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소설)은 리얼리티(현실)에 패배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말이다. 현실이 너무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해석할 수 없을뿐더러 상상마저 넘어선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목소리 소설’은 어떤 사건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그들의 육성을 그대로 전하는 방식, 즉 다큐(혹은 논픽션)와 문학(소설)을 결합한 장르다. 그는 자신이 19세기에 태어났다면 망설이지 않고 소설가가 됐겠지만, 체르노빌 원전 사고, 9·11테러 같은 인간 상상력을 넘어선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는 21세기엔, 상상의 허구 대신 현실을 옮기는 ‘목소리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 사고, 현상들이 벌어지는 시대 아닌가. 가끔 우리 시대 사람들, 멀리 갈 필요 없이 회사 동료들을 둘러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참 애쓴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생존을 위해 직립보행을 선택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후 삶이 쉬웠던 적은 없지만 우리 시대 사람들만큼 현기증 나는 일상을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좀 적응했나 싶으면 변화는 이미 저 앞을 달리며 뒷모습을 보이고, 기술의 고도화를 포함해 여러이유로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할 일의 종류와 양은 폭증했다. 철학자 한병철은 우리 시대의 질병을 우울증이라 했지만 나는 현기증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다. 각종 일, 오락, 데이터, 자극의 밀물에 휩쓸려가지 않고 온전한 자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결정과 선택이다. 하지만 정확한 선택과 올바른 결정이 어디 쉬운가. 결정은 미루기 십상이고, 대세 추종에, 외부의 요구에 뛰어다니다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한 감각도 잃어버린다. 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가 심각할 때 멈춰 서 생각하는데 책만큼 좋은 건 없다.
미루는 게 병이라면 ‘내적 동기’를 찾을 것
<무계획의 철학>, 카르린 파시히·샤샤 로보 지음, 배명자 옮김, 와이즈베리
<무계획의 철학>은 습관적으로 일을 미루는 지연 행동, 미루는 습관이 장애 수준인 사람과 생활방식을 다양한 연구와 실험 등을 총동원해 분석한 책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지연 행동을 ‘LOBO(Life style of Bad Organization)’, 조직화에 형편없는 생활방식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일을 미룰까? 우선 본성론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긴급함이 안락함을 위협한다는 걸 안다. 따라서 행복을 위해선 압박을 줄여야 하고, 압박을 낮추려면 급한 일을 피하게 된다. 행동심리학은 몇 번 미뤘더니 별일이 없자 점점 습관이 된 ‘조건적 행위’로 본다. 과제가 주는 스트레스, 두려움, 과도한 낙천주의, 완벽주의, 주의력 결핍 등도 원인이다. 당연히 너무 많은 자극과 역할을 쏟아내는 현대의 삶과 외부 환경은 엄청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미루기, 딴짓하기 등 지연 행동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세상과의 전투에서 불필요한 일을 걸러내게 하고, 복잡한 상황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한다. 미루기가 오히려 창조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히 미루기, 무계획이 왕도는 아니기에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도 조언한다. 과감하게 아웃소싱 하기, 자기만의 데드라인을 여러 개 만들기 등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적 동기’의 발견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미루지 않고 계속 하게 하는 동력은 바로 내적 동기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다소 너무 당연한 경향이 있지만, 이 복잡한 시대, 내적 동기는 모든 것의 출발점인 것은 분명하다. 사실 대부분의 진리는 윤리적으로 당연한 것들이다. 그러니 심각한 LOBO라면 많은 것을 미루더라도 힘을내서, 자기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 이것만은 미루지 말아야 한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자기결정>,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은행나무
자신의 내적 동기의 발견. 비에리의 <자기결정>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람들은 모두 타인과 얽혀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결정과 실천에 있어서 그 주체는 자신이 돼야 한다. 인간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기준에 따라 결정하고, 행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다.”
이런 자기 결정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보는 것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내가 인식하는 나’가 ‘진정한 나’인지, 아니면 외부의 시선에 ‘강요 받은 나’인지 거듭 확인해 삶에 대한 주체성을 확립해야 올바른 자기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사람이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리긴 어렵다. 이를 위해 저자는 ‘문학’을 나침반으로 제시한다. 유한한 삶을 사는 사람이 사고의 스펙트럼과 상상력의 반경을 넓히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읽기라고 했다. 나아가 이 철학자는 직접 쓰라고 충고한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작가 막스 프리쉬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삶을 언어로 표현하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이를 통해 결국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너무 결연한 것 같긴 하지만, 몰려가는 삶에서 잠깐 멈춰 서 신발 끈을 다시 한 번 단단하게 매는 것, 자기 삶을 위해 그 정도는 해줘야 하겠다.
- 글 최현미
- 문화일보 북리뷰 팀장
- 사진 제공 와이즈베리, 도서출판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