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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2월호

한 우물 속 여러 수맥 찾기 꾸준함의 의미

셀럽이나 인플루언서는 다양하고 많은데, 한 해에 주목받고 시들해지는 사람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과거에는 공중파 TV 정도가 핵심 콘텐츠였다면, 어느덧 케이블·종편의 시대를 넘어 유튜브·OTT·팟캐스트, 각종 1인 미디어와 SNS가 넘쳐나면서 관심을 끌었다 금방 잊히는 콘텐츠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클라이밍. 근력과 유연성을 기르면 다양한 자세를 터득해 매번 다른 지지대를 밟고도 오를 수 있다.
새집 줄게 새집 다오

우리 시대의 관건은 ‘롱런’이 된 것처럼 보인다. 많은 콘텐츠가 범람하며 하루아침에 뜨고 진다. 책 한 권의 수명은 점점 짧아져서 이제는 3개월만 넘어가도 ‘구간’의 느낌을 준다. 매일 새로운 드라마·영화·만화가 쏟아진다. 유튜브 채널은 거의 모든 분야가 레드오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비단 콘텐츠 영역뿐만 아니라, 각종 유행의 흐름도 매우 빨라지고 있다. 어느 동네가 핫한 공간으로 잠시 떴다 싶으면, 금방 다른 동네가 뜬다. ‘힙스터’가 보편적이 되면서, 남들이 많이 찾는 동네를 좇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동네 발굴이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 그러니 어느 동네의 핫함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남들이 잘 모르는 어떤 ‘좋은 것’을 선구적으로 누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새것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헌것이 된다.
사업이나 자영업도 어느 한 분야가 유행한다고 해서 그것에 너무 오래 몸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대를 따라 끊임없이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성공은 둘째치고 생존 자체도 어려워졌다. 어제 유행하던 것에 몸담았다가, 오늘 구태의연한 것이 되는 일이 너무 잦아졌다. 그래서 요즘 롱런하는 일의 의미는 과거처럼 장인이 되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 걸 의미하게 되기도 했다. 롱런하기 위해서는 고집스럽게 어떤 일을 이어가되, 그 일이 시대와 불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한다.
어느덧 나도 글을 쓴 지 20년이 됐고, 첫 책을 낸 지 10년이 된 입장에서 롱런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나의 글쓰기가 거쳐온 역사만 들여다봐도, 사실 ‘글 쓴다’는 행위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그 행태는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처음에는 소설을 썼고 소설가로서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소설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오히려 첫 책은 ‘인문학 책’이었고, 최근에는 그런 한 권의 ‘책’을 쓰기보다는 매일 다양한 에세이나 칼럼 등을 쓰고, 그런 글을 묶어서 출간한다. 한편으로는 꾸준히 글쓰기를 이어오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변주하면서 살아온 것이다.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덧 10여 년의 인생을 보게 되는 지인도 생겨난다. 누군가는 스무 살 무렵, 열심히 음악을 했거나 글을 썼지만 지금은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10년 이상 꾸준히 무언가를 하며 그 업계에서 그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그런데 ‘계속’ 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스무 살 때와 꼭 같은 것만을 하지 않는다. 가령 시 쓰던 누군가는 유튜버가 돼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소설 쓰겠다던 친구는 사회문제에 대한 책을 쓴다. 그런 사례를 보면 볼수록 꾸준함도 중요하지만 꾸준함 위에 얹히는 소스의 다양성과 시대성도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자기만의 방 확장하기

수많은 것이 순식간에 뜨고 지는 세상일수록, 꾸준하게 쌓아가는 자기 삶만의 리듬은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과 함께 나도 휩쓸려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의 흐름에도 깨어 있어야 한다. 최근 한국인 최초로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오영수 배우만 하더라도 꾸준히 연기했지만, 무대는 계속 바뀌었다. 연극·드라마·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한 분야에서 꾸준하게 활동하는 장인이었지만, 동시에 넷플릭스 드라마에 출연할 만큼 시대성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이 시대에 필요한 감각이랄 게 있다면, 꾸준하되 열려 있기, 장인 정신으로 살아가되 유연하기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이 모든 것이 빨리 잊히고 흩어지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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