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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국공립미술관의 ‘블록버스터 전시’ 논란 한국 현대미술과 관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
정유년 새해 벽두부터 미술계에서는 국공립미술관의 새 전시들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뒷말들이 떠돈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공공미술관으로 꼽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의 블록버스터성 새 전시를 놓고 비판 여론이 거세다. 올해와 내년을 겨냥해 의욕적으로 내놓은 전시 프로그램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콘텐츠가 그동안 국내에서 익히 소개된 서양 고전미술, 현대미술 거장 기획전 일색으로 채워져 참신성이 떨어지고 일부 전시는 부실 우려마저 제기되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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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신의 첫 외국인 수장 마리 바르토메우 관장이 취임한지 1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비판의 초점이다. 올해와 내년 전시를 앞두고 큐레이팅 전문가를 자임해온 마리의 식견과 전시 철학이 반영될 새 콘텐츠가 무엇일지가 애초 주목거리였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열린 취임 1주년 간담회 때 공개된 올해와 내년 전시 예정 리스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평이하거나, 진부하거나

팝아트 거장인 앤디 워홀(2~7월)과 리처드 해밀턴(11월~2018년 1월),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2018년 예정) 등 서양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전을 중심으로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전(4~7월)과 폴란드의 현실 참여작가 크니슈토프 보디츠코(7~10월), <신여성(가제)>전(10월~2018년 3월), 실험영화의 거장 요나스 메카스 감독의 작품전(11월~2018년 4월)으로 이어지는 일정인데, 상당수가 국내에 자주 소개된 서양 거장의 블록버스터성 기획전이다. 전시들을 두루 꿰는 일관된 흐름도 좀 처럼 보이지 않는다.
피카소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국내 서양 거장 전시의 오랜 단골 레퍼터리다. 앤디 워홀 전시도 국내에서 숱하게 열렸다. 새해 예정한 앤디 워홀 전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앤디 워홀: 그림자들>이란 제목 아래 1970년대 만든 실크스크린 연작 <그림자들> 102점을 전시한다는 게 뼈대다. 추상화에 대한 워홀의 초기 실험을 담은 작업들은 전 세계 순회전의 일부라고 한다. 워홀의 경우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피츠버그 앤디워홀 뮤지엄 컬렉션을 대대적으로 소개했으며, 앞서 2007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도 회고기획전이 열려 관객몰이를 했다. 무수한 국내 화랑이 그의 작품들로 숱하게 판매전을 치렀던 만큼 신선도가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미술계 반응이다.
마리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기관에서 근현대 거장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 세계적 미술 트렌드를 실시간 공유해온 현재 한국 미술계나 관객 수준에 무지하거나 이해가 한참 뒤떨어져 보인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표류하는 ‘마리 프로젝트’

마리 관장은 취임 당시부터 관장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았다. 전임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장 시절 기획전 작품에 대한 검열 논란으로 물러났다는 사실이 밝혀져 일부 미술인들이 취임 전후 공개적으로 거부감을 표명한 바 있다.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고 국내 미술계의 복잡한 내부 구도에 둔감하다는 점 등도 우려를 샀다. 취임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통역이 있어야만 소통이 가능하고, 미술관 운영이나 전시기획 등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안팎으로부터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부터 그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전시 기획 구상들이 평이하거나 진부한 재탕 수준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자질과 역량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확산되는 낌새다. 그는 지난 연말 내부 의견 수렴 없이 법인화를 전제로 서울관과 과천관의 인력 조직 통합을 골자로 하는 원 뮤지엄 개편안도 밀어붙이고 있어 미술관 조직도 동요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놓은 일부 전시 일정도 예정대로 진행될지 장담할 수 없어 보인다. 관장이 간담회에서 2월 전시를 공언했던 앤디 워홀 전은 순회전 일정 조정에 어려움을 겪어 구체적인 개막 시점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계의 한 기획자는 “유럽에서 다양한 전시 경험을 쌓은 마리 관장에게 질적으로 진일보한 전시기획을 기대했는데, 운영은 고사하고 그의 특기라는 전시기획 자체에서도 과거와의 차별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지난 1년 동안 미술관과 한국 현대미술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성찰했는지 의심이 든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올해 주요 전시로 서양 거장의 블록버스터 전시 계획을 밝힌 국립현대미술관(사진은 서울관 내부).

서울시립미술관의 원칙 깬 대관 전시

서울시립미술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2년 김홍희 관장 취임 당시 민간 기획사에 대관하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하지 않겠다던 공약을 깨고 지난12월 16일부터 사실상 민간 기획사가 대관하는 인상파 대가 르누아르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차려 구설을 불렀다. 대가의 여성 소재 그림을 선보이는 <르누아르의 여인> 전이다. 지난 1월 11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김 관장은 “블록버스터 전시를 아예 안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다. 전시를 계속하다보니 대중 관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고, 대중에게 좀 더 열린 전시를 해보라는 시의회의 의견도 반영한 결과다”라고 일부 언론에 설명했으나, 원칙을 깬 배경에 대한 공개적인 해명 없이 전격적으로 대관 전시를 허용한 것은 결국 용두사미가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전시의 출품작을 국외 유명 미술관들로부터 빌려오는 데 주된 역할을 한 중견 기획자를 최종 전시 계약에서 배제하면서 전시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빚어졌고, 출품이 예정됐던 명작 일부를 결국 대여하지 못하는 등 전시에 차질이 생겼다. 새해 의욕적인 전시 콘셉트로 미술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기는커녕 기획의 의도와 역량을 통째로 의심받는 상황에 처한 국내 양대 미술관의 처지가 딱하고 안타깝기만 하다.문화+서울

글 노형석
한겨레신문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부 ©Kwa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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