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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5월호

꾸역꾸역, 생존의 시간 그 속 박희권 감독의 <축복의 집>

절대 볕이 들 것 같지 않은 쥐구멍 속의 구멍 같은 삶이 있다. 낮은 곳이라 생각하지만 더 낮은 곳의 집이 존재한다. 그래서 집이 안락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라고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1초, 1분, 1시간이 쌓여 삶이 되는 것이 아니라 1초, 1초, 1초가 그저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생존이 되는 순간, 달아나지 못하고 결국 돌아가야 하는 집과 그 속의 삶은 그 자체로 공포다.

<축복의 집>(2022)
감독 박희권 출연 안소요(해수), 이강지(해준), 김재록(형사), 이정은(보험)

삶이라는 착취

아침에는 공장에서, 저녁에는 식당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해수(안소요)는 어느 날, 먼 동네 의사에게 시체검안서를 발급받는다. 그리고 병원과 집을 오가며 온갖 서류를 처리해 나간다. 집을 나간 동생을 찾은 후 겨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지만 이상하게 해수의 표정은 불안하기만 하다.
박희권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축복의 집>은 벼랑 끝에서 겨우 목숨줄을 부지하고 사는 해수의 삶 속으로 쑥 들어간다. 앞뒤 이야기를 다 자르고, 해수라는 소녀가 겪는 3일을 아무런 감정이나 소동 없이 다큐멘터리처럼 관찰한다. 그래서 해수가 대체 왜 그렇게 분주하게 돌아다니는지 관객들은 파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야 한다.
재개발 지대에 있는 낡고 어두운 해수의 집은 관객들에게 비밀의 공간이다. 집과 엄마와 죽음과 해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동생은 집에서 달아났고, 해수는 계속 무언가를 숨긴다.
혼자 분주하게 돌아다녀 보지만 해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하루에 몇 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꾸 그녀에게 선택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불친절하다. 시간과 사람들이, 더위와 무관심이 끊임없이 그녀를 녹여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관객들의 정서도 눅눅하게 젖어버린다.
박희권 감독은 해수가 자신을 씻어내리는 장면을 꽤 오래 공을 들여 보여준다. 공장에서 기름때에 전 옷을 빨아내고, 집에서는 더러워진 머리카락을 감는다. 흙을 파내느라 손톱 깊숙이 파고든 오염물은 씻고 또 씻어도 끝내 깨끗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를 떠도는 여러 사람의 인생이 켜켜이, 오래 묵은 때가 된 것 같다.

죽음이라는 구원

<축복의 집>은 숨 막히는 현실을 관찰하지만 무작정 관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숨이 막혀, 턱 멈춰 선 순간에서 시작하고 숨이 가쁜 채로 살아가는 해수의 순간에서 끝이 난다.
가난과 그 시간의 착취를 이야기하지만, 절대 그 삶을 동정하거나 비극적 정서로 감정을 학대하지 않는다. 약해서 끝내 악해지고 마는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국 나아지리란 거짓 위안을 주지도 않는다.
결국 엄마의 죽음은 세상에 어떤 자국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해수에게 엄마의 죽음은 상실이 아니라 구원이다. 그럼에도 <축복의 집>은 아이들의 미래를 개발이 되지 않은 재개발 지대처럼 버려둔다.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온 아이들이 진짜 고아가 되었을 때, 아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직 생존해 있는 아비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긴 할까? 질문에는 어떤 답도 없이, 설명이 부족한 서사는 원래 불친절한 우리의 삶처럼, 작정 없이 직진한다.
<축복의 집>의 카메라에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 관찰 다큐를 찍는 것처럼 카메라는 해수를 앞서거나 해수를 쫓거나 해수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카메라의 가장 충실한 역할은 해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프레임 속에 가두는 일이다.
영화의 끝. 카메라는 뚝 끊어지듯 화면을 지운다. 해수의 모습을 더는 기록하지 않으며 프레임에서 그녀를 몰아낸다. 오직 해수의 소리만이 담긴다. 해수의 가쁜 숨과 바닥을 질질 끄는 발걸음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해수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고 우리 옆에서 계속 이어질 것만 같다. 매일 월컹대며 가다가 뚝뚝 멈추는 우리 삶처럼 꾸역꾸역, 근근이 말이다.

최재훈_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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