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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시인 김용택 새 말을 찾고 자신의 말을 하는, 시
김용택 시인은 “지금이 그때다”라고 했다. “모든 것은 / 제때다 / 해가 그렇고, 달이 그렇고 / 방금 지나간 바람이, / 지금 온 사랑이 그렇다”라고 했다. 등단 40년. 열세 번째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를 냈다. 지금이 그때라서. 지금까지와 문학적 경향이 조금 다른 출판사를 새로 만났다. 사람들은 그의 시가 달라졌다고 했고,
그는 어디선가 쏙 빠져나온 듯하다고 했다. 그 묘한 기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살아오면서 피할 수 있던 것이 있던가”라고 되물었다. 낡고, 굳고, 매여 있는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때임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럴 때이니까. 5년 만의 신작 시집을 통해 ‘정지’에서 풀려나 ‘다음 문장’에 가닿은 시인을 만났다. 새로운 말이 없어 침묵하거나, 할 말을 몰라 윽박지르는 시대. 한발 앞서 새 말을 찾고 자신의 말을 하는, 시인과 같은 삶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때이니까. 삶의 정면을 바라볼 줄 알아, 세상을 향해 끝없이 질문하는 ‘시인의 눈’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니까. 그리하여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그럼으로 다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때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에게 새로운 무엇이 필요한 때가,
‘그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시집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표지

Q ‘안녕’을 묻는 일이 요즘처럼 무거운 때가 있었을까요. 이런 때, 시인의 일상은 어떠한지요.

지구공동체라는 말이 이렇게 현실감있고 실감나게 다가온 적도 없지요.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스트레칭하고 따듯한 물을 마시고 집을 나와 강을 건너갔다 옵니다. 강에서 돌아 오면 그사이에 있던 아주 사소한 일, 보고 듣고 생각한 일을 짧게 씁니다. 어제의 일기를 오늘 아침에 쓰고 신문을 검색하죠. 9개 정도 신문에서 칼럼·사설·인터뷰 기사를 봅니다. 특히 정치인들의 연설문이나 인터뷰 기사를 자세히 읽습니다. 대권 주자들의 말을 자세히 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주 중요합니다. 정치인의 언어 동원 능력과 어휘 사용 범위는 그 사람의 정치적 역량과 능력, 그리고 인격을 가늠하는 잣대 입니다. 야당 당대표 선출은 새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당대표가 새로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말이 그에게 없는 것 같아서요. 정치는 나비가 나는 일과 같습니다. 날개의 균형이 맞아야 날 수 있습니다. 야당도 그렇지만 여당도 날 생각을 안 하거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신문 보고 나서, 연예계 동정 보고, 축구 명장면 찾아보고, 영화 리뷰 찾아보고, 아침 먹고 집안 살림 돕고, 낮잠도 자고, 그리고 책을 읽습니다. 올 들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을 읽었어요. 지금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고 있습니다. 연속극과 영화도 찾아봅니다. 해 질 때 다시 멀리 산책을 나가지요. 나는 바쁩니다.

Q 오랜 시간 함께한 ‘창비’가 아닌 ‘문학과지성사’에서 신작 시집을 출간해 화제가 됐어요. 두 출판사의 문학적 경향이 다르기 때문인데 요. 동시에 “시가 달라졌다”는 평도 나왔고요.

설렜습니다. 문단 등용을 앞둔 신인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왠지, 정말, 무엇인가 시원했습니다. 이 느낌은 뭘까, 생각했습니다. 어딘가에 묶여 있던 어떤 시대적 문법으로부터 풀려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87년 체제’의 문법으로부터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고 할까…. 새로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의 시대 언어는 너무 낡았습니다. 정치가 너무 낡았습니다. 새로운 말이 없어요. 시집을 받아 들고 아내가 이렇게 말했어요. “시가 정치적이지 않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내 시가 곳곳에서 우리의 현실과 닿아 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무엇이 필요한 때가, ‘그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 했어요. <어린 새들의 숲>속 언어는 그래서 나왔습니다. ‘정지’에서 풀려나고 싶지요. ‘다음 문장’으로 가고 싶지요. ‘철학’보다는 ‘수학’이 더 필요한 때지요.

