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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배우,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공효진 두렵더라도 가야 하기에
배우 공효진이 지난 10월 10일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2019’ 무대에 올랐다. 지구 환경과 미래 인류의 삶에 대해 세계적인 명사들의 지혜와 경험을 공유하는 이 자리에서, ‘Do We Need Another Planet?’(우리에게 다른 행성이 필요한가?)이라는 철학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첫 번째 기조연사로 나선 것이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과 배역을 그야말로 ‘물아일체’의 경지로 끌어내 마침내 실존 인물화하고야 마는 이 천생 배우는, 어쩌자고 이 무대에 덜컥 올라 떨리는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게 된 걸까.

마이크를 쥔 배우의 손에 잔뜩 힘이 실렸다. 1,000여 명 관객의 눈길이 배우에게로 향했다. 긴장감 역력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 배우는 연기할 때와 같은 톤의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공효진입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웃음)

겁내고 모른 척하기엔, 환경문제는 내 인생의 주제

2019년 10월, 배우 공효진은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는 중이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를 통해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동시에 휘어잡는 데 성공하며 20년째 현재 진행형 톱 배우로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빠듯한 드라마 제작 일정을 무려 하루씩이나 비워두고 포럼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 시작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로벌 아트페어 ‘아트바젤’이 열리던 3월, 홍콩을 방문한 그는 갤러리스트 친구와 함께 서구룡의 M+박물관을 찾았다.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이었지만, 풍성한 실루엣의 트렌치코트에 디올의 새들백을 무심하게 둘러멘 옷맵시에서, 몇몇 관람객들은 금세 그가 ‘패셔니스타’ 공효진임을 눈치채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년째 그의 ‘팬’을 자처하는 기자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다.
“헤럴드디자인포럼에 기조연사로 나서주세요. 배우님이라면 올해 주제에 대해 많은 대중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기자)
“저도 환경문제라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요. 앞으로 함께 의견을 나눠봐요.” (배우)
그렇게 시작된 ‘기자의 제안’은 4개월 이상 ‘배우의 확답’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기다림이 계속돼도 괜찮았다. 공효진이라면, 이 주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적어도 20년 팬이라면 이 배우가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고민하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침내 배우는 결심했다. 무대에 서기로. 카메라 앞에서보다 더 떨리는, 그래서 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서는 자신의 SNS에 “앓던 이 빠짐”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로 긴장했던 그 무대에 기어이 올라갔다.
“제가 환경을 걱정하는 걸 사람들은 잘 몰라요. 방송에서 그런 제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고, 또 그렇다고 제가 완벽한 환경운동가도 아니니까요. 제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일회용품을 쓰는 제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SNS에 올라올 수도 있어요. 어쩌면 제 무덤을 파는 일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겁내고 모른 척하기엔, 환경문제는 제 인생의 주제인걸요. 아 참! 환경운동가라는 말은 너무 부담스러워요. 이번 포럼을 계기로 진정한 ‘운동가’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겠죠.”

세계적인 아트·디자인계 명사들과 함께한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그저 연기만 잘하는’ 것이 한국의 배우들이 별 탈 없이 연기 생활을 이어가는 길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20년 차 배우이기에, 환경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는 짐작할 만하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이제 막 서른이 되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 그는 <공책>(2010)이라는 제목의 환경 에세이를 출간했다. 지금이나 9년 전이나 그의 고민과 번뇌는 그대로다.

몰래 껌 종이를 떨어뜨릴 수도 있고, 촬영장에서 일회용품에 담긴 도시락을 먹고 슬쩍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욕을 먹을 수 있고, 사진까지 찍혀 네티즌에게 지적당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두려워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 혼자선 정말 별것 아닐 수 있는 일들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정말 큰 일을 낼 수 있다고 믿게 됐다.”

