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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영화 <카운터스>와 <소성리>평화와 공존을 위한 싸움
화려한 문신은 상남자임을 자랑하는 액세서리일 뿐. 무자비한 악당 같아 보이지만 실은 정의의 편에 서서 혐오주의자들을 혼내주는 전직 야쿠자. 일바지는 농사일밖에 모르는 시골 할머니로 위장하기 위한 패션일 뿐. 호미와 낫 대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무장해 불의에 맞서는 할머니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카운터스>와 <소성리>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 평생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소중한 성취를 보여주는 두 작품을 통해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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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카운터스>.

혐오에 맞선 정의이일하 감독의 <카운터스>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이것이 과연 실체가 없는 고통일까? 개인의 특수한 고통일 뿐일까?” 홍성수 교수는 자신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표현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했다. 혐오표현과 증오범죄가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창만 열어봐도 특정 성별, 종교, 인종, 국가에 대한 혐오표현이 넘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혐오표현이 넘실대는 피곤한 세계에 살고 있다.
<카운터스>는 대낮의 도쿄 거리에서 합법적 시위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혐오시위와 그 혐오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카운터스의 흥미진진한 승리담을 전한다. 혐한시위가 정점을 찍었던 2013년, 일본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시위는 320여 건에 달한다. 그 대부분은 재일조선인을 겨냥한 시위였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사람들은 주말마다 도쿄 한인촌 거리로 몰려나와 “재일조선인을 그냥 두면 일본인이 죽는다”며원색적인 표현의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를 쏟아냈다. 그러자 이에 대항해 민족주의적 혐오주의자들을 저지하기 위한 개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카운터스다. 카운터스 안에서도 ‘오토코구미’라는 부대가 있다. 때에 따라선 폭력도 불사하는 거친 남자들의 정예부대 오토코구미의 대장은 전직 야쿠자였던 다카하시. 한때는 나쁜 일을 저질렀지만, 자신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 변화한 사람이다. 폭력의 언어를 폭력으로 제압하자는 다카하시의 방식에 카운터스의 멤버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혐오주의자들의 말이 곧 칼이 되어 사람들을 찌른다는 사실엔 모두가 수긍한다. 영화는 “놈들(혐오주의자들)을 날려버리고 쿨하게 체포당하자”고 말하는 문제적 영웅 다카하시를 중심으로 카운터스의 활약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돋보이려면 인상적 악당이 있어야 하는데 <카운터스>에선 재특회의 창설자이자 행동하는 보수연합의 대표인 사쿠라이가 악역을 자처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를 두르고 혐오의 칼을 휘두르는 사쿠라이의 검술 솜씨는 하수의 그것이지만, 역사 수정주의를 논하고 우경화되어가는 일본 사회를 바라보면 하수들의 선정적 선동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 선동에 브레이크를 건 용사들이 카운터스이고, 허무맹랑한 히어로 영화보다 더 화끈하게 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가 <카운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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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소성리>.

보통 사람들의 투쟁박배일 감독의 <소성리>

투쟁이라는 말과는 무관하게 살았을 것 같은 할머니들이 싸움을 시작한다. 소성리의 할머니들은 다윗이 되어 국가라는 골리앗을 상대한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이곳은 그저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곡식이 익어가는 흔한 시골 마을 중 하나였다. 참외와 수박으로 유명한 고장이 연일 언론에 등장하고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건 성주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지역으로 결정되면서부터다. 전쟁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알기에, 평화를 위해 무기를 전진 배치하는 모순을 할머니들은 가만히 눈뜨고 앉아 넘길 수가 없다.
<소성리>는 소성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금연, 순분, 의선 할머니의 일상에 카메라를 밀착해 그들의 굴곡진 생애와 당면한 난제를 포갠다. 그들의 일상이란 밭에 나가 작물을 돌보고, 수확한 것을 다듬고, 동네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손에 흙 마를 날 없이 반백 년 넘게 살아온 덕에 허리는 굽고 주름은 늘었지만, 노동의 고단함마저 평화로운 일상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되는 건 사드로 인해 드리워진 전쟁의 공포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동안 카메라는 할머니들의 평화로운 일상만을 보여준다. 사드에 관한 영화라는데 사드 얘기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저 한국전쟁 시절까지 뻗어간 할머니들의 옛날 얘기를 통해 이들이 목격했고 또 기억하는 전쟁이라는 야만을 넌지시 환기시킨다. 억울하게 죽어 떠도는 마을의 유령과 고통의 기억이 소환되고 나면 그때서야 카메라는 아비규환이 된 사드 투쟁의 현장을 비춘다. 사드 찬성 단체들의 공격적 언사와 행위는 논리 없이 맹목적이고,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관심이 없다. 그리하여 할머니들은 농사도 제쳐두고 사드 반대 투쟁의 현장에 나가서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구호를 외친다. 더불어 우리들은 세상사에 무지한 까막눈의 존재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한다. 꽃처럼 아름답고 나무처럼 건강하고 흙처럼 이롭게 살아가려는 할머니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싸움에 나선 주민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던 박배일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글 이주현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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