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과
<게르하르트 리히터: 4900가지 색채>
사랑받는 거장을
서울에서 만나다
기존 틀을 깨부순 피카소 걸작 110여 점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 5. 1~8. 29
피카소 전시에서는 그의 예술 세계 전반을 보여주는 걸작 11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대한항공이 프랑스 파리의 국립 피카소미술관에서 화물기 2대, 여객기 2대로 네 차례에 걸쳐 공수해 온 작품이다. 피카소미술관이 보유한 300여 점의 회화 중 10% 이상(34점)이 외부 전시에 나온 건 이례적이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작가가 6·25전쟁을 모티프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표현한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한국을 모티프로 그린 그림이지만 국내에 전시된 건 처음이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담은 <게르니카>,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시체구덩이>와 더불어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으로 꼽힌다. 그의 반전 예술로 인해 미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품에서 사회 참여의 도구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다.
그의 입체주의(큐비즘) 회화 대표작 중 하나인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초상> 역시 피카소가 미술사에 끼친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눈·코·입이 괴상하게 붙은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입체주의 그림은 처음 등장했을 당시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 미술계 최대 발명으로 꼽히는 원근법을 깡그리 무시해서다. 피카소는 당시 미술가들에게 경전과도 같았던 기존의 틀을 깨부쉈고, 이로써 근대 서양미술의 주요 사조인 모더니즘이 시작됐다.
전시는 피카소의 20대 청년 시절 회화부터 80대 만년의 대작까지 망라한다. 피카소의 초기작 중에서는 <인물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누드>가, 만년 작품 중에서는 <칸 해안>이 눈에 띈다. 회화뿐 아니라 도자기(29점)·판화(30점)·조각(17점) 등에서도 기존 미술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피카소의 천재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기타와 배스병>은 나무판 위에 목재와 신문지 조각 등을 붙인 작품이다.
리히터의 추상회화가 사랑받는 이유
<게르하르트 리히터: 4900가지 색채>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 3. 12~7. 18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전시 중인 리히터의 그림은 프랑스 명품 재벌이자 컬렉터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이 수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루이비통 재단 소장품이 된 후 유럽 밖에서 전시되기는 처음이다.
리히터 그림의 매력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초점이 나간 듯한 흐릿한 그림, 대상을 뭉개버려 색만 남은 추상회화 등 전통적 미의식으로는 아름답다고 보기 어려운 그림이 많다. 일반 대중 사이에서 “나도 그리겠다”는 비아냥이 심심찮게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대로 된 리히터 전시가 열린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계는 찬사를 쏟아낸다. 1960년대 초기부터 시작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설적 작품 세계가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방대한 작업량과 사진을 바탕으로 한 초상화·풍경화·정물화·모노크롬 추상화·색채 견본집 연작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그를 더 돋보이게 한다는 평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리히터의 대표작 중 하나인 <4900가지 색채> 중 아홉번째 버전을 만나볼 수 있다. 2007년 쾰른 대성당 남쪽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은 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색채를 배열한 게 이번 전시작으로 이어졌다.
알록달록한 정사각형의 컬러 패널이 불규칙하고 자유롭게 다른 색깔과 만나 거대한 화폭을 이루고, 작은 패널은 각자 다른 색깔과 만나 다채로우면서도 조화로운 이미지를 구성한다. 리히터가 빨강·노랑·파랑·초록색을 컴퓨터로 무작위 배열해 구성한 작품이다. 현대미술 대부분이 그렇듯 모니터 화면으로 보면 그저 의미 없는 색의 배열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전시장에 들어서면 4,900가지 색에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글 성수영 《한국경제신문》기자 |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에스파스 루이 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