올해 태어나 자란 / 어린 새들이 / 앳된 울음으로 /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닌다 / 신비로운 첫 서리, / 당신이 / 처음입니다
<어린 새들의 숲>

첫 문장에 오래 머물러 내 등에 / 눈이 쌓이는구나 / 평행을 이루려는 눈발의 각도를 잡아다닌다 / 눈이 쌓인다 다음 문장으로 가자
<눈이 쌓인다 다음 문장으로 가자> 중

“아빠 시 좋다 / 제목을 ‘꿈을 생시로 잇다’ / 이걸로 하면 좋겠다(…) / 아직 ‘여기까지’ 안 온 것 같은 / 그런 느낌도 있어요.”
<내가 사는 집 뒤에는 달과 밤이 한집에 산다>중

Q 새 시집이 나오기까지 5년, 주로 천착해 온 주제나 고민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계속 이런(?) 시를 쓰면 안 되는데, 한발만 더 나아가자였습니다. 내가 한 말이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내 말인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인가. 내 시집이, 내게 미안하거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말이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처음으로 시집을 내놓고 내게 미안한 마음이 줄어들었음을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적어졌습니다. 내 말이 어느 정도 내 말이 됐다는 뜻이죠.

Q 새로운 시를 둘러싸고,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요?

어떤 시인은 제 시를 읽고 70년이 넘게 보는 마을의 사물들일 텐데, 이번에는 익숙한 것들이 새로운 말이 됐다고 했습니다. 어떤 시인은 자기 자신으로 깊이 들어가서 자기를 봤다는 말도 하고, 또 어떤 시인은 기름기를 다 뺀 가을 강가의 나무 같다고도 했습니다. 적어도 세상에 아부하거나, 사정하거나, 문학적인 응석을 떨거나 어리광 부리지 않았어요. 어디에도 기대지 않았어요. 바람에도, 나무에도.

Q 시를 읽은 딸이 문자를 보내준 일화도 한 편의 시가 됐어요.

산문은 보여주지 않지만, 시집 원고가 다 됐다 싶으면 원고를 가족 모두에게 보여주지요. 딸에게는 평소에도 시를 잘 썼다 싶으면 늘 보여줍니다. ‘오오!’ 그런 문자가 오면 좋고, 아무 답이 없으면 실망해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하니 까요. 나를 알고 있는 사람 앞에서 객관적 수긍을 얻을 때, 부끄러움과 어색함과 잘못이 드러나지요.

Q 딸이 언급한 ‘여기까지’를 시 속에서 ‘무슨 말인지 안다’ 하셨어요.

시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인지 늘 물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 다. 지금 하는 말이 정직한지, 내가 한 말이 책임질 수 있는 말인지, 그 시가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인지 아닌지 아는 것은, 순전히 나의 문학적 역량입니다. 현실과 시적 긴장감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내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충고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신 차리게 해줘요. 일상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호불호는 근거 있는 객관적 판단이라 믿어요. “남의 말을 잘 듣는 게 진보다”라는 말도 있고요.

Q 이번 시집을 ‘젊은 시인’에게도 읽어보게 하셨지요.

나는 낡았고, 지루하고, 고루합니다. 늘 선입견을 갖고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늘 비워놓고 삽니다. 내 생각이 옳다고 우기지 않고 살고 싶었어요. 늘 고치고 바꾸고 새로운 세상에 나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늘 젊은 딸에게 내 시를 보여줍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젊은 시인이 많아요. 내 시를 보여주면,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나는 그 젊은 시인의 충고를 잘 알아듣습니다. 나는 많이 틀리고 그들이 맞습니다. 나는 시골에 박혀 사는 돌이잖아요. 생생하고 역동적인 젊은 감각이 필요합니다. 요즘 박준·이원하·황인찬·신용목·문보영·유이우·유희경·김이듬·이병률의 시를 읽고, 또 이들을 눈여겨봅니다.

