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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12월호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문화예술가의 작업과 실천

강원도 화천 문화예술공간 ‘예술텃밭’에서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의 리서치 과정을 공유하는 오픈 텃밭이 열렸다.

한윤미 〈햇빛충전소〉, 전기를 자급자족하며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지 질문한다.

얼마 전 강원도 화천 문화예술공간 ‘예술텃밭’에서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의 리서치 과정을 공유하는 오픈 텃밭이 열렸다. 2020년 시작된 레지던시는 첫해 ‘화천에서 환경을 말하다’, 2021년 ‘관점의 전환, 세상을 보는 시선들’에 이어 올해는 ‘기후 위기와 에너지’를 주제로 삼았다. 기후 위기가 곧 에너지 위기와 연결되고, 에너지는 우리 삶과 직접 관계를 맺고 있기에 기후 위기를 한층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는 생각이었다.

‘에너지’ 관점에서 기후 위기 들여다보기

연극, 거리예술, 무용, 사운드, 시각 분야의 예술가와 액티비스트 리서처가 작가로 참여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고, 원자력발전소와 풍력발전소를 탐방하는 등 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공통 리서치를 진행했다. 작가들은 관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개별 리서치를 진행하며 예술 작업의 씨앗을 만들어나갔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참여하는 김지연 작가는 ‘기후 위기의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후사전 편찬 계획을 나눴고, 참여 작가들과 워크숍을 해보기로 했다. 많은 단어와 문장이 칠판을 가득 채웠다. 레지던시 기간 내내 가장 많은 질문을 생성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를 저술한 아이슬란드 작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기후 위기를 ‘백색잡음’에 비유한 바 있다. 화산 폭발음은 굉장하지만 녹음하면 소리가 뭉개져 백색잡음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의 시공간과 인간의 시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후 위기의 거대 서사 앞에서 인간은, 예술가는 쉽게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담론은 어느새 백색잡음처럼 흩어져 버린다. 많은 과학자가 기후 위기를 ‘보이게 하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사용하며 비상사태임을 알리고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워크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이라는 단어로 이어지고 ‘이면을 드러내기’와 ‘상상력’으로 연결됐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보이는 것의 이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에 도달할 수 있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이곳에서 발휘된다. 예술가가 발견한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를 다시 예술가의 관점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보이지 않는 것의 이면을 추적하는 작업을 해온 장한나 작가는 플라스틱의 이면을 추적하며 석유 산업 시스템에 도달해 플라스틱 생산을 위해 석유를 시추하는 시대가 됐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면의 세상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인간의 몸과 생태계의 변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장한나 작가는 바다 생태계에서 채집한 플라스틱이 결합된 돌 ‘뉴 락New Rock’을 관객의 눈앞에 뒀다.

세상의 이면을 보이게 하는 문화예술가의 상상

비거니즘과 동물권을 중심으로 예술 작업과 실천적 삶을 이어오고 있는 한윤미 작가는 ‘에너지 살림살이’와 ‘숨겨진 존재들’을 키워드로 삼았다. 작가는 전원 스위치로 편리하게 전기를 공급받는 도시인의 삶 이면에 부담과 희생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전기를 자급자족하며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는지 질문한다. 태양광으로 얻은 전기로 끓인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차갑고 어두운 공간에서 제한된 전력으로 다른 생명의 삶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제시했다.
김지연 작가와 전윤환 작가는 참여 작가들과 진행한 워크숍을 발전시켜 렉처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상상력의 부재는 언어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과 함께 기후 재판 투쟁 당사자, 기후 위기 피해 당사자의 말을 수집하고 예술적 상상력으로 에너지 관련 개념을 재정의하기 위한 단어를 씨앗으로 펼쳐놨다. 그리고 관객과 함께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고, 문장을 만들고, 단어 속의 이면을 찾고, 문장을 조합해냈다.
사운드 작가 카입은 신문과 SNS를 통해 원전, 재생에너지, 기후 위기에 대한 텍스트를 수집하고 이 의견들이 현재 정치 지형과 연결돼 어떤 감정을 갖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분석된 감정을 소리로 변환해 들려주는 사운드 설치 작업을 보여줬다.
추상적이고 거대한 기후 위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예술가들은 다양하게 접근하며 이면을 추적하고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세상을 경험하도록 관객에게 제안하며 질문을 던진다. “이제 당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요?”

박지선_공연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 예술 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 사진 황호규_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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