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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책 《냉전의 마녀들》과 《수용소와 음악》 과거의 처절한 삶이
내뿜는 숭고함

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하지만 포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잘 살피면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많은 요소가 남겨져 있다. 포로수용소에서 음악 활동이 빈번했다는 기록을 읽으면, 인간에게 음악의 의미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목숨을 걸고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기 위해 격전지로 떠난 이들의 기록을 보고 있으면, 숭고함이 느껴진다. 제1·2차 세계대전 중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쓰인 책 두 권이 나와 소개한다.
전쟁 중에 약자와 연대하려다 ‘마녀’가 된 여성들 《냉전의 마녀들》 | 김태우 지음 | 창비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15일. 21명의 여성이 중국 선양의 한 호텔방에서 유서를 적고 있다. 다음 날이면 여성들은 배를 타고 북한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이들은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여성단체로 꼽히던 ‘국제민주여성연맹(국제여맹)’의 초청으로 6·25전쟁의 참상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위원회 위원이다. 덴마크·체코슬로바키아·네덜란드·영국 등 18개국에서 모인 여성들은 변호사·정치가·도서관장·대학교수 등으로 당시에도 내로라하는 ‘인텔리’였다.
《냉전의 마녀들》은 국제여맹이 10여 일 동안 신의주·평양·황해도·평안남도 등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역사학자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는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와 미 공군의 기록, 조사위원들이 본국에 돌아가 남긴 개인 기록·언론 활동을 치밀하게 파헤쳤다. 책은 기록 복원물이나 한 편의 전쟁소설처럼 인물의 서사를 군데군데 섞는 방식으로 쓰여 술술 읽힌다.
조사위원회는 4개 조로 나눠 북한 곳곳을 돌아다니고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보고서에는 미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농촌의 모습, 집단학살과 고문, 성폭력 피해 등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여성으로서 조사위원회의 눈은 전쟁의 피해 규모보다 같은 여성들이 전시에 겪는 끔찍한 폭력을 면밀히 살폈다. 4개 조 중 강원 지역 조의 조사 보고서는 전체 분량의 4분의 1 이상을 성폭력 관련 내용에 집중했다. 몇몇 북한 여성은 조사위원들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뜨렸다고 한다.
목숨을 건 조사 활동의 결말은 ‘새드엔딩’이었다. 미군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담겨 있었기에 보고서는 소련과 공산당의 ‘선전 팸플릿’ 정도로 취급됐다. 공산권이 아닌 서방 국가의 조사위원들은 귀국 후 ‘빨갱이’ 취급을 받아야 했다. 영국 조사위원이던 모니카 펠턴은 인도 남부의 항구도시 마드라스로 망명해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조사위원 중 누구도 보고서의 내용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지 않고 박해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냉전의 마녀들》은 연대의 기록을 부정하고 소신을 굽히느니 ‘마녀’로 남기를 택한 이들의 이야기다.

죽음과 전쟁이 일상인 곳, 음악이 있었다 《수용소와 음악》 | 이경분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50만여 명이 희생된 ‘살인 공장’ 아우슈비츠. 그 안에서 음악은 일상이었다. 아우슈비츠 안에는 수용소가 여러 곳 있는데, 모든 수용소에 오케스트라 또는 밴드가 있었다. 중앙수용소의 오케스트라는 단원이 1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단원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행진곡을 연주했고, 일요일 오후에는 실외에서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수용소 안에서 음악은 기본적으로 폭력과 통제의 수단이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막 기차에서 내린 예비 수감자들이 음악을 들으며 경계심을 풀도록 도왔다. 수감자들은 행진곡에 맞춰 하루를 시작했다. 동시에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안이자 위로가 됐다. 수감자들은 일요 콘서트 때 쇼팽·차이콥스키 등의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끔찍한 현실을 잊었다. 책 《수용소와 음악》은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펼쳐진 음악 활동에 대해 쓴 책이다.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연구 교수는 음악 활동이 이뤄진 수용소들을 연구했다. 그는 독일 연방 아카이브 (기록보관소) 등의 기록을 샅샅이 훑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오스트리아군 포로를 수용한 일본의 수용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주로 유대인을 수용한 체코의 테레지엔슈타트,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등 총 세 지역의 수용소를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수용소 안에서도 삶은 계속됐다. 일본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포로들은 연주에 필요한 악기를 직접 구매하거나 대여·제작했다. 포로 중 한 명인 아마추어 음악가 하인리히 함이 기타를 만들어 다른 포로와 물물교환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경분 교수는 “수용소마다 배경은 다 다르지만, 음악 활동은 어디에나 있었다”며 “보통 음악이란 먹고살 만할 때 한다고 생각하는데, 수용소와 같이 위기 상황에서 음악이 삶의 동아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의 표지는 진중하지만, 내용은 쉽고 잘 읽히게 쓰였다. 총 428쪽이지만, 자간이 넓고 각주가 많아 실제 분량은 많지 않다. 교향곡을 들으며 커피 한잔과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이혜인 《경향신문》기자 | 사진제공 창비, 성균관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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