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이징 월드-내일도 날 사랑해줄래요?> 전시 작품.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 <아무튼, 젊음> 전시 작품. (코리아나미술관 제공)
젊음을 원하는 사회, ‘노인의 소외감’ <에이징 월드-내일도 날 사랑해줄래요?> 8. 27~10. 20, 서울시립미술관
젊은 여인의 얼굴을 감싼 노파의 주름진 손. 극적인 대비가 자못 섬뜩하기까지 했다. 10년 전, 외부로부터 위협받는 불안정한 존재를 피부로 표현했던 스웨덴 작가 안네 올로프손이 이번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노화’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담았다. 미술, 디자인, 건축 분야의 국내외 미술작가 15팀이 선보인 이번 전시의 제목은 그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이다. “내일도 날 사랑해줄래요?” 사진 속 여인의 눈빛처럼 간절함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외모, 노화와 같은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안네 올로프손뿐만 아니라 나탈리아 라사예 모리요, 로렌 그린필드, 박은태 등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각자의 경험, 시선,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노인에 대한 차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까지 담았다.
장유유서로 대표되는 오랜 유교문화와 정반대의 현상인 연령차별주의가 한국 사회에서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를 정도. 나이 듦에 대한 젊은 세대의 잘못된 편견이 사회적 관계 안에서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노화에 대한 성찰을 나타낸 ‘불안한 욕망’, 노인 소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연령차별주의 신화’, 그리고 늙음에 관한 불안감과 기대 심리에 대한 ‘가까운 미래’를 그렸다. 젊음을 강요하는 시대에 만연한 차별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담아 ‘건강한 나이 듦’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다양한 체험 행사도 수시로 진행된다. 치아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유동식으로 식사하며 노화를 미리 경험해보는가 하면, 작품을 통해 받은 영감을 안무가의 도움을 받아 몸짓으로 표현해보는 기회도 마련됐다. 죽음을 앞뒀다고 가정할 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오브제를 작은 박스에 담아보며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해보는 코너도 마련됐다.
내 모습이 어때서? <아무튼, 젊음> 8. 29~11. 9, 코리아나미술관
과도하게 커진 이목구비와 망가진 얼굴형. 65세의 작가 신디 셔먼이 자신을 찍은 ‘셀피’에 각종 필터와 효과를 입혔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예뻐 보이기 위한’ 왜곡은 아닌 것 같다. 알고 보니, 화려한 허상을 좇으며 끊임없이 셀피를 찍어 SNS에 올리는 젊은이들의 중독 세태를 비꼬기 위한 것이었다.
눈썹부터 이마 쪽으로 화살표를 그리고는 눈언저리에 동그랗게 선을 긋는 여성. 다시 그 방향대로 문질러 없애지만 오히려 얼룩만 남는다. 40년이 지나며 여성은 늙어가지만 여전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크로아티아 최초의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산야 이베코비치는 이 동일한 퍼포먼스를 통해 늙어서도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강요와 압박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젊음 강요 사회를 살아가는 나이 든 여성의 고민을 영상으로 기록해둔 것. 나이 듦이 고민인 건 남성도 마찬가지다. 몸짱에 집착하는 남성들을 그린 곽남신의 작품은 젊음에 대한 욕망이 과도한 운동과 근육질 몸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난 현상을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코리아나미술관의 기획전 <아무튼, 젊음>에서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들이 참여해 ‘젊음’이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스위스 출신 셀린 바움가르트너가 50세 이상 현역 무용수들과 협업해 만든 영상은 노인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연령별 앱 설치 분포 조사’를 벽에 시각화한 작품은 디지털 시대에서 소외돼가는 노년층의 모습을 단번에 확인시켜준다. 20~60대 연령층의 모바일 기기에 설치된 101개 앱의 분포 현황이 벽면에 펼쳐지는데 시각화의 방식이 신선하다.
고령 사회로 접어들수록 더 강요받고, 그만큼 더 간절한 소망이 되고 있는 ‘젊음’. 끊임없이 젊음을 권하는 우리 사회에서 젊음의 이미지는 집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이 고정돼 있던 젊음을 다시 정의하고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 글 박수유_채널A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