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활문화진흥원에서 지역문화진흥원으로 개편되었음을 알리는 누리집 문구.
‘지역문화진흥원’에 관한 3가지 에피소드
[에피소드 1]
2017년 11월 7일 성수동 ‘언더스탠드 에비뉴’에서는 ‘모두와 함께하는 문화청책(聽策)포럼’이 있었다. 필자는 그날 ‘지역문화진흥법의 현실과 개선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중앙정부가 지역문화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지자체가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현재의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문화
관리법으로, 진정한 지역문화 진흥을 위해서는 지역이 우선권을 갖고 정책을 수립하면 중앙이 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법안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문화의 현장인 지역을 모르고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전쟁에서 전장의 상황을 모르고 작전을 수립하는 것과 같다. 상황실은
자기 일을 다 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런 전쟁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진다. 그래서 상황실은 전장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은 병사를 탓할지 모르지만, 어디 그게 병사만의 탓이랴! 그러나 그날 조금 일찍 나와 상황을 모르는 나에게 전달된 말은 상황실이 전장의 병사를 탓했다 한다. 불평만 한다고!
[에피소드 2]
새 정부의 문화비전을 수립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요즘 ‘새 문화정책 준비단’(이하 준비단)이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나도
그 조직에 속해 있다.
12월 11일 여러 가지 얘기를 하던 도중 ‘지역문화진흥원’ 설립 얘기가 나왔다. 구체적인 일이나 위상에 대한 정리 없이 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고, 다음 주에 열리는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런데 12월 12일 준비단 SNS 단체방에 ‘지역문화진흥원’ 쇼핑백이 올라왔다. “대체 뭐지? 문체부가 요즘 기관을 만들 때 쇼핑백부터 만드나? 그럴 리는 없고, 아니 벌써 만들었다는 말인가? 사전 협의나 논의도 없이? 이게 말이 돼?”
누구도 몰랐다. 화가 났다. 어떤 절차나 공개적 과정 없이 하나의 기관이 설립되었다는 데 화가 났다. 그래서 이른바 ‘페북질’을 했다. ‘문화정책에서 문화자치와 문체부의 태도’란 제목하에 미션도 없이 기관부터 만들고 보자는
태도는 무엇이냐고 물었고, 정부가 지역에 벌려놓은 일에 대해 정리할 생각 없이 또다시 기관을 만들어 중앙집권적인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은 연방제 수준의 자치를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발상과 역행하는 조치라고 적었다. 조금은 화가 나서 그리고 나아지길 바라는 차원에서 쓴 글이었다.
반향은 뜨거웠다. 많은 댓글이 달렸고, 총 52회 공유되었으며 213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참고로 내 ‘페친’은 1,428명이다. 여러 곳에서 전화도 왔다. 대부분은 동의한다는 내용이었고, ‘몰랐다’, ‘알아보겠다’ 식의 반응도 있었다. 제법 문제가 공유되는 듯했다.
[에피소드 3]
12월 19일 문체부 지역문화정책과장한테서 문자가 왔다. “모든 일은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의 수행 주체 변경 과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을 문화예술위원회가 추진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는 외부 지적에 따라 내년 사업부터 생활문화진흥원이 추진하는 것으로 변경했는데, 이에 대한 국회 및 기획재정부의 다양한 지적으로 부득이 생활문화진흥원 명칭을 변경해야 했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을 위해 생활문화진흥원을 ‘지역문화진흥원’으로 바꾼다고? 도대체 왜?
2 라도삼 선임연구위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지역문화진흥원에 대한 글.
3 지역문화진흥원 누리집 연혁에는 기관 명칭 변경일이 ‘2017년 12월 00일’로 되어 있다.
함께 노력하여 문제를 풀어가길 기대한다
준비단은 2017년 12월 7일, 2030년 문화비전으로 ‘사람이 있는 문화’를 발표한 바 있다. 문화란 본디 사람들의 삶 속에 있는 것인데, 그간의 정책에서는 외생적인 것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강요했던 바, 이제는 그것을 본래의 가치로 돌려놓겠다는 것이 ‘사람이 있는 문화’다. 곧 예술이나 콘텐츠의 강요로 문화가 있는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새로운 비전 취지다. 그런데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을 위해 지역문화진흥원을, 그것도 생활문화진흥원을 없애면서까지 만들겠다고? 왜?
지역문화진흥원이란 이름을 쓰려면 최소한 지역문화에 대한 고민이나 관심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문화진흥원 조직 구조상 그 어디에도 지역은 없다. 2개의 조직 중 하나는 ‘사무국’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가 있는 날 사업추진단’이다. 사업은 ‘생활문화센터’ 운영 등 생활문화에 대한 것과 지역문화인력 배치와 활용, 문화이모작, 평창 문화올림픽 문화자원봉사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은, 지역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기관을 만들 때는 적절한 시기와 방법, 절차가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지역문화진흥원 누리집의 기관 연혁을 보면, 유독 기관 명칭 변경일만 ‘2017년 12월 00일’로 되어 있다. 기관 명칭 변경일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왜 그 중요한 기관 명칭 변경일을 특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달을 가리킬 때 손톱 밑의 때를 보아선 안 된다. 분명히 말하자. 지역문화진흥원 설립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다만 문제는 특정 날짜를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적절한 절차와 방식 없이 전환되었다는 것이고, 지역문화가 아닌 ‘문화가 있는 날’ 사업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며, 지역문화 진흥(!)에 대한 비전 없이 기관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체부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전장에서 싸우다 보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장이 상황을 모르는 작전실에 의해 통제되고 그로 인해 진다면 억울하다. 상황실의 병사는 피해를 입지 않을지 모르나 전장에서 뛰는 병사는 죽을 수 있다. 지금 지역에서 뛰는 병사는 ‘탄환 없는’ 총을 들고 빗발치는 총알 앞에서 싸우고 있다. 이를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래서 각 지역의 꿈을 읽고 이를 후원하고자 노력한다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기 문제를 풀기 위해 새 식구를 들이기보다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에 대한 답이 아니다. 문제를 풀어가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함께 노력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것! 그러하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소리 소문 없는 문화행정이 아니다. 소리를 질러가며 문제를 푸는 행정이 필요하다. 떳떳하고 당당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것! 우리 행정에 그런 자신감을 기대해본다. 별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말이다.
- 글 라도삼_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