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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8월호

이환 감독의 <어른들은 몰라요> 선인장이 된 마음

나빠서 아픈 건지, 아파서 나쁜 건지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 사실 편차는 있지만 어린 시절, 우리는 낭만적이지도 예쁘지도 않은 삶을 살았다. 울렁거림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시간이지만 어른들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고, 뾰족해진 아이들은 가시로 누구를 찌르거나 제 몸을 긁어댄다. 어려서 어리석고, 어리석어서 어린 날의 아이들은 그렇게 날을 세워 날카로웠다. 그런데 아이들의 마음이 선인장이 된 이유, 어른들은 진짜로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아파서 나쁜 마음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그리고 학교 선생의 아이를 임신한 고등학생 세진(이유미)은 동갑내기 주영(안희연)을 우연히 만난다.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본 두 소녀는 의지할 곳 없는 소녀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소녀들이 된다. 아이를 지우기 위해 두 소녀는 위험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그런 소녀들 앞에 건달 재필(이환)과 신지(한성수)가 나타나면서 네 사람은 유사가족처럼 서로 의지한다. 그들은 모두 세진을 도우려 애쓰지만, 무지한 이들의 도전은 매번 어이없이 실패하고 만다.
임신한 열여덟 살 세진은 이환 감독의 전작 <박화영>에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어른들은 몰라요>에서는 주인공이 돼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세진은 살점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깊이 자해하고, 술과 담배와 욕을 입에 물고 사는 아이인데, 마치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아기처럼 대화한다. ‘왕따’와 폭행을 당해도, 학교 선생의 아이를 가져도, 유흥업소에서 일을 해도, 친구가 죽어도 그녀는 철없는 아이처럼 말갛게 무지해 보인다. 어른들은 그런 세진을 성적 대상 혹은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의지하려고 찾아간 쉼터에서는 임신한 세진을 불임 부부에게 소개한다. 영화 속 어른들은 세진의 처지를 알지만,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그녀를 방치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세진을 도와주는 어른은 재필과 신지인데, 이들마저 극악한 방식으로 그녀를 버린다.

아픈 아이들의 생존법

감독의 전작 <박화영>이 욕설을 눈물처럼 흘리는 박화영의 거친 이야기였다면 <어른들은 몰라요>는 세진을 중심으로 이야기와 인물들의 결이 풍부해졌다. 그래서 극적 몰입도와 이야기의 흐름이 한결 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야기와 온도가 온화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날이 서고 불편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살려고 꿈틀거리는 아이들을 밟아버리지는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정서적으로 공감을 얻을 여지를 남겨둔다. 바닥을 기는 것처럼 눅진거린 <박화영>과 달리 화려한 색과 조명으로 연출한 장면들은 세진이 꿈꾸는 세상, 혹은 세진에게 필요한 세상처럼 꾸며 졌다. 극 속에서 인물들이 보드를 타는 순간은 신나는 팝 음악과 역동적 트래킹 숏으로 감각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보드를 타는 세진의 미장센은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유연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그래서 <어른들은 몰라요>는 절망의 끝에 절망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조금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됐다.
그럼에도 이환 감독이 그리는 10대의 이야기는 여전히 거칠고 불안하다. 인물들의 납득할 만한 과거와 근거를 파헤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비극 속으로 쑥 들어간 카메라는 주춤대는 법 없이, 생살을 헤집고 피비린내를 느끼게 한다. 세진을 둘러싼 세 사람에게 세진의 임신중절이 왜 그렇게 중요한 화두였는지, 구체적 설명은 없지만 마치 삶의 목표가 생긴 것처럼 아이들은 달린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구원이었다가 극악하게 서로를 가해하고 만다. 아이러니한 순간은 그다음에 온다. 아이를 지우려는 모든 도전은 실패하고, 온전히 아이를 낳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아이는 생명을 포기하고 흘러내린다. 어려서 어리석은, 아파서 나쁜 아이들의 시간이, 낮게 읊조리지만 절규와 같은 대사가 이상하게 마음에 얼룩으로 남는다.

“우리도 살아야 되잖아요.”

<어른들은 몰라요>(2021)

감독 이환

출연 이유미(세진 역), 안희연(주영 역), 이환(재필 역), 신햇빛(세정 역), 한성수(신지 역)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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