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오페라발레 19/20 시즌 오프닝 공연.
샤넬에서 제작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CHANEL
그런 그녀가 꼭 10년 만에 파리오페라발레의 ‘별etoile’이 됐다.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의미처럼 발레단의 가장 높은 등급의 무용수를 지칭하며, 연차에 따른 승급이 아닌 이사회의 결정으로 지명된다. 여느 때보다 의미가 남다른 시즌을 마치고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한국을 찾은 박세은을 만났다. 귀국하자마자 이어진 여러 인터뷰에 다소 지친 모습에도 춤 이야기를 꺼내자 눈빛이 다시 반짝였다.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해야 하는 인터뷰는 좀 어렵다면서도 더 많은 사람에게 발레를 알리는 일이니 힘이 닿는 데까지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파리에서의 10년, 쉬지 않고 올라서다
“6월 23일 <로미오와 줄리엣>을 끝으로 20/21 시즌을 마쳤어요. 에투알이 되면서 공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개인 분장실이 주어지는 등 당장의 변화가 시작됐죠. 새 시즌이 개막하는 9월 ‘시즌 오프닝 행진Defile du Ballet’ 무대에서 왕관을 쓰면 정말 실감 날 것 같아요. 행진이 끝나고 새로운 에투알을 소개하는 2부 갈라 공연으로 <에튀드Etude>를 준비하고 있어요.”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기까지 박세은에게는 ‘콩쿠르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짧게는 1분 30초에서 길어야 10분 안에 자신의 기량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 국내외 콩쿠르를 섭렵한 그녀는 준비한 춤을 무대에 펼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2007년에는 15~18세 젊은 무용수들의 등용문인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활동 반경을 해외로 넓혔다. 수상 특전으로 장학금을 받아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스튜디오 컴퍼니에 입단했다. 처음 약속한 기간을 넘겨 감독의 권유로 두 해 동안 활동한 그녀는 당시 국립발레단을 이끌던 최태지 단장의 추천으로 국내 무대로 돌아와 춤추게 된다. “한국 무대도 아무 때나 들어와 춤출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차근차근 성장해 나갈 기회라는 최태지 단장의 뜻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특채로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면서 군무부터 주역까지 여러 역할로 무대에 올랐다. 국립발레단이 세계 무대에 선보이기 위해 제작한 창작 발레 <왕자 호동>(2009, 안무 문병남) 무대에 주역으로 데뷔했다. 한편 ‘콩쿠르의 여왕’이라 는 명성(?)답게 로잔 콩쿠르 이후 3년 만인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 발레 콩쿠르에 출전해 시니어 부문 여성 1위를 거머쥐었다. 현재 마린스키 발레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는 김기민이 같은 해 주니어 부문에서 남성 1위를 기록한 대회다. 그즈음 한국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에 입단해 쉬제Sujet, 솔리스트까지 오르며 활약한 김용걸이 귀국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하던 차였다. 박세은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용걸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더 넓은 세계로 시야를 넓혀갔다. 학교에서 배운 바가노바 메소드Vaganova method, 러시아에서 정립된 발레 훈련법가 전부이던 그녀에게 김용걸의 춤은 새로웠고, 유럽의 춤을 궁금 하게 만들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외국으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발레단의 문을 두드렸고, 네덜란드 국립발레에서 솔리스트 자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파리오페라발레의 공개 오디션 소식을 듣고 결정을 잠시 미뤘다. 실패하더라도 오디션에 도전하고 싶어서 무작정 파리로 향했다. 2등까지 채용되는 오디션에서 세 번째 칸에 이름을 올렸고, 극적으로 준단원 신분의 1년 계약을 맺었다. 2011년 8월이었다.
외국인 비율이 5% 남짓한, 350여 년 역사와 전통을 지닌 발레단에서 박세은은 단단하게 성장했다. 이듬해 카드리유Quadrille, 정단원가 됐고, 2013년 승급 시험을 통과해 곧바로 코리페Coryphee, 군무 리더로 올라섰다. 그해 발레단에서 주목하는 앞날이 기대되는 24세 미만 무용수에게 수여하는 세르클 카르포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쉬제가 됐으니 쉬지 않고 매해 계단을 오른 셈이다.
‘나는 에투알이 될 수 없을까?’ 하는
의심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인정받고 있고, 기회는 꾸준히 온다고 생각했죠.
