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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동주가 머무르던 공간, 연희전문학교 핀슨홀 그 창으로 뜨던 별과 달을 당신도 보았나요?
연세대 백양로를 따라 걷다 보면, 서쪽으로 나지막한 언덕이 나온다. ‘시인의 언덕’이라 불리는 이 언덕 위에는 윤동주 시인의 동생인 윤일주 교수가 설계하고, 연세대 총학생회가 모금을 통해 1968년 11월 2일 건립한 윤동주 시비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시비 뒤편에는 2층 규모의 작은 석조 건물이 하나 있다. 점점 더 커지고 화려해지는 캠퍼스 건축물들 사이에서 조용히 그 자리를 100년 가까이 지켜온 이 건물은 1922년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지어진 ‘핀슨홀’이다. 고향 용정을 떠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윤동주 시인이 1940년 후배 정병욱과 함께 하숙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2년여를 머물렀던 핀슨홀은 97년의 시간이 흐른 2019년, 윤동주기념관으로의 재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청춘들의 꿈과 삶이 있던 곳, 연희전문학교

핀슨홀은 연세대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1917년 연희전문학교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처음 지어진 치원관, 스팀슨관에 이어 아펜젤러관, 언더우드관과 함께 에비슨 교장이 미국에서 모금한 기부금으로 건축되기 시작했다. 핀슨홀은 약 5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석조 기숙사 건물이었다. 1920년대에는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 스팀슨관 등이 위치한 중앙의 교사(校舍)군 양 옆 소나무 숲 사이에 학생들과 교수들의 생활공간이 있었다. 서쪽 소나무 숲 사이 언덕에는 핀슨홀을 비롯한 학생 기숙사와 식당이 들어설 계획이었으며, 동쪽 소나무 숲 사이에는 현재도 2채가 남아 있는 교수 사택들이 자리 잡았다. 이처럼 1920년대 연희전문학교가 꿈꾸었던 캠퍼스의 모습은 학업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핀슨홀의 설계자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연희전문학교 캠퍼스를 설계한 미국 머피 앤 다나 건축사 사무소(Murphy & Dana Architects)의 작업으로 추측된다. 당시 미국의 캠퍼스들이나 머피 앤 다나 건축사 사무소가 설계한 일본의 릿교(릿교)대학처럼, 연희전문학교의 캠퍼스 건축물은 서양의 대학고딕(Collegiate Gothic)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비슷한 시기 지어진 경성제국대학이나 사범학교 등 관학 기숙사의 경우 2층 목조 기숙사가 대부분이었던 것에 반해,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는 순서양식의 석조 기숙사였다.
핀슨홀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다락층도 있어 실제로는 3층이었다. 1922년 12월 <개벽> 기사에 따르면 순서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의 1층은 2인 1실 구조이며, 2층은 10~20인이 함께 쓸 수 있는 큰 방이었다. 학생들은 침대와 옷장, 책장, 책상, 의자를 학교로부터 제공받았다고 한다. 두터운 석재 벽체에 일정한 간격으로 난 목재 창호 사이로 빛이 충분히 들어왔고, 학생들은 창가에 책상을 두고 창대에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놓고 사용했다. 핀슨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3층의 다락방인데, 뻐꾸기창이라 불리는, 지붕 밖으로 튀어나온 도머창을 통해 빛이 들어왔다. 이 빛은 하루 종일 다락방을 은은하게 비추며 침묵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곳은 윤동주 시인이 신입생 시절 송몽규, 강처중 등과 함께 머물렀던 다락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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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동주 시비와 핀슨홀.

도머창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별과 달

해질녘에 지붕 사이로 난 도머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면, 청송대 너머로 저녁별이 보인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위로 달이 떠오른다. 동주가 이곳에서 보던 별과 달도 같은 별, 같은 달이 아니었을까. 동주뿐 아니라 몽규도, 그 친구들 모두가 이곳에서 별과 달을 보며 잠들곤 했을 것이다.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이 공간은 다시 옛 모습을 찾고자 비워졌다. 오랜 시간 동안 겹겹이 입혀졌던 포장들을 뜯어내고 원래의 모습을 드러낸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침대에 누워,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울고 했을 그 청춘들이 떠오른다. 1층 복도 끝의 홀에서는 함께 모여 어떤 일을 했을까. 아침이면 수업에 늦어 복도를, 계단을 뛰어다니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늦은 밤이면 수위와 사감선생 몰래 기숙사에 들어오려 애쓰던 청춘들도 있었겠지. 동주뿐 아니라 그 시절, 핀슨홀을 가득 채웠던 청춘들을 기억하며 그저 고요히 윤동주 시비의 배경으로 존재하던 핀슨홀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지금이라도 이 공간이 그들을 기억하는, 그들이 바라보았던 별과 달을 다시 바라보는 공간으로 태어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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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핀슨홀 전경.

3 윤동주 시인이 신입생 시절 머물렀던 3층 다락방.

4 지붕 사이로 난 도머창.

글·사진 이연경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이론 전공으로 석·박사를 취득했다. 한성부 내의 일본인 거류지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제6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하였으며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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