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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2월호

협주곡의 ‘카덴차’오롯이 연주자의 시간
클래식 음악 악보를 보면 ‘카덴차’(cadenza)라는 글자와 함께 빈 부분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카덴차는 대개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concerto)에서 볼 수 있는데, 주로 한 악장의 끝부분에서 나타난다. 본래 카덴차라는 말 자체는 하나의 악곡이 끝나는 부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주곡에서의 카덴차는 좀 더 특별하다. 단순히 악곡이 끝나는 부분이 아니라, 악곡이 끝나기 전에 독주자가 자신의 연주 기량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매우 특별한 시간이다.
협주곡의 카덴차 연주는 옛 음악가들이 작곡과 연주 모두에 능했기에 가능했다. 작곡 능력이 없는 연주자라면 작곡가가 공란으로 남겨둔 카덴차 부분에서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18세기나 19세기의 음악가들은 협주곡의 카덴차 부분에서 결코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들은 즉흥연주를 마음껏 펼쳐 보이기도 하고, 또 자신의 연주 기교가 돋보이도록 미리 작곡해둔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그 순간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멈췄고 무대 위의 솔로이스트는 화려하고 빛나는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수십 가지?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들도 카덴차를 연주했을까? 물론 그랬다. 훌륭한 작곡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베토벤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 현란한 카덴차를 선보이며 청중을 압도하곤 했다. 베토벤은 선배 작곡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도 자신이 작곡한 현란한 카덴차를 연주하곤 했는데, 그중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베토벤 카덴차는 오늘날까지 그 악보가 전해지며 여러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한다. 물론 모차르트도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연주할 때 직접 작곡한 카덴차를 연주했으며 그 악보도 오늘날 전해진다.
때문에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단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같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이라고 해도 베토벤이 쓴 카덴차를 연주하느냐 혹은 모차르트의 카덴차를 연주하느냐에 따라 악보도 달라지고 다른 음악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연주자에 따라 수십 가지, 아니 수백 가지의 다양한 음악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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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연주자들은 카덴차를 작곡해서 연주할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협주곡의 카덴차 연주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현대로 올수록 사람들의 직업이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듯, 음악가의 직업 역시 세분화됨에 따라 연주자 중 작곡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작곡가가 공란으로 둔 카덴차 부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생각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20세기 이후의 연주자들은 대개 18, 19세기 음악의 거장들이 남겨둔 카덴차 악보를 사용해 카덴차를 연주한다. 19세기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제프 요아힘이 연주했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나 20세기 초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연주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가 오늘날 자주 연주된다. 하지만 같은 카덴차라 하더라도 연주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거장들이 남긴 카덴차 악보를 보면 마디 사이를 구분하는 마디선이 생략되어 있거나 음표의 길이를 마음대로 표현하는 늘임표 등의 지시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연주자들이 더 자유롭게 자신의 방식대로 카덴차를 연주하도록 해준다.
협주곡 중에는 카덴차 부분이 작곡가에 의해 직접 작곡되는 경우도 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 부분은 작곡가가 직접 작곡한 음표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경우 연주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작곡가가 쓴 카덴차를 연주한다. 그러나 이런 관행에서 벗어난 연주를 선보이는 음악가들도 종종 있다. 바이올린 연주뿐 아니라 작곡에도 능한 조슈아 벨은 멘델스존이 직접 쓴 카덴차를 무시한 채 자신이 작곡한 카덴차를 연주하는 파격적인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연주자에 의해 카덴차용으로 작곡되지 않은 기존 작품이 카덴차로 대체되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는 1983년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때 막스 레거가 쓴 바이올린을 위한 전주곡 제6번 d단조를 카덴차로 연주했다. 레거가 쓴 곡의 도입부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도입부와 거의 유사해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음악적인 유사성에 주목해 브람스 협주곡의 카덴차로 이 곡을 선택한 크레머의 재치에 감탄할 뿐이다. 이처럼 카덴차는 연주자에게 자유가 허용되는 특별한 시간이자 음악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마법의 시간이다.

글 최은규 서울대 음악대학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전당, 부천필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그림 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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