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검색 창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

문화+서울

  • 지난호 보기
  • 검색창 열기
  • 메뉴 열기

COLUMN

7월호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검은 물 밑에서>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공포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2002년 작 <검은 물 밑에서>는 일상에 내재한 두려움의 근원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평온하고 안전해야 할 보금자리가 혐 오스러운 공포의 대상이 되는 순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층간 소음 문제, 단절된 이웃과의 관계 등을 그린다. 무엇보다 이혼 후, 딸과 단둘이 살아야 하는 한 여성이 사회와 맞서 겪는 근원적 생존의 공포가 오롯이 담겼다.

관련사진

여성으로 생존하기

눅눅하게 젖은 듯한 몸, 소름이 돋는 관절 꺾기, 돌아보면 어느새 나의 공간과 생활 속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어올 것만 같은 공포.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TV 화면, 종일 눈앞을 떠나지 않는 모니터, 누군가로부터 불쑥 걸려온 전화.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1998년 영화 <링>의 공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개인의 생활 속에 있는 가장 친숙한 것들이 공포의 대상이 될 때, 집 안의 모든벽과 TV에서 산발한 사다코가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를 선사했다. <링> 시리즈에 이은 <검은 물 밑에서>는 스즈키 코지의 소설 <어두컴컴한 물 밑에서>를 원작으로, 나카타 히데오 감독의 특기인 일상 속 공포를 녹여낸다.
요시미는 이혼 후 5살 딸아이의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소송 중이다. 이를 위해 안정적 거주 환경과 직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요시미는 딸과 함께 변두리의 아파트를 선택한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불안한 일상이 이어진다. 더불어 요시미는 양육권을 뺏으려는 전남편과 계속 싸워야한다. 남편은 요시미의 과거를 들먹이며 엄마로서의 자격을 되묻는다. 요시미는 딸아이를 지키기 위해 직장을 구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방치되고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제시간에 찾으러 가는 일도 버겁다. 요시미와 딸의 이야기에 원혼이 된 소녀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공포가 시작된다. 원혼이된 소녀는 방치되어 있다가 아파트 물탱크에 빠져 죽었다. 그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소녀는 평생 자신과 함께할 ‘엄마’로 요시미를 지목하고, 요시미는 딸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원혼의 엄마가 되기로 결정한다. 요시미의 딸은 살아남았지만, 다시 엄마 없는 아이로 자란다.
2002년에 만든 일본영화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에 대입해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은 지점이 있다. 2014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모녀의 자살 사건 이후, 얼마 전에는 증평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이 이혼을 하거나, 남편을 잃었을 경우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생존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난과 사회적 소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강한 모성을 강제받지만, 현실적으로 모성의 힘만으로 맞서 싸울 수가 없다. 영화는 한부모가족이 된 엄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공포도 이와 크게 다르지않을 것이다.

관련사진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목소리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근원적 공포를 되짚는 작품이었다. 골 깊은 가부장제 문화 속에서 여전히 사회적 차별이 유령처럼 스며들어 있는 일상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여성들은 큰 사건들 속의 희생자로 방치되어 있었다. 2016년 여성혐오 범죄자에 의한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었고, 이후 법조계에서 촉발되어 문화예술계로 확산, 사회 문제로 대두된 ‘미투 운동’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홍대 몰카’ 가해자 수사 과정에서의 차별 등 성차별에 맞서는 혜화역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한결같은 목소리다. 지금, 사회를 향해 외치는 목소리는 웅덩이에 빠져죽은 원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논의의 시점을 ‘왜 이제야’가 아니라 ‘이제부터라도’에 맞춰야 할 것이다. 그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결국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 인간 모두의 평등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관련사진

글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 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위로 가기

문화+서울

서울시 동대문구 청계천로 517
Tel 02-3290-7000
Fax 02-6008-7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