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대학교 교수로 연극인을 양성하면서 사다리움직임연구소를 이끄는 극단의 대표, 연출가로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일단 학교가 개강을 해서 바빠지기 시작했다(웃음). 10월 말 열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중 카프카의 <소송>이라는 작품을 이수연 연출가와 공동 연출로 준비하고 있다. 원작의 내용은 힘 있는 기관에서 권력으로 개인을 파헤치는 것이다. 이수연 공동 연출은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로 많이 보강했다. 무대 연출 면에서는 별다른 무대장치가 없고 테이블, 의자들만 있다. 그것 자체가 카프카의 <소송>이 가지고 있는 공간을 변화시킬 것이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는 한국 연극계에서 신체극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지향하는 연극의 방향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텍스트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움직임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많이 한다. 언어를 절제하고 이미지화해서 움직임으로
드러낸다. 텍스트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언어를
덜어내고 이미지를 극대화해 관객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상상하게 하고 싶다. 연극이 마음을 먼저 건드리는 게 아니라
머리를 두드리고, 그다음에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극도 미술 작품을 관람하듯이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 설명 없이 자신의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하게 된다. 연극도 미술처럼 봐주셨으면 한다.
움직임 중심의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프랑스 자크르콕(Ecole International de th tre Jacques Lecoq) 유학 시절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
한국의 팬터마임 테크닉을 벗어난, 좀 다른 걸 하고 싶어서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자크르콕은 마임뿐만 아니라 오브제, 가면, 움직임 등 흥미로운 걸 하고 있었다. 색깔을 움직임으로 변형하고, 움직임을 스케치하고, 구조물로 공간화하고, 구조물을 마스크로 만들고, 의상으로 만들기도 했다. 매우 크리에이티브한 경험이었다.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 컴플리시테의 창단멤버이자 대표 연출), 태양의 서커스의 아리안 므누슈킨(Ariane Mnouchkine) 등이 자크르콕이 배출한 연출가로, 창의적인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크르콕에서 수학하면서 프랑스 연극계에서 느낀 점과 한국 연극계에 도입하고 싶었던 부분은 어떤 것인가.
프랑스에서 느낀 것은 ‘다양성’이었다. 그곳도 모두가 잘하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장르, 다양한 시도를 모두 인정한다. 우리나라는 리얼리즘적이며, 스토리 위주의 연극이 주류인 것이 아쉽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보이첵(Woyzeck)>을 공연한 후 사다리움직임연구소를 ‘피지컬시어터’라고 명명하는 신문 기사가 나오더라. 우리의 시도가 국내외로 주목받게 된 이후에 유사한 형식의 공연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 연극계의 새로운 형식, 장르의 융·복합 등 다양한 시도를 촉발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계속 이어가려고 하나.
우리 연극이 특별히 실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은사인 안민수 교수님께서 늘 ‘작품을 발명품 만들 듯이 하라’고 하셨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연극은 당연히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 작업 중에 어린이 창극 <미녀와 야수>에 새롭게 도전한다고 들었다. 기존의 임 연출의 극과는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데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나.
어린이 창극 참여도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하는,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창극의 언어는 관객이 이해하기 쉽지않다. 그걸 좀 쉽게 해보려고 한다. 또한 굉장히 새롭게 변화를 꾀해보려고 한다. 통섭이 되든 뉴폼아트(New Form Art)가 되든 어린이극도 창의적으로 해보자고 <미녀와 야수>를 제안한 것이다. 실험적인 것을 오히려 어린이들이 더 잘 받아들인다. 어른의 시선에서 어린이극을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더 제한된다.
<예술로 상상극장> 작품 제작 개발 워크숍 중.
임 연출이 어린이극에도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것을 모르는 이가 많은데, 언제부터 어린이극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1988년 ‘교육극단 사다리’의 창단 멤버였다. 어린이가 좋은 공연을 봐야 미래에 좋은 관객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창단하게 되었다. 사다리의 공연은 극장이 아니라 지금의 서울문화재단 <예술로 상상극장>처럼 어린이가 있는 공간으로 찾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예전 극장 시설 대부분은 어린이의 특성이나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했고, 어두운 점 때문에 어린이들이 무서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찾아가는 공연을 하려고 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에서 공연은 지금보다 훨씬 더 문턱이 높았다. 고생을 많이 했지. 2~3년 정도하다가 결국은 찾아가는 공연을 포기하고, 대학로 파랑새극장에서 공연을 했다.