_<공책> 중
트렌드세터, 패셔니스타, 혹은 ‘공블리’ 같은 수식어가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도록 변치 않고 따라붙는 이 배우는 이미 서른이라는 푸른 나이에 자신의 직업과 자신이 추구하는 삶 사이에서의 가치 충돌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했다. 그럼에도 그때의 고민을 담은 책이 어떤 선한 영향력의 시작이었음을 믿는다.
“‘저도 언니처럼, 누나처럼 환경에 관심이 생겼어요’라거나, ‘습관처럼 하는 소소한 행동들이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저보다 더 많이 발전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때 그렇게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심스럽게 냈던 책이 헛되진 않았구나 생각해요.”
샤워는 10분 만에 물로만 끝내고, 수건은 여러 번 쓴 후 마지막엔 반려동물의 목욕 수건으로까지 ‘재활용’한 다음 세탁해 물을 아끼고, 또 플라스틱 주스병에 붙은 비닐은 따로 떼어 분리하고, 우편 청구서의 주소란에 붙은 비닐도 일일이 제거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리수거의 ‘달인’이기도 한 그가 강박적으로 애쓰는 환경문제에 대한 자각은 최근 또 다른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로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슈퍼매직팩토리’(Super Magic Factory)를 통해서다.

‘슈퍼매직팩토리’의 리더가 되는 일, 업사이클링 그 이상의 가치

2년 전의 일이다. 불현듯 연기 생활에 무력감을 느끼며 ‘아무것도 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그러나 집에서 쉬는 건 쉬는 게 아니었다. 사방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고 TV가 켜져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몰라보는 사람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문득 두려웠다. ‘그게 잘못된 일인가, 내가 사랑하는 내 일에 이젠 나태해진 건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발리로 떠났다. 친구 부부가 사는 곳 인근에 세를 얻어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먹고 자는 일 외에 딱히 하는 일도 없었고, 인터넷은 당연히 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새소리를 듣는다거나, 친구가 아이를 키우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며 문득 연기 말고 내 안의 에너지를 가득 채울 무언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명’이라고까지 여기며 품어왔던 내 안의 이슈, 그것은 환경문제였다.
“환경문제에 배우로서 제가 가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사람들이 제게 붙여준 수식어, ‘패셔니스타’를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패셔니스타’로서의 영향력을 이용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유행처럼 번진 ‘패스트패션’ 대신, 사람의 정성이 조금 더 들어간 패션, 이른바 ‘장인정신’이 담긴 ‘슬로패션’으로, 적어도 ‘패셔니스타’ 공효진이라면 이와 같은 방향으로 패션계의 트렌드를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쉽게 찍어낸 옷들일수록 싸게 팔리고, 싼값에 소비한 옷들이 더 쉽게 버려지는 ‘소비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데 앞장서는 ‘트렌드세터’ 공효진의 애티튜드를 자신만의 프로젝트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는 큰돈을 주고 산 좋은 옷일수록 쉽게 버리지 않고 아껴 입는 대중의 심리를 겨냥하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의 차별화 전략과도 유사하다. 공효진은 이를 ‘업사이클링’이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지구를 지키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라는 생각에서 ‘마법’이라는 뜻을 가진 ‘매직’을 골랐고, 제작하는 일까지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가 박차를 가하고 싶은 마음에 ‘공장’이라는 뜻의 ‘팩토리’를 붙였다. ‘에코’나 ‘웰빙’처럼 뻔한 수사로 프로젝트를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이 자유롭게 모여 활동할 수 있도록 ‘슈퍼매직팩토리’를 규정하고, 그는 이 업사이클링 그룹의 ‘리더’를 자처했다.
그러나 ‘선의’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임에도 일부 대중으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가격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로 시작해서, ‘도대체 그게 뭐냐’(별로라는 뜻), ‘이 삐뚤삐뚤한 자수가 뭔데 이렇게 높게 가치를 매기느냐’, ‘새 제품에 자수 놓아 파는 것 아니냐’, 혹은 ‘흠집 있는 상품을 왜 더 비싼 가격에 파냐’, 그리고 ‘너는 뭐냐’까지….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버릴 것, 이제는 가치가 없어진 것을 원래 지녔던 가치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에요. 예를 들어 유리를 녹여 다시 유리를 만드는 ‘리사이클링’과 달리, ‘업사이클링’은 기존과는 다른 매력을 부여해서 아예 새로운 제품(저에게는 작품이고요)을 만드는 작업이죠. 하지만 단순히 버려진 제품 하나를 업사이클링하는 게 목적은 아니에요. 제 손으로 직접 힘들게 자수를 놓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로 인해 가벼운 소비 패턴과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거죠.”
하지만 그도 마음을 다쳤다. 그래서 포럼 기조연사로 무대에 서야 하는, 10월 10일이라는 날짜가 두려웠고, 번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주워 담지 못할 얘기들을 하고 있다’는 걱정이 계속됐다.
그도 인터넷 쇼핑을 한다. 멀쩡한 걸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선물로 받은 박스들은 필요가 없는데도 ‘쟁여 두기’를 수년째 반복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기필코 유용하게 쓸 것처럼 쟁여둔 것들이 결국 나를 압박하고 있음’을 깨달으며, 소모하는 삶에서 누적된 번뇌를 선한 에너지를 창출하는 것으로 되갚기로 했다. 좀 더 자신의 몸을 고달프게 하면서.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저희는 3명이 함께 일합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자수를 딱 3명이 놓는단 말이죠. 주문 물량이 많을 때는 쪽잠을 자면서 수를 놓아도 힘들어요. 제가 없으면 안 되니까 제가 놓아야 하고요. 저는 컴퓨터를 많이 하지 않는데도, 자수를 놓다가 ‘거북목’ 증상이 왔어요. 일상생활에서 통증을 느껴요. 그런데 어떡하겠어요. 자수는 손으로 놓아야 하는 것을.”

