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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1월호

독일의 음악과 음악관을 적극 수용한 일본 베토벤 심포니 9번과 ‘다이쿠(第九)’
일본은 유럽에서 태동한 고전음악을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해 교육·연주·감상하는 문화를 만들어왔다. ‘다이쿠’는 베토벤 심포니 9번을 지칭하는 일본식 표현으로, 타국의 문화를 현지화하는 일본인의 특성과 독일어권 음악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잘 드러나는 단어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역사 및 세계사의 맥락이 존재한다.

장윤선의 음악 정원으로
2014년 <1만인의 다이쿠>에 참여한 한국의 바리톤 한규원.

매년 12월 ‘오사카성 홀’에서 연주되는 <베토벤 심포니 9번>

해마다 11월에 접어들면 일본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베토벤(Ludwig von Beethoven, 1770~1827)의 심포니 9번 공연을 준비하는 마무리 연습이 한창이다. 일명 <합창(the Choral)>이라는 부제로 유명한 이 곡은, 심포니로는 드물게 후반부에 장대한 합창을 포함하고 있다. 바로 이 심포니 9번의 4악장 <합창>을 독일어 가사 그대로 배우고 부르기 위해, 참가자들은 신청 절차를 거쳐 이르게는 8월부터 전문가의 지도 아래 총 12차례의 연습에 돌입한다. 전국의 참여 인원을 합하면 무려 1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준비하는 공연은 1983년 시작된 이래 매년 12월 첫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1만인의 다이쿠(1万人の第九)>라는 대규모 음악회다. 이 음악회는 애초에 ‘오사카성 홀’ 완공을 기념해, 오사카에 본사를 둔 음료 제조 대기업 협찬으로 기획된 이벤트였다. 오사카성 홀은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 시대에 건축됐다고 전해지는 오사카성(大阪城) 건립 400주년에 맞춰 개장된 대형 돔 공연장이다. 이렇게 일본 제 2의 도시에서 맞이하는 역사적 순간을 위해 선택된 주인공은, 그 어떤 일본인도 아닌 독일인 음악가 베토벤이었다.
공연의 명칭처럼 일본에서는 베토벤 심포니 9번을 간단히 ‘제9(第九·だいく)’라는 약칭으로 표기한다. 우리에게는 ‘다이쿠’라는 낯선 발음이지만,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별다른 부연 설명없이도 누구나 알아듣는 고유명사에 해당한다. 몇 해 전 일본의 한 음악 월간지는 ‘일본인과 다이쿠’라는 주제로 약 스무 페이지에 걸친 기획기사를 게재한 연말 특집호를 내놓기도 했다. 이 기사는 ‘지난 반세기 이상 연말마다 일본에서 베토벤의 9번 심포니가 집중적으로 연주되어온 특수한 현상’을 다루며, 본고장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오히려 이 작품이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장윤선의 음악 정원으로
<1만인의 다이쿠>의 지휘를 맡은 일본의 지휘자 유타카 사도.

베토벤 심포니 9번이 고유명사 ‘다이쿠’가 되기까지

일본이 서양음악을 수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심포니’는 독일의 음악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일찍이 18세기에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의 이른바 ‘빈 악파’를 기점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은 기악음악의 본거지로 단단한 위상을 확립했다. 헤겔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 사상가들이 ‘새로운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음악’을 제시한 데 더해, 독일의 심포니는 근대 유럽을 상징하는 최고의 예술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독일이 주도하던 19세기 음악사 흐름의 한가운데, 멀리 동 아시아의 일본에서는 정부 주도의 서양음악전문 교육기관인 도쿄음악학교가 개교했다. 1888년 학교 설립 이후 초기 30여 년간 재직했던 외국인 교사 열 명 중에서, 프랑스인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독일계 또는 독일 출신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1913년부터 약 8년간 재직한 구스타프 크론(Gustav Kron, 1874~?)은 교내 음악회에서 베토벤의 심포니 아홉 곡 중 여섯곡의 일본 초연을 지도한 인물로 알려진다. 크론의 재직을 계기로 도쿄음악학교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베토벤 연주의 거점으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일본 내부의 민족주의가 고조되던 시기에도, 초·중등학교에서는 일본 전통 민요를 제치고 서양의 클래식음악이 우선시되었다. 음악학자 니시지마 치히로(西島千尋, 1981~)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국정교과서에 연계된 감상용 교재 70여 곡 중 일본 음악 11곡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로 독일어권 고전음악이었다. 당시 정부는 ‘바흐에서 베토벤까지의 독일 고전에는 일본인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0년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3국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나치 집권 아래 뿌리 깊은 게르만의 음악 전통과 명성 있는 오케스트라를 과시하던 당시 독일의 음악관은 동맹국 일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1940년 12월 31일 밤에는 도쿄에서 베토벤 심포니 9번이 연주되었고, 1942년 내각정보부 소속 기관으로 결성된 일본교향악단은 전시 체제 국가의 통제와 관리 아래 모두 267회에 걸쳐 정기 공연을 개최했다. 1945년 6월, 전쟁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267회 무대에서 이들이 연주한 곡목 역시 베토벤 9번 심포니였다.

우리에게 ‘베토벤’ 또는 ‘고전음악’은 어떤 의미일까

올해로 34년째 이어지는 <1만인의 다이쿠>에는 바로 이와 같은 일본 근대사 특유의 서양음악 인식, 그리고 베토벤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의 ‘다이쿠’와 ‘베토벤’ ‘서양음악’에 관한 논의는, 서양 문화를 학습하는 한편으로 상대의 문화를 자기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이쿠’는 이미 베토벤의 ‘심포니 9번’과는 별개로, 독일 음악의 범주를 넘어서 일본의 독자적 전통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다이쿠’의 사례처럼 음악은 원작의 의도와 관계없이 언제든 새롭게 해석되고 평가될 여지가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연말 크고 작은 무대에서 베토벤 심포니 9번이 연주되고 있으며, 올해에도 주요 지역 시립교향악단 등 곳곳에서 연말을 노래할 ‘합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연주가 거듭될수록 기존의 관행적이고 수동적인 감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를 중심에 두는 음악사를 엮어가기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독일과 일본의 역사 속 베토벤을 집요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독일이나 일본의 역사 학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우리 근현대사 안에서의 베토벤과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물음표를 던지기 위해서일 것이다.문화+서울

글 장윤선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사를 전공하고 ‘근대 일본의 서양음악 수용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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