트칠을 하고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던 어느 저녁의 일상을 그들에게 잠시나마 돌려준 것이다.
한편으로 그는 교도소 내 도서관이 별 볼 일 없다는 걸 깨닫고 끊임없이 국회에 편지를 보낸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교도소장의 세금 관리를 도와주면서 그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인데, 결국 몇 년간 계속 편지를 쓴 덕분에 지원금을 얻어내고 교도소의 도서관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곳으로 만들어낸다. 그러자 아무도 찾지 않던 도서관에 수감자들이 찾아가고, 그는 그들을 가르쳐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는 일도 도와준다. 이렇게 보면 그가 대단한 이타심을 발휘하는 성인군자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가 자기를 희생해서 누군가를 돕는다기보다 오히려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보다 자기를 위해서 또 타인을 위해서 주변 환경을 바꾸어내고s 자신의 분위기로 주변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자기의 지성과 감성으로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간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타인을 위한 마음이 나를 지켜준다
아마 이 영화의 중심은 쇼생크 탈출 과정에 맞춰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앞서 적은 장면들보다도, 그 과정이 더 흥미진진하게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과정 못지않게, 앤디가 수용소 안에서 만들어가는 생활과 그 속에서 얻는 행복에 더 눈길이 갔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인간이 오직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만을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그는 행복해지기보다는 초라해지거나 왜소해질 뿐이고, 반대로 자신이 주변에 끼칠 영향을 고민하며 그로부터 의미를 얻고자 할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타심을 발휘하는 일은 어쩐지 인간의 본성을 다소 거스르는 억지스러운 일이고, 손해 보는 일이고, 자기의 행복을 양보하는 일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사실 이타심과 이기심이 조화를 이루는 어느 지점에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행복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사실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아내와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고,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내가 돌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 또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매일 새벽 늦게 잠들고, 좀처럼 쉴 수 있는 시간조차 없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나날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오직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이유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이렇게 정신없는 나날을 살아내고 있다면, 금세 회의적인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온몸 다 바쳐 사랑하는 아이와 아내가 있고, 이 나날은 그렇게 나뿐만 아니라 이 가정을 위한 것이고, 아이를 위한 시간이고, 아내를 위한 일이며, 그 마음이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 시절, 어느 때는 삶은 오직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고, 내가 갈망하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마음은 줄어들면서, 나의 삶이 나를 위한 것이자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 되고, 때로는 그게 더 중요하며, 그렇게 삶이 넓어져가는 것이 더 나은 행복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내 삶에 앤디가 지붕 위에서 동료들을 바라보던 것 같은 장면이 많아진다면 좋겠다. 그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만든 수용소 안의 도서관 같은 것을, 나도 내 삶에 지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 글 정지우_문화평론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