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외국계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미키오(사카이마사토)와 인기 없는 만화가 하루코(미야자키 아오이)는 평온해 보이는 부부다. 어느 날 남편 미키오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무력감과 통증으로 고통을 느낀다. 병원을 찾은 미키오는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하루코는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돕기로 한다. 우선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도록 하고, 자신은 만화를 생업 삼아 적극적으로 사회로 뛰어든다.
알려진 것처럼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는 일러스트 만화가 호소카와 텐텐의 자전적 에세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우울증에 걸린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아내의 이야기를 풀어낸 원작은 우울증의 증상과 치료 과정을 차근차근 호들갑 떨지 않고 풀어내는데, 영화도 같은 템포로 천천히 걸어간다. 영화는 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돌보는 아내의 고군분투 간병기가 아니다. 우울증이라는 증상을 앓으며 이불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것 외에 어떤 것도 하기 힘든 남자와 그 주변의 가족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는 이야기다. 거북이를 좋아하는 미키오처럼 영화는 계속 느려도, 멈춰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우울증을 겪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를 감정의 소동이나 격정이라는 기법 없이 원작이 그랬듯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그 시간은 쓸쓸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연출은 그냥 그런 거라고 보여주며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응원도 격려도 아닌, 이토록 잔잔한 태도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관객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울증, 원인이 아닌 의미를 이해하기
“엄마, 나는 츠레가 우울증에 걸린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보다 츠레가 우울증에 걸린 ‘의미’가 뭔지 생각했어.”
하루코는 집에 찾아온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 대사가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영화는 잔잔하게 흐르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생업에 뛰어든 아내의 고단함과 짜증, 삶의 의미를 잃고 아내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한 남자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도 담아낸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는 어떤 사내의 에피소드도 외면하지 않는다.
기요시 감독은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딛고 서야 하는 사람이 겪는 서늘함도 전하지만 묵묵히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마음의 감기,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바라본다. 우울증에 갇힌 사람들의 삶이 무조건 고단하리란 오해를 지우고, 이유 없는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격려가 아닌 이해라는 사실도 조용히 읊조리며 공감을 얻어낸다.
오늘의 내가 있는 이유는 어쩌면, 과거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 나와 그런 나를 이해하는 타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현재에 반영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이런 증상을 마음의 감기, 우울증이라고 표현하지만 영화 속에서 아내는 우주감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치유의 방법이 상대방의 격한 격려가 아니라 계속 되짚어가야 하는 새로운 삶의 의미라는 사실은 두고두고 새겨봐야 할 명제다.
글을 맺으며 인용하고 싶은 말이 있다.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사랑을 주세요>의 한 문장인데, 영화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우주감기를 겪는 사람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말이다.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 격려하는 소리들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