<백조의 호수> 중 한 장면 ⓒJulien Benhamou/Op ranational de Paris
“증명하지 않아도 돼. 이제부터 네 춤을 춰”
“프랑스 춤을 배우는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저에 대한 현지의 평가는 둘로 나뉘었죠. 감정이 없고 기술만 뛰어나다, 혹은 프랑스 무용수들을 제치고 정말 큰 무용수가 될 것이다. 저는 입단 때부터 캐스팅이 좋은 편이었어요. 준단원 시절에 주역급 배역인 <돈키호테> ‘숲의 여왕’과 ‘거리의 무희’ 언더스터디understudy, 돌발 상황 시 주연 배우 대신 투입되는 배우로 이름을 올린 적도 있죠. 입단 전 국립발레단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섰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생각해요. 코리페로 승급한 뒤 바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 파랑새 역을 맡았고, 카르포상도 받았고요. ‘나는 에투알이 될 수 없을까?’ 하는 의심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인정받고 있고, 기회는 꾸준히 온다고 생각 했죠.”
2014년 겨울, 박세은은 장 기욤 바르가 안무한 <라 수르스La Source>의 주인공 나일라로 캐스팅됐다. 1866년 초연된 19세기 발레를 복원한 작품으로,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의상 디자이 너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 기욤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클래스에서 네가 에카르테ecarte, 사선으로 다리를 높게 든 채 바깥쪽을 향하는 동작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묻어나는 느낌이 바로 나일라였다고요. 안무가가 저를 직접 캐스팅했다는 점, 동작 하나만 보고 숨겨진 표현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점이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저 역시 안무가가 원하는 해석에 가장 가깝게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발레단에 들어와 2011년 초연부터 군무로 수차례 공연한 작품이 <라 수르스>예요. 스토리·동선·안무까지 모두 알고 있었죠. 제겐 행운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어요. 에투알이 되고 나서 장 기욤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더는 증명 하지 않아도 돼. 이제부터는 네 춤을 춰’라고요.”
하지만 마냥 꽃길만 걷는 것은 아니었다. 쉬제가 된 후 고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2014년 브리지트 르페브르 후임으로 예술 감독에 부임한 뱅자맹 밀피에가 불어넣은 새바람에 휩쓸렸다. 클래식 발레의 비중은 줄어들었고, 새 감독과 호흡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에는 아너 테레사 드 케이 르스마커르의 작품 <콰르텟 4번Quatuor n˚4>을 연습하던 중 동료의 구두 굽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2016년 2월 밀피에 감독은 단원들과의 갈등 끝에 사퇴를 선언했고, 오랜 시간 발레단에서 신임을 얻으며 무용수로 활동한 오렐리 뒤퐁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해 있던 승급 시험에서 박세은 은 프르미에르 당쇠르Premiers danseurs, 제1무용수로 올라섰다. 그녀는 오랫동안 춤을 췄지만 비로소 프르미에르 당쇠르가 되고 나서부터 자신감이 붙었다면서 “내 춤을 의심하지 않고 마음껏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단계이자, 승급 시험이 아닌 이사회의 결정으로 지명되는 에투알이 된 것에 대 해 “기다리고 인내한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6월 10일, <로미오와 줄리엣> 오프닝 공연에서 그 시간들이 빛을 발했다.
“폴 마르크와 저는 원래 오프닝이 아니라 두 번째 공연이었어요. 다른 무용수의 부상으로 일정이 바뀌면서 저희가 오프닝 무대를 맡게 됐죠. 사실 이미 6월 초부터 최상의 컨디션이었어요. 바로 공연해도 좋을 정도로 준비된 상태였죠. 컨디션이 워낙 좋다 보니 빨리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어요. 코로나19 상황으로 오랫동안 공연을 못 하기도 했고요. 16일에서 10일로 공연 날짜가 일주일이나 당겨졌고, 본공연을 앞두고 7일에 프레스콜까지 한차례 경험했어요. 무대가 아주 편했어요. 그만큼 연습했기 때문이겠죠. 안 되는 동작 하나를 완성해 보겠다고 하루에도 20~30번씩 반복 연습했어요. 비밀인데, 그렇게 안 되던 동작이 마지막 공연 때는 되더라고요.”
발레는 국경과 인종, 피부색을 뛰어넘는 예술이죠.
저를 아시아인으로 통칭하기 전에
박세은의 춤을 먼저 봐주길 바라요.
