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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즐기세요. 최대한 웃으면서….”
아프리카 타악기인 젬베의 두드림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15명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레게 머리를 한 선생은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한다. 상체와 하체를 같이 움직이라며. 때론 손과 발이 따로 노는 이들을 위해 손수 시범까지 선보인다. “짜짠짜짜. 따따딴….” 격정의 동작 덕분에 10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옷이 땀으로 적셔진다.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본 선생이 “잠시만 쉬고 하자”고 말하자마자 이들은 자리에 드러눕는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이들은 저마다 곡소리를 질러댄다. 20대부터 40대까지 성인들로 구성된 이 수업의 제목은 아프리카 댄스를 배우기 위해 모인 ‘꿈의 아프리카 댄스’이다.
지난 10월 15일 점심시간이 갓 지난 한적한 오후, 마포구에 위치한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지금껏 각양각색의 춤을 지켜봤지만 ‘아프리카 댄스’라니, 다소 생경한 분야다. 필자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프리카 춤 댄서인 양문희 씨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수업에 참관해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연습은 2시간 넘게 계속됐는데, 젬베를 연주하는 4명의 단원을 포함해 15명의 멤버들까지 모두 열정이 가득했다. 고행을 마치고 빠져나오는 수강생 강예지 씨에게 이 수업에 빠진 이유를 물었다. “춤은 억눌린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예요.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차원을 넘죠.” 그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인데 춤이 좋아 무작정 따라 추던 취미 수준에서 벗어나 토할 때까지 극한으로 내몰리는 이 춤이 그냥 좋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양문희 씨는 졸업 이후 극단과 뮤지컬에서 안무가로 활동했다. 춤을 멈춘 적은 없었지만, 정해진 틀에 맞춰 반복하는 동작에 싫증을 느꼈다. 마치 CD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로봇처럼 느껴졌을까? 현대무용이 그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기에는 부족했는지,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춤을 찾아 여정을 떠났다.
“자원봉사로 갔던 튀니지에서 배운 춤이 ‘진정한 아프리카 춤’인지 고민했어요.” 마치 유럽의 영향을 받은 벨리댄스 느낌이었다. 이듬해 진짜 아프리카 춤을 배우려고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SNS에 아프리카 춤을 검색했죠. 마스터를 찾아가 직접 배우고 싶다고 졸랐어요.”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1년에 3개월은 아프리카에서 사는 게 일상이 됐다. “첫해엔 도착하자마자 많이 울었어요. 저 빼고 모두 잘 추는 것 같더라고요.” 춤을 소화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매달렸고 마스터에게 인정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 “너 진짜 대단하다”는 한마디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이후로 다시 7년이 흘렀다. 한국과 아프리카를 오갔던 지난 세월 동안 서아프리카 7개국의 춤을 섭렵했다. “제 자랑 좀 해도 될까요? 현지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죠. ‘저 사람이 댄서 문이야?’ 하고 말이죠.” 현지인보다 더 아프리카 춤을 잘 춘다는 말은 어떤 칭찬보다 듣기 좋다고 고백했다.
“지난 2011년 아프리카 춤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했을 때,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바라보더라고요. ‘우가우가’ 아니냐고 해요. 뼈다귀를 들고 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하고요. 아프리카 춤이 더 이상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해요.” 아프리카 대륙은 55개국 2,500여 민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는 우리가 어느 한 곳만 보고 모두를 대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몸소 겪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아프리카에선 몇 사람만 모여도 춤이 빠지지 않는단다. 젬베와 서너 명만 있으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뽐낸다. 그는 그것을 ‘흥’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흥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도 농번기에 춤, 노래, 풍물을 즐기는 풍습이 있잖아요. 아프리카도 농사를 지을 때 춤으로 기운을 북돋는 문화가 있어요.” 그는 서로가 춤을 통해 서러움을 푸는 면이 비슷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아프리카 춤은 흥과 감정에서 나온다며, 팝핀이나 브레이크댄스 같이 기교로 움직이는 것과 근본이 다르다고 힘주어 말했다.
필자는 지난해 12월, 용산구에 위치한 블루스퀘어에서 전통 사물놀이 대가의 콘서트 <사물놀이; GRAND MASTER 이광수>를 관람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하얀 옷을 입은 검은 레게머리의 여성 퍼포머가 상모놀이에 맞춰 요란한 춤을 선보였다. 당시엔 그가 누군지 몰랐다. 게다가 ‘사물놀이와 이 춤이 서로 연관성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주인공이 그였다는 사실을 후에 알았다. 한편으론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이라도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생뚱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네요. 우리 춤을 어느 정도 아느냐고.” 초등학교 때 발레를 시작해, 중·고등학교 땐 한국무용을 배운 그는 한국과 아프리카의 춤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단지 악기와 피부색이 다를 뿐이죠. 우리가 어떻게 전통춤을 추는지 잘 살펴보세요.” 굳이 두 춤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국민성이 아닐까 되묻는다. “우리는 음악이 나오면 무대로 나오길 주저하죠.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1초의 망설임도 없죠.” 그렇게 열정으로 추는 아프리카 춤이야말로 “죽을힘을 다하는 춤”이란다.
