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검정치마의 새 앨범 <TEAM BABY>.
2 검정치마 1집 <201 >.
나의 ‘강추’ 음악 리스트
“요즘 들을 만한 음악 뭐 있어요?”
대중음악 담당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묻는 사람이야 별 생각 없이 툭 던졌겠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질문이 또 없다. 음악은 시쳇말로 ‘개취’(개인적 취향)이고, 그 사람의 평소 취향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추천해주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음원 차트를 휩쓸어도 내게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음악이 있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좋다 해도 남에게는 영 별로인 음악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보통 이런 질문에는 곧바로 대답하는 대신 “평소 즐겨듣는 음악이 뭔데요?” 하고 되묻는다.
그러던 내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망설이거나 되묻지 않고 자신 있게 대답하던 시기가 있었다. 2008~2009년이 그랬고, 2014~2015년이 그랬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보다 뭐라고 대답했는지를 말하는 게 더 낫겠다. 묻는 사람이 누구든 그 시기에 ‘강추’한 건 딱 셋이었다. 검정치마, 국카스텐, 그리고 혁오.
2008년 말 검정치마라는 낯선 이름을 내건 음반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좋아서였다. 가사는 한국말인데 분위기는 미국 인디 팝 같았고, 어떤 곡은 국적을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 엄청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데뷔 앨범을 당시 연재하던 한겨레21의 기명
칼럼에 소개했다. 거기에 조휴일의 1인 밴드 검정치마에 대해 이렇게
썼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조휴일이 2004년 뉴욕에서 3인조 펑크 밴드로 시작한 게 발단이다. 밴드가 공중분해된 뒤로는 조휴일 혼자 활동해왔다. 재작년 한국에 들어와 홍대 앞 클럽에서 잠시 공연을
하다 국내 앨범 발매를 결심했다. 다시 태평양을 건넌 그는 미 전역을 떠돌며 공연과 녹음을 했고, 그 결과물을 고국에 선사한 것이다.”
방송 출연 한 번 없이 입소문을 타고 퍼진 그의 노래들은 음악깨나
듣는 이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해졌다. 2009년 가을 음악축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는 그의 무대를 보러 온 사람들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이 가득 차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011년 2집을 발표했을
때는 언론들이 앞 다퉈 그를 인터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내심 흐뭇해하며 나도 그 인터뷰 행렬에 동참했다.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조휴일은 “제 데뷔 앨범을 언론매체에 가장 먼저 소개해준 기자님”이라며 고마워했다.
2009년 초 국카스텐의 데뷔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도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록 음악을 이렇게 끝내주게 노래하고 연주하는 괴물들이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왔을까! 다만 가사와
음악 스타일이 좀 난해해서 검정치마에 비해 대중적으로 어필하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열심히 추천했다. 이런 밴드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후 한동안은 검정치마나 국카스텐처럼 갑자기 튀어나와 내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앨범을 좀처럼 만나지 못했다. 훌륭한 앨범들은 많았으나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권할 만한 앨범은 흔치 않았다.
그러다 2014년에 만난 게 혁오 데뷔 앨범이었다. 일단 음색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앨범 수록곡들 사이에 편차는 좀 있었지만, 목소리가 그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았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밴드라 여기며 주변에 열심히 알렸다.
이후는 다들 아는 대로다. 국카스텐은 MBC <나는 가수다>와 <복면가왕>에 나오면서 전국구 스타가 됐다. 공연을 하면 다들 표를 못 구해서 안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혁오는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
함께 무도가요제 무대에 오르면서 어마무시한 화제를 모았다. 혁오가 지난 4월 발표한 앨범 <23 > 수록곡들은 최고 인기 아이돌 가수들이나 한다는 음원 차트 줄 세우기를 해냈다. 이젠 평범한 동네 술집에서도 혁오의 새 앨범 노래가 흐른다.
3 국카스텐 1집 <Guckkasten>.
4 2015년 혁오 단독 콘서트 포스터.
돌아온 검정치마
국카스텐과 혁오가 전국구 록 스타가 되어 이름을 만방에 떨치는 걸 보며 내심 검정치마가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11년 2집
발표 이후 간간이 디지털 싱글만 내놓았을 뿐, 앨범 소식은 도통 들리지 않았다. 그랬던 검정치마가 드디어 돌아왔다. 지난 5월 30일,
무려 6년 만의 새 앨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덕을 톡톡히 본 국카스텐과 혁오는 인디 밴드에서 시작해 이제는 거물급 밴드가 되었다. 매번 큰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반면 검정치마는 방송 출연 없이 조용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검정치마 같은 이도 끝내주는 음악만 한다면 국카스텐이나 혁오 못지않은 성공을 거두는 음악생태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러려면 일단 검정치마의 이번 앨범부터 성공해야 한다.
사실 이제는 내가 굳이 검정치마를 추천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서 새 앨범을 열심히 알리고 있다. 난 그저 이 좋은 노래들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코멘트만 툭툭 날리면 된다. 난 이번 앨범에서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라고 노래하는 아홉 번째 곡 <혜야>가 제일 좋아, 라고.
- 글 서정민_ 씨네플레이 대표
- 사진 제공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