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올해 메이커 페어에는 자신만의 제작기술로 제품·작품을 만드는 이들 150개 팀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지난 10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개최된 ‘메이커 페어 서울(Maker Fair Seoul) 2015’는 메이커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작품을 선보이고 제작방법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해 작년 한해에만 전 세계에서 약 130회 진행된 메이커 페어는 지난 2012년 처음 서울에서 개최됐는데, 첫해 30개 팀으로 시작한 행사가 올해는 150개 팀으로 늘어날 만큼 규모가 커졌다.
만들고 공유하는 ‘메이커 운동’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은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법을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말한다. 2005년 미국에서 창간된 잡지 <메이크>(MAKE)를 통해 대중화하기 시작한 개념으로, 이제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을 ‘메이커(Maker)’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3D 프린터, 소프트웨어 등의 발달로 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오픈소스 문화의 확산으로 누구나 자신만의 제작 기술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수 있게 된 지금, 메이커 운동은 개인의 취미생활에 머물던 기존의 디아이와이(DIY, Do It Yourself) 운동이 산업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메이커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의 공동 작업 공간도 눈에 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무한상상실은 현재 전국 58개 기관에서 운영 중인데, 이곳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든 ‘무한상상 발명 한마당’ 최종 결선이 올해 ‘메이커 페어 서울’에서 진행됐다. 민간 기관에서 운영하는 메이커 스페이스 중 대표적인 곳은 종로 세운상가에 위치한 팹랩서울(FABLAB SEOUL)이다. 미국 MIT 미디어랩에서 시작해 현재 전 세계 300여 개가 운영되는 팹랩은 레이저커터, 3D 프린터 등 디지털 제작 장비들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볼 수 있는 개방형 디지털 제작소다. 이곳에선 메이커들과의 교류?협력 프로젝트도 진행되는데, 이번 페어에서는 전시, 놀이, 교육, 제작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인 ‘팹 파빌리온(Fab Pavillion)’을 만들어 참여했다.
3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를 게임으로 재구성한 메이커 PINC Friends 팀의 부스.
4 젬베를 연주하는 로봇. 3D프린터를 이용해 간단하고 저렴하게 만들어진 로봇이라고.
5 대표적인 메이커 스페이스 ‘팹랩 서울’이 이번 행사에서 전시, 놀이, 교육, 제작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 ‘팹 파빌리온’.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메이커(Maker)
이번 페어에 젬베 연주 로봇을 들고 참가한 박은찬 씨는 자신을 ‘행복물건개발자’라고 소개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그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부인이 생일 선물로 준 3D 프린터를 통해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알루미늄 판재로 만든 로봇을 제작하고 방법을 공유했는데 제작비도 높고 방법도 어려워 사람들이 많이 따라 하지 못했다. 이번 3D 프린터로 만든 로봇은 보다 간단한 방법과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 수 있고, 따뜻한 느낌의 재질이라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로봇을 만들 수 있다”며 “이 친구는 젬베를 연주하고 저는 기타를 치면서 버스킹 세계 여행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동화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를 게임으로 재구성한 메이커는 초등학교 4학년생 6명으로 구성된 PINC Friends팀이다. 노란 인형모자를 쓰고 부스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던 최혜인 양은 “스크래치(Scratch)와 아두이노(Arduino)를 배운 지는 7개월이 됐고, 이 프로그램을 선생님과 함께 만드는 데 약 3개월이 걸렸다”며, “아이들이 우리가 만든 걸 좋아해줘서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인터랙티브 가상현실(VR_Virtual Reality)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디지털히피팀은 영화 <가상현실에서의 죽음>을 들고 참가했는데, 이 영화는 지난 9월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에서 진행된 미디어아트 축제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5>에 전시된 작품이기도 하다. 전시장 공간에선 작품 의도와 같이 읽혀지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존재했지만, 페어에서는 360도 모든 방향의 영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내세워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13년부터 페어에 참가했다는 이성은 감독은 “내가 만든 작품을 공유하고 싶고, 또 다른 메이커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싶어서” 계속 페어에 참가하게 된다고 한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과학자와 예술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것도 무의미해진다. 삶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고, 이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을 이제는 그저 ‘메이커’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면 된다.
- 글·사진 이정연
- 서울문화재단 홍보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