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 오후 7시, 시민청 지하2층 바스락홀에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원형으로 모여 앉았다. 매주 빠지지 않았다면 이날이 세 번째 만남이었겠지만 아직 반갑게 인사를
나눌 정도는 못 됐기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다시 한 번 하기로 했다. 학생, 직장인, 주부라는 명칭으로 운을 뗐지만 동시에 이들은 재즈를 배우거나, 춤과 연기에 관심이 많거나,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어 저녁 시간을 쪼개 온 이들이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참여자들이 하나둘 바스락홀로 들어와 원 사이 사이 자리를 메웠다.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두 소개를 마치자 수요일 저녁 ‘카페 콜라주(Cafe
Collage)’ 수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카페 콜라주’는 2016 <서울시민예술대학>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무용과 시각예술을 결합한 수업으로, 우리 몸에
대해 탐구하고 움직여 공간 및 사람과 교감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고, 이를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하게 된다.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페 뮐러(Cafe Muller)>에서 볼 수 있듯 정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사람의 몸과 동작, 오브제와 공간이 유기적으로 하나의 심상을 표현해내는 작업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각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스무 개의 고민이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도록 소통하게 된다.
이것은 예술을 공통분모로 삼은 작은 공동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목과 어깨를 가볍게 푼 후 스무 명의 참가자가 강의실인 바스락홀
바닥에 편히 누워 팔, 다리, 등,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키면서
10분 남짓 동안 공간과도 친해진다. 몸과 함께 마음도 한 단계 이완시킨 채 두 명의 선생님으로부터 이날 수업의 주제인
‘방향성?움직임?오브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어디를 향해’ 움직일 것인지와 다양한 동작(걷기, 구르기, 뛰기, 기기 등), 그리고 특정 사물을 이용하는 것을 익힐 모양이었다. 몸에서 어딘가를 가리킨다고 하면 흔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강의실 공간을 육면체라고 생각하고 여덟 개의 꼭짓점 방향으로 몸의 부위를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훈련을 하면서, 우리가 특정 방향을 가리키는 데
쓸 수 있는 신체 부위가 팔과 다리만이 아니라 머리, 얼굴의
눈?코?입, 다리에서도 무릎, 팔꿈치 등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최대한 다양하게 움직이고 표현해보는 것이 핵심. 아울러 사방으로 이동할 때엔 걷거나 가볍게 뛰고 팔과 다리를 모두 이용해 기어도 보고 구르기도 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동작과 움직임을 만들어보면서 새삼 일상적인 움직임이
무척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내가 의도한 대로
몸이 잘 따라주지 않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날의 수업 주제 세 가지 중 마지막 하나인 ‘오브제’로는 의자를 이용하기로 했다. 참가자 모두 의자를 하나씩 들고
강의실 어디든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모양으로 둔 후 그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소감을 공유했다. 그러고는 다시 자유롭게 쌓은 의자에 사람이 함께해 또 다른 풍경을 이뤘을 때 어떤 스토리텔링이 가능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순번을 정하지않고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 자유롭게 나와 이전까지 쌓인
오브제에 자신의 의자를 얹는 방식으로 20개의 의자가 무정
형의 상을 이뤘고 그것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난파선, 사랑과
전쟁,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으로도 읽혔다. 어떻게 읽든지 그것은 이야기하는 사람의 자유였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그 의견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어떻게 한 방향의 작품으로 만들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카페 콜라주’ 수업을 기획·운영하는 예술교육연구소
넘나들이의 이유정 대표는 “카페라는 장소는 새로운 일을
도모하거나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는 점에서 수업을 기획했다며 “움직임이 강조된 프로그램인데 수강생들이 다들 재미있어하시고,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협업하는 모습을 보며 세대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라고 전했다.
약간의 자신감이면 충분하다
수업을 일일 체험하며 가장 놀란 것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평일 저녁 시간대에 개설돼 직장인도 참여할 수 있음은 물론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2030세대와 40대 여성, 50대 남성 등 거의 모든 연령대의 참가자들이 두 시간을 함께했다. 각자의 소감을 메모지에 적어서 나누고, 이동하거나 움직이면서 눈인사를 하며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움직임과 에너지에 몰두하는 동시에 내 옆 사람과 공간에 자연스레 동화됐다. ‘카페 콜라주’ 수업의 경우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만큼 수업의 요소에서 연령이나 성별에 특정되는 것은 없다. ‘자기 표현’과 ‘소통’이라는
비슷한 목표를 다양한 사람이 공유하며 느슨하게 교감해가도록 안내되는 것. 즉 ‘예술’을 공통분모로 삼는 이들의 작은
공동체가 생성되는 것이다.
시민예술대학은 단순 예술 기량 교육이 아니라 미적 체험, 통합예술교육에 중점을 둬, 참여하는 이들이 자기 표현의 좋은 방식을 찾고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 표현과 고민이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면 그것으로 또 좋은 것이다. 같은 날 오후에 진행되는 수업 ‘댄스를 부탁해’의 강사 밝넝쿨 무용가(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는 “무용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과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수업에서 메소드(수업 재료, 방식)의 차이는 없다. 다만 내가 이들을 대할 때 어느 부분의 디테일을
더 알려줄 것인지가 조금 달라질 뿐”이라며 “수강생 중에 무용을 전공하신 분도 있다. 오랫동안 열심히 공부하신 게 드러날 정도의 수강…. 그러나 수업하다 보면 누가 전공자이고
누가 춤을 처음 접하는 분인지 크게 표시 나지 않는다. 누구나 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라고 수업의 의미를 전했다.
청년부터 어르신까지, 예술교육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즐기고 받아들일 열린 마음과 약간의 자신감 정도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예술은 시작된다.
예술은 사실 아무것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본디 ‘목적 없는 것’이다. 다만 목적 없는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이 한 사람의 내면을 바꾸거나 조금 더 넓은
영역의 사회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지식과 테크닉을 익히는 것, 특정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수강생에게 큰 성과가 되겠지만 그 기회가 사람을 들여다보고 서로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을 지향하는 데엔 ‘예술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연령대, 성별의 사람이든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고민이
많다. 사회안전망이 불안정하고 성장 전망 역시 밝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20대는 취업과 진로, 생계로 인해 고민하고,
취업 문턱을 겨우 넘은 30대는 늘 열심히 해왔지만 이룬 게
없다는 미묘한 상실감 속에서 살아간다. 40대, 50대 역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불안감을 감출 수 없고 노년 세대는 날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기에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 고민을 안고서 어떤 돌파구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답이 없는 예술은 의외의 해답을 각자에게 선사한다. 결과물만큼 과정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삶과
춤, 삶과 글, 삶과 연극, 삶과 노래, 삶과 철학?역사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강조하건대 약간의 자신감과 감수성이 있다면
문화예술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방향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 글 이아림
- 사진 김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