춤에 정답은 없기에
파리오페라발레를 지탱하는 전통을 꼽는다면 루돌프 누레예프의 유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훌륭한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그는 오늘날 파리오페라발레의 ‘클래식’을 정립했고, 대표 레퍼토리도 여럿 남겼다. 화려한 테크닉, 음악의 박자를 첨예하게 분할하는 안무, 그 위에 얹어지는 ‘프랑스식’ 표현까지. “누레예프의 레퍼토리가 추고 싶어서 파리에 갔다”는 박세은의 회고는 허사가 아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박세은은 테크니션이었다. 스스로 어려운 동작은 많지 않다고 할 정도로 테크닉은 이미 섭렵한 터였다. 하지만 에투알로 지명된 그 무대, <로미오와 줄리엣> 속 박세은의 춤은 매혹적이었다. 그간 동작은 더욱 섬세해졌고, 호흡은 안정됐으며, 표현력은 무르익었다. 자신 춤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프랑스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춤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전까지 저는 언제나 정답을 찾으려는 사람이었거든요. 연습을 엄청나게 해서라도 모든 테크닉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했고, 그렇게 했을 때 언제나 결과도 좋았어요. 그런데 프랑스에서 공연을 보고 알았죠. 제가 알던 춤이 전부가 아니며, 이렇게나 다양한 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요. 에투알마다 색깔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고,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도 달라요. 춤에 정답이 있지 않고, 제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사람마다 풍기는 오라aura가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제가 여기서 춤을 춘다면 저만의 색깔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2018년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하며 파리오페라발레를 대표하는 무용수로 세계에 이름을 알릴 당시 그녀가 춘 레퍼토리는 조지 발란신의 <보석Jewels>이었다. 어째서 파리오페라발레의 무용수가 누레예프의 프로덕션이 아닌 발란신의 작품으로 후보에 올랐는지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박세은이라는 무용수가 파리오페라발레 스타일로 발란신을 추는 것이 아니라, 발란신이 이 작품을 창작했을 때의 의도와 해석을 이해하고 춤추는지를 중요하게 봤다고 생각해요. 그게 이 작품을 더 빛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신체가 만들어내는 선이나 테크닉보다는 초기에 이 작품을 많이 춘 수잔 패럴이 가진 매력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리허설 동안 코칭 선생님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 영상을 보면서 오리지널리티를 연구했죠. 누레예프도 마찬가지예요. 그가 안무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는 강단 있는 여성으로 그려져요. 그런 철학까지 파고들면서 작품을 준비했죠. 개인적으로 그런 과정을 즐기는 편이고요.”
10년 전만 해도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이 정답인 줄 알고 그저 성실하게 연습하는 학생이었다면, 박세은의 색은 그사이 점점 더 깊이를 더해갔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라 수르스> 에서 박세은은 반짝이고 생기발랄한 파랑새이자 요정이었고, 저스틴 펙과 알렉세이 라트만스키의 컨템퍼러리 발레에서는 안무가의 뛰어난 뮤즈로 분했으며, <오네긴>에서는 비로소 무 르익은 연기를 선보였다.
“에투알로 꼭 춰보고 싶은 작품을 고른다면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지만 우선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꼽고 싶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한 작품이거든요. 공주 이야기라서 그랬을까요?(웃음) 주인공 오로라 공주만 빼고 이미 모든 역할을 해봤어요. 그리고 <마농>은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고요. 체력이 받쳐줄 때 누레예프 버전 <돈키호테>도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추고 싶은 작품을 묻는 질문에 설레는 표정으로 목록을 줄줄이 읊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어느덧 발레계가 가닿지 못한 길을 개척한 선배가 된 박세 은이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저는 이래라저래라 이야기하지 않아요. 오히려 ‘나는 이랬다’고 경험을 공유하는 편이에요. 제가 가는 길이 정답은 아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고요. 다만 저도 힘든 때가 있었기에 네가 힘든 게 있다면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저와 대화하면서 갈증을 해소하는 것처럼 어려움이 있을 땐 자주 나누면 좋겠고요. 콧대 높은 프랑스 사람들도 제가 먼저 마음을 열면 웃어줘요. 모든 것이 제 마음가짐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으로 돌아와 본다. 쉬제 이후 박세은이 보여주는 모든 행보에 붙는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 그리고 ‘최초의 아시아인 에투알’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그런 말들이 중요할까 싶어요. 발레는 국경과 인종, 피부색을 뛰어넘는 예술인데, 그런 타이틀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저를 아시아인으로 통칭하기 전에 박세은의 춤을 먼저 봐주길 바라요. ‘최초의 아시아인 에투알’, 물론 대단하죠. 하지만 제가 아시아인이 아니었다면 에투알이 되지 못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 김태희 무용평론가 | 사진 제공 에투알클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