그가 진행하는 수업은 마포문화재단이 2015년부터 추진한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브랜드인 <꿈의 무대>의 일환이다. 이는 지난 10월 26일 합창단, 극단, 무용단, 밴드, 오케스트라, 전시, 문학, 그리고 바투카다(브라질 댄스)와 함께 아프리카 댄스를 선보인 <꿈의 카니발> 무대를 위해 마련됐다.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선발된 34명의 수강생은 두 달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에 몰두했다. 필자가 연습실을 찾은 날에도 공연을 며칠 앞두고 세부 동작을 다듬고 있었다. 두 개 조로 나뉘어 연습하던 이들은 서로의 몸동작이 하나의 군무처럼 보이는지 전면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몸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는 3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와 수업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단 10분의 퍼포먼스를 위해 땀을 비 오듯 쏟아내는 이들은 자투리 시간조차 허투루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아프리카 춤을 처음으로 알린 선구자로서, 이후 10년 동안 새로운 길을 파헤친 개척자로서 그는 수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자신의 바람을 들려줬다. “세상의 어느 것에도 갇히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면서. 그것은 앞으로 제가 살아갈 인생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 이 글은 마포문화재단 뉴스레터(MACZINE)에 동시 게재됩니다. www.mapoartcenter.or.kr 마포문화재단
양문희는 한국체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현재는 아프리카 공연예술 그룹 ‘포니케’의 리더로, 브라질 바테리아 댄스 그룹인 ‘라 퍼커션’에서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2017년부터 마포문화재단의 생활예술 브랜드 ‘꿈의 카니발’에서 ‘꿈의 아프리카 댄스’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쇼콰이어 하모나이즈 아프리카>(2018), 연극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2018) 등의 안무에 참여했으며, <SBS 컬처클럽: 아프리카, POP이 된다>(2013) 등의 방송에 출연했다. 공연한 작품으로는 <서울 아프리카페스티벌>(2019), <아프리카 콜라보>(2019), <사물놀이; GRAND MASTER 이광수>(2018) 등이 있다. 최근 책 <아프리카에 춤추러 가자>(2019)를 발간했다.
“그동안 외국을 좇아가기 바빴다면 이제는 우리의 세계화에 도전해야죠.”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삶을 그린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을 제작한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장수동 예술감독의 말이다. 전작을 살펴보면 <백범 김구>부터 이번 작품까지 ‘격동기 인물’에 집중한 것이 많다. 그는 그 이유를 “역사를 오늘의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한국 오페라를 동시대의 음악 언어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민간 예술단체는 예산 압박과 관심 부족으로 인해 작품을 꾸준히 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창단 25주년이 되는 단체를 이끌면서 100여 편의 오페라를 제작했다. 그 원동력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의 마지막 종합예술이 주는 감수성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구로문화재단의 상주 예술단체로 4년간 활동해오고 있는 데 대해 “오페라를 공연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박스가 있는 곳이 서울에 몇 개 안 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여기에 한국 오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신작에 관한 그의 고집에 보상이라도 됐을까. 2017년 초연됐던 <나비의 꿈>은 지난해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시상식에서 ‘소극장 최우수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 9월 27~28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이번 작품은 소극장용 공연이지만 오케스트라를 보강해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으며, 감옥에서 고통받았던 윤이상의 상황을 극 중 극으로 보여주는 과정에 집중했다.
한편 장수동 연출은 대중들에게 오페라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부탁하면서도 오페라를 만드는 동료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오페라의 변방에서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한 한국 오페라가 세계 속의 오페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글로컬(글로벌+로컬) 오페라로 거듭나야 해요. 쉽지는 않겠지만 이는 우리(오페라인)에게 맡겨진 소중한 예술 작업이자 사명입니다.”
창작 오페라 <나비의 꿈>.
장수동은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해 <춘향전>, <심청>, <안중근>, <백범 김구> 등 100여 편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제1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연출상(2008), 제2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대상(2009), 제24회 기독교문화대상(2011), 서울문화투데이 최우수연출상(2015) 등을 받았다. 현재 서울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이자 대표로 재직 중이다.
- 글 이규승_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