1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2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자각하고 용기를 내어 가능한 한 실천할 것

“‘슈퍼매직팩토리’가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일부 대중에게는 제가 이 브랜드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돈이 드는 일이면 드는 일이지, 버는 일은 아니거든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직원 수를 늘리고 사업 규모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최근에는 비영리단체로 바꾸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고요. 제가 원하는 건 패션에 대한 인식과 접근 방법, 패션 트렌드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에요. 그러한 성과를 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테고, 또 계속해서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저의 선의가 반대로 읽힐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와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구의 환경을 위해 끝까지 가볼 거예요.”
포럼 기조연사로 무대에 오르기 전날 저녁, 공효진은 이 같은 메시지를 기자에게 보내왔다. 마치 비장한 결심을 위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는 듯했다. 그리고 연설을 위해 약 50분 분량의 사전 녹취를 보내왔다. 무대에서 못다 한 이야기. 무대여서 못한 이야기, 그리고 무대 이후 전해온 이야기를 통해 환경을 아끼는 ‘공효진의 소명’을 들어보자.
“‘편리’라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누구에게나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네, 맞아요. 저도 편리를 추구해요.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어쩌고 저쩌고…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한다면서 너는 왜 일회용품을 쓰는 거니?’라는 질타가 저도 두려워요. 제 자신을 환경운동가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고요. 저는 완벽하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이건 어떨까요. ‘에이, 나는 못해’라고 포기하지 말고, 자각하고, 용기를 내어 가능한 한, 한 번이라도 실천할 수 있을 때 실천해보는 것 말이에요.”
“너무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사명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때문에 이 무대에 선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지구를 위해 조금만 자신을 헌신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그 시작을 이 무대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저의 소명과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앞으로 저에게 생길 수많은 꼬리표라든지, 저의 편리를 포기해야 하는 많은 일들, 그리고 너무나 예민하게 일상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들이 생기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선 것은 저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다른 분들보다 한두 가지 정도만 더 실천하며 살고 있는 정도예요. 이건 그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안에서 더 많은 용기를 내기 위해서예요. 이미 흠집이 생긴 물건들에 손길을 더하고 시간을 들여 새 숨결을 불어넣으면 이상하게 조금 더 사랑스러워지는 것을 느껴요.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가볍게 소비하는 행위에 대해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슈퍼매직팩토리’의 시작이었고요. 이걸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했으면 좋았을걸!”

3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슈퍼매직팩토리’의 제품들. (출처_슈퍼매직팩토리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supermagicfactory))

글 김아미_헤럴드 문화사업팀장, 헤럴드디자인포럼 디렉터
사진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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