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시민에게 돌아오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조성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광화문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를 구성했을 때 화두가 된 것은 바로 세종대왕 동상의 존속 문제였다. 2009년 오세훈 전 시장 재임 당시 광화문광장을 새로 조성할 때, 세종대왕 동상이 새로 들어서자 졸지에 이순신 장군이 보초병이 되어버렸다는 말이 나왔다. 세종대왕 동상이 부담스러운 크기로 자리 잡고 있고, 차도로 둘러싸여 고립된 광화문광장에 대한 평가는 처음부터 박했다. 광화문광장의 문제를 가장 잘 정리한 사람은 승효상 건축가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광장에 대한 상상력은 방향의 문제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국민이 청와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구축되어 있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 잡은 육중한 세종대왕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종대왕을 활용해서 권력이 일종의 ‘알 박기’를 한 셈이다.
2016년 촛불집회는 광장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청와대를 향해 모여 앉아 함성을 외쳤다. 촛불의 물결은 큰 파도를 만들어냈고 이윽고 권력의 배를 뒤집어엎었다. 그리고 광장의 주인은 리더가 아니라 시민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위원회가 등장해 광화문광장 조성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국민이 광장을 되찾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광장은 선전과 통제의 욕망이 감시와 반역의욕망과 부딪치는 곳이다. 그렇다면 광장을 되찾은 국민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광화문광장에 언제 어떤 방향으로 앉았는가를 생각하면 답을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참 불편하게 앉아 찬바람을 맞으며 청와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편하게 앉아서 서로의 일상을 응시할 때다. 지배와 반지배가 아니라 일상의 눈으로 광장을 보아야한다.
1 세종로 전경.
2 광화문광장의 분수대 모습.
3 지난 4월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감도.(서울시 제공)
앉아서 머무는 광장으로
촛불집회 전까지 광화문광장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곳이었다. 광화문광장엔 세월호 유가족 등 빼앗긴 권리를 외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나치는 사람이 들리게 말하려니 목소리가 커지고 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광화문광장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 있고 그들이 일상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면 그들을 향한 외침도 작고 낮아질 것이다. 앉아서 말하고 앉아서 듣는 광장은 우리 사회 성숙의 지표가 될 것이다. 광장을 지나는 외국인들도 여유를 즐기는 우리의 모습에서 ‘빨리빨리 한국인’이 아니라 ‘유유자적한 한국인’의 모습을 볼 것이다.
광화문광장 조성 프로젝트는 광장을 역사광장과 시민광장으로 나누는데, 역사광장으로 부르는 위쪽 광화문 주변은 사실 외국인들의 공간이다. 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에 들고 나는 외국인을 수시로 볼 수 있는 곳이다. 경복궁을 찾는 외국인에게 우리는 문화재만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외국을 여행할 때, 광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광장을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이 아니라 광장 주변의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현지인을 보며 우리는 여행자의 정취를 느끼곤 한다. 광장에 앉아서 우리 스스로 여유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광장을 설계할 때 노천카페가 들어설 여지를 주면 좋겠다. 역사광장 양쪽 날개 부분은 시야에서 가려지는 부분인데 여기에 편안한 의자를 가져다두면 좋겠다.
서면 지고 앉으면 이긴다. 시민위원회를 통해 서울시장은 광장의 문을 여는 열쇠를 시민에게 주었다. 시민위원회가 고민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광장에 시민을 어떻게 앉을 수 있게 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 글 고재열 시사IN 편집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