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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동네 우체국에서 탈영역의 예술이 오가는 ‘우정국’으로 예술 영역을 넓히는 이들의 장기 프로젝트
올해 6월, 광흥창역 근처에 재미있는 곳이 생겼다는 소문이 트위터를 통해 잔잔히 퍼졌다. 한창 젊은 아티스트들이 운영하는 신생 공간이 눈에 띄는 흐름으로 잡힐 무렵이었다. 그 흐름에서도 조금 ‘튄다’고 느낀 것은 ‘독특한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과 알쏭달쏭한 이름 때문이었다. 우체국이 있던 자리에 터를 잡아 지었다는 이곳의 이름은 ‘탈영역 우정국’이었다.

1 10월에 진행된 전시 <XS: YOUNG STUDIO COLLECTION>이 진행 중인 우정국 1층 공간.1 10월에 진행된 전시 <XS: YOUNG STUDIO COLLECTION>이 진행 중인 우정국 1층 공간.

우체국 자리에 예술을 채우는 우정국

젊은 아티스트들이 직접 작은 공간을 작업실 겸 프로젝트 진행 목적으로 운영하는 흐름은 올해 예술계에서 조용하지만 중요하게 언급된 이슈 중 하나다. 임차료가 저렴한 동네의 오래된 건물에 터를 잡고 젊은 창작자들의 작업을 활발하게 소개하는 공간이라는 점, 재치 있는 이름이 붙는다는 점 등은 거칠게나마 신생 공간을 특징지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우정국’ 역시 이 둘에 부합한다. 그런데 문을 연지 반년이 채 안 됐음에도 이곳이 ‘좀 다르다’고 느낀 데에는 공간을 거쳐간 콘텐츠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가야금 연주자(박경소), 소리꾼(이승희), 사운드 아티스트(조은희)가 함께한 개국식 공연부터가 그랬고, 8월에 진행된 ‘우정국 납량풍류-미드나잇 가곡산장 <88 00:00>’, 밴드 ‘씽씽; 장영규(베이스), 이태원(건반), 이철희(드럼), 이희문-신승태-추다혜(보컬), 오영훈(음향)’의 공연도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벤트였다. 10월에는 미술전문 계간지 <GRAPHIC>이 주최하는 전시 <XS:YOUNG STUDIO COLLECTION> 전(10. 1~31)이 진행됐다. 장르와 신구를 막론하고 걸출한 아티스트의 새로운 행보, 혹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작업을 선보여왔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 중 우정국 운영진이 직접 기획한 것은 6월 개국 공연뿐이라는 점이다.
“개국 공연의 경우 장르는 퍼포먼스와 미디어아트, 현대음악으로, 여성 아티스트 셋이면 좋겠다고(우정국의 운영진이 여성 셋이다) 대략적인 방향만 정해뒀는데 생각보다 잘 풀렸어요. 그 후로 아티스트 분들이 주변 아티스트에게 공간을 소개하면서 다음 공연을 이어가게 됐죠.”
공간을 꾸려가고자 하는 대략적인 방향만 정해놓았는데 신기하게도 다른 것들이 잘 맞아떨어진 편이었다. 들어온 제의에 응하며 하나둘 채운 콘텐츠가 묘한 지류를 형성한 듯했다. 여기에 운영진이 세운 방향은 좀 더 넓고 다양한 것을 수용하려는 쪽이다. 개국 후 바로 진행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모에서는 회화, 설치, 사운드, 미디어 등 장르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옥상과 주방, 구획된 실내 공간이 있는 2층에서는 소셜키친과 지역 주민 대상 워크숍 프로그램, 팟캐스트 등을 진행할 계획도 갖고 있다.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가능한 한 다양한 활동을 소화하고자 한다.