현재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어린이극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아동청소년연극 전공이 생겨서 학생들이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많이 해서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어린이의 흥미나 관심을 끄는 재미 위주의 공연, 너무 교훈적인 내용으로 훈계를 하는듯한 공연이 아직도 많다. 어린이극을 만든다는 사명감을 좀 더 가졌으면 한다.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건드려 만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연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마찬가지로 어린이극도 스토리텔링 위주의 극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 장르 융·복합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1
문짝인형극
<꼬마 장승 가출기>.
2
<쉿! 비밀이야!>.
3
<생각을 모으는 사람>.
4
<누가 더 빠르게?>.
서울문화재단에서 올해 처음 시도한 어린이 참여형 공연개발·제작지원 프로젝트 <예술로 상상극장>에 예술감독으로 참여했는데. 그 계기와 <예술로 상상극장>에서 만들고 싶었던 어린이극의 방향은 어떤 것이었나.
교육극단 사다리 초창기에 어린이가 있는 공간으로 ‘찾아가는 공연’을 하다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중단했는데, 같은 취지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예술로 상상극장>을 새롭게 시작한다니 매우 기뻤다. ‘어린이가 있는 곳 어디나 극장이 된다’라는 목표로 기획된 <예술로 상상극장>은 어린이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것 같다. 찾아가는 공연은 어린이들이 극장으로
직접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어린이집, 유치원 등의 친근한
일상 공간에서 공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어 아이들이 더욱
손쉽게 공연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국가에서 인증받은 예술단체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어린이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공연을 하고 있다.
<예술로 상상극장>에서도 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어
린이극을 창의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공모된 50여개 작품 중에서 5개의 작품을 선정해 2개월간 작품개발·제작워크숍을 진행했다. 단순 관람 형태에서 벗어나 어린이가
참여해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작품의 방향을 이끌었고,
기존의 어린이극 형식에서 벗어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하려고 했다.
움직임과 오브제를 활용한 <쉿! 비밀이야!>도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서사적인 줄거리 대신 텐트를 활용해 주크박스, 배, 조개 등 다양한 이미지의 공간으로 변화를 꾀하며 어린이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예술로 상상극장>에 참여하기 전 기대한 바에 대한 성취와 아쉬웠던 점은?
기대 이상으로 작품이 잘 만들어졌고, 5개 작품 모두 특색이 있었다. 어린이 관객의 반응도 좋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어린이극이 다양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다양한 도전에 열린 태도를 가진 신진 예술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했으면 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참여하는 팀들이 더욱 창의적으로 공연을 만들려고 하는 의지가 필요하겠다. 기존의 어린이극과는 다른 것을 창작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으면 한다. 일반적인 텍스트만을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움직임이나 소리를 사용하거나 악기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예술로 상상극장> 프로젝트의 발전을 위해 조언 부탁한다.
어린이극의 다양화를 위한 새로운 도전의 장으로서 서울문화재단이 지원을 계속해나갔으면 한다. 시간이 흘러 참여 팀이 더 많아지면 페스티벌을 열면 좋겠다(웃음). 우수 공연을 선정해서 페스티벌을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공연을 했다면, 페스티벌에선 극장에서 조명, 음향을 충분히 사용해 공연을 올려보는 것도 재밌겠다.
어린이극 발전을 위해 창작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창작자에게 어떠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과 창작자로서 무대 위에서 극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르다.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도로 작품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넘치는 사랑에 의해서 작품이 일방적으로 교훈을 주려고 하거나 교육하려 하면 문제가 된다. 가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가 스스로 관찰하고, 느끼고, 상상할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이의 상상력을 열어주는 작품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좋은 아동극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다른 작품을 많이 봐야 한다. 끊임없이 어린이를 연구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진행 김수현
- 서울문화재단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매니저
- 정리 강지은
- 서울문화재단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대리
- 사진 김창제,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