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부터 불었던 동네서점 바람과 일맥상통한 현상이다. 이젠 대기업들도 책을 앞세운 복합문화공간 마련에 나서고 있다. 코엑스에 들어선 ‘별마당 도서관’, 인터파크 카오스재단이 운영하는 서점 ‘북파크’, 라이트노벨·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 맞춤 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예스24의 ‘홍대던전’, 특급호텔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 자리 잡은 북카페 ‘워커힐 라이브러리’, 네이버 사옥 내 ‘네이버 라이브러리’ 등이 그 사례다. 책을 매개로 기업 홍보 효과까지 노리는 공간들이다.
1 한남동 블루스퀘어에 자리 잡은 ‘북파크’.
도서관, 쇼핑몰 부흥의 사명을 띠다?
코엑스 한복판에 명물이 등장했다.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중심부 센트럴플라자에 지난 5월 31일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이다. 2,800㎡ 규모의 공간에 13m 높이 대형 책장과 5만여 권의 장서를 갖췄다. 방대한 규모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개관하자마자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회원으로 가입할 필요 없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으로 운영된다.
별마당 도서관은 여느 도서관과 설립 목적이 다르다. 독서 진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쇼핑몰 부흥을 위해 태어났다. 지난해 코엑스몰의 임차운영사업자로 선정된 신세계그룹이 개관 무렵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코엑스몰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을 구상하다 도서관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운영사인 신세계프라퍼티는 “문화와 휴식을 갖춘 열린 도서관을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도서관이 지역 상권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시설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책이 기업의 ‘마케팅 도구’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에 뽑혔던 화제작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지음, 어크로스)에 그 힌트가 있다. 이 책에는 “책은 소비 피라미드의 정점”문화공간들이란 문장이 나온다. “요즘에는 최고의 독자들만 책을 사고 읽는다. 가장 부유하고 가장 많이 교육받은 소비자들, 리테일에서 가장 탐내는 소비자들이다. 그들은 황금처럼 소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아낌없이 퍼주는 책 공간
새로운 ‘책 문화공간’의 운영방식은 ‘고객 감동’이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근사한 외양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아낌없이 퍼준다’는 분위기를 낸다. 시설 마련에 60억 원을 투자한 별마당 도서관은 매년 운영비로 5억 원을 책정했다. 도서관과 쇼핑몰 사이에 출입구가 따로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구조지만, 책 도난방지 장치가 없다. “손실이 발생하는 부분까지 감안해 운영한다”는 것이 신세계 측 설명이다. 또 도서관 곳곳엔 휴대전화, 노트북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와 USB 단자가 설치돼 있다. 책도 공짜, 공간 이용도 공짜, 전기도 공짜인 셈이다. 더욱이 음식물 섭취까지 허용하면서 내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감동’한 고객들의 자발적인 홍보 덕에 별마당 도서관의 인지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개관 후 한 달 동안 SNS에 올라온 별마당 도서관 관련 콘텐츠만 해도 1만 5,000여 건에 달했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2, 3층에 자리 잡은 ‘북파크’는 마치 도서관처럼 운영되는 서점이다. 50여 개의 테이블과 200여 개의 의자를 서점 곳곳에 갖다 두고, 다양한 분위기의 독서공간을 만들어뒀다. 어린이책 코너 부근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했다. ‘열람한 책은 북박스에 넣어주면 직원이 정리한다’는 안내문구까지 여기저기 적혀 있으니, 책 구매 여부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사설 도서관, 서점들의 이러한 ‘사회공헌’식 운영 전략에 소비자들은 반색하지만, 출판계 내부에선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인터넷서점의 중고서적 판매, 교보문고 광화문점 대형 독서 테이블 설치 등 독자들의 관심을 끈 독서 마케팅 전략이 펼쳐질 때마다 출판사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학습 효과’ 탓일 수도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책의 사물화”, “책을 통한 공간 비즈니스” 등을 거론하며 “책을 장식물로 활용해 집객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별마당 도서관의 13m 높이 책장 중 책을 꽂고 빼는 책장 역할을 하는 공간은 3m가 채 안 된다. 3m보다 높이 꽂힌 책들은 순수하게 ‘장식용’이다. 책이 밑으로 떨어져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책장에 완전히 고정돼 있다. 도서관의 기본 기능인 ‘도서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별마당 도서관의 한계로 꼽힌다. 장 대표는 별마당 도서관을 두고 “책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신기함’에 관심을 갖도록 한다”면서 “독서문화를 확산시키려면 더욱 심도 있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책의 접근성’을 높인 공간들의 등장은 책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신호다. 어쨌거나 책의 위대함에 매료될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2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들어선 ‘별마당 도서관’.
- 글 이지영_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 사진 제공 인터파크, 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