어쩌다 마주친 운영자들의 광활한 스펙트럼

2 6월에 열린 우정국 개국식 공연의 한 장면.3 10월 전시 <XS>에서는 토크 프로그램‘디자이너 서바이벌 가이드’를 진행해 주말 저녁 전시를 찾은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사진은 우정국 2층 옥상공간)2 6월에 열린 우정국 개국식 공연의 한 장면.
3 10월 전시 <XS>에서는 토크 프로그램‘디자이너 서바이벌 가이드’를 진행해 주말 저녁 전시를 찾은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사진은 우정국 2층 옥상공간)

우정국의 넓은 스펙트럼은 운영진의 다양함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다. 각각 미디어아트 작가(김선형 대표), 문화연구 전공 학생, 공연기획자로 제 밥벌이를 따로 하는 이들은 한 극장의 관객 큐레이터 활동과 문화예술 아카데미 등을 통해 만나 신나게 ‘놀러 다녔다’. 새로운 것에 거부감이 없고 취향이 비슷했던 까닭에 음악, 연극, 영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것을 함께 보러 다녔고, 결국 이것이 현재 공간을 운영하는 데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우정국이라는 이름 앞에 ‘탈영역’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새로운것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아티스트에게 열린 공간이고자 하는 운영진의 진심을 담은 것이다.
공간 운영과 기획 등 전반적인 방향을 잡는 것은 김선형 대표다. 오랫동안 공간 운영을 꿈꿨던 그는 우정국 근처에 있는 작업실을 오가던 중, 창천동 우체국이 지역 내 다른 우체국과 통합되며 건물이비어 임대한다는 공고를 발견하고 지원해 덜컥 공간 운영을 맡게 됐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1층 우편 창구가 있던 자리는 널찍하게 트인 데다 천장이 높고, 2층은 구획된 방과 주방, 옥상이 있어 전시와 공연, 워크숍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오래된 우체국 자리의 예술 공간’이라는 태생으로 지금까지 이곳에서 진행된 공연, 전시, 이벤트에 참여한 관객 중에는 관심사가 비슷한 아티스트가 많았지만, 김 대표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이곳이 예전 우체국처럼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장르 실험을 좋아하지만 꼭 그렇게만 가진 않으려고요. 몇 년 사이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지만 오랫동안 근처에 살면서 이 건물을 봐오신 주민도 적지 않다고 해요. 11월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아주머니들이 진행하는 전통장 담그기 행사에 공간을 지원하기로 했어요. 장을 담가 나누는 일종의 마을공동체 사업인데, 주민들이 편하게 와서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돌아가게끔 꾸려나갈 생각이에요.”

대중과 예술가 모두에게 쉼표가 될 ‘장기 프로젝트’

우정국 개국식 초대장에 이들은 ‘세 명의 여성이 우체국 자리에 탈영역 우정국을 세우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라고 인사말을 적었다.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이들은 5년의 임대차 계약을 맺었으니 장기 프로젝트가 맞다. 사실 임차료가 적지는 않기에 운영 방향을 해치지 않으면서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도 프로젝트 실행 내용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운영자에게 각자 ‘꿈이 뭐냐’고 물으니 김선형 대표는 ‘이곳에 가면 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고, 서울 여행 책자에 우정국이 소개됐으면 좋겠단다. 물론 앞으로 성실히 그 특색을 다져가리라는 의지에 기반한 바람이다. 사실 그런 책자 하나쯤 있을 법한데 임차료 문제, 운영진의 개인 사정 등으로 인해 서울의 문화예술 공간은 짧은 기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진득하게 뿌리내리기 쉽지 않은 예술 토양에서 이들의 장기 프로젝트가 5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이곳은 ‘먹고사니즘’의 전방에 선 예술가에게도 일종의 쉼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운영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공간을 운영하며, 팀을 이룬 아티스트들이 개별적으로는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다가 그것으론 해소되지 않는, 정말 하고 싶은 작은 공연을 하러 이곳에 오는 걸 보게 돼요. 이름처럼 영역을 깨면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계속 만들고,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제공 우정국(www.facebook.com/ujeong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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