Q 새 시집에 ‘나비’가 많이 등장해요. 벽을 날아오르고, 강을 건너고, 또 나무에 숨기도 하지요.

나비는 연약한 곤충입니다. 얇은 두 쌍의 날개로 균형을 잡아가며 납니다. 시는 설명이 아니라 명징한 그림이지요. 산책하는 한적한 길가 검은 바위 넘어 어린나무에, 나비가 앉아 있는 것을 봤습니다. 바로 시였습니다. 고요를 일으키는 것이 ‘나비의 날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바람이 온다면 나도, 균형을 잡고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균형이 일으키는 긴장은 시인의 생명이고, 시는 나비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 같은 것이지요.

잘 왔다 / 어제와 이어진 / 이 길 위에 / 검은 바위, 어린나무만 이 나비를 / 숨겨준다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중

날개를 헐 수 없는 나비는 절대의 균형을 잃을까 두려워 / 오늘도 번쩍이는 거대한 유리 벽을 날아오른다
<침묵의 유리 벽> 중

하늘은 해를 낳았어 / 환한 날이 되었네, / 내가 그렇게 혼잣말을 했지, 그러자 / 정지된 것들이 일시에 풀리듯이 / 새소리가 들렸어
<나는 정지에서 풀려났다> 중

Q 그 ‘나비’는 어찌하다 이렇게 다양하게 발화했는지 궁금합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비 사진을 많이 찍는데, 특히 배추흰나비가 우리 동네에 많아요. 짝을 찾고 탐색하다가 짝이 맞으면 나풀거리며 하늘 높이 올라가요. 어떤 때는 7~8마리가 희게 엉켜 하늘 끝까지 올라가 버려요. 나비가 날갯짓을 멈추고 바람을 타고 흘러갈 때는 신비로워 입을 다물지 못하죠. 나비가 좋아 사진을 찍고, 시를 씁니다. 연약함이 주는 아름다운 ‘짓’이 늘 나를 신비롭게 일깨워 줍니다.

Q 시를 쓰시는 전후의 풍경이 궁금해요.

문득 하나의 단어가 떠오르는데, 그 말이 새로운 말로 들릴 때가 있어요. 어떤 문장이 떠오르는데, 그 문장이 정말 새로운 문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시를 쓰곤 합니다. 시를 쓰기 전에 그림이 먼저 그려져요. 모든 시가 다 그랬어요. 내 삶의 내용이, 내가 보던 풍경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림으로 그려지면, 시가 됩니다. 올해는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기로 하고 썼습니다. 저는 시를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일 글을 쓰니까요. 나의 글쓰기는 나의 현실입니다. 때로 강가에 나무처럼 서보고 싶습니다. 나무는 무게를 느끼지 않을 것 같아서요. 현실 아닌 것을 나무는 자기의 것으로 짊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의 직시는 삶의 정면입니다. 정면은 자유를, 답을 주기도 합니다.

Q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시적’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시인의 삶에서 일상은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내가 버린 시간도 가져다가 씁니다. 시인은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말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말은 다릅니다. 세계가 실려 있지요. 시인은 세상을 고민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죠. 나는 그냥 그렇게 삽니다. 살다 보면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있지요. 그걸 감당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삶에서 고난과 고통과 슬픔은 예외가 없습니다. 겪을 것을 다 겪어가며 삽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면 또 살아질 무슨 수가 다 있지요.

Q 시 쓰는 시간 외에 가장 즐겁게 몰두하시는 순간은요.

사진을 열심히 찍어요. 겨울에는 오리 찍는 일에 빠져 살고, 봄이 되면 꾀꼬리 찍는 일에 빠져 삽니다. 내 시에 나오기도 하는 뱁새·콩새·비비새는 같은 새인데, 학명은 붉은머리오목눈이 입니다. 그 새를 찍기 좋아합니다. 한적한 시골에선 심심하니까 모든 게 자세히 보여요. 귀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답니다.

Q 이번 시집에서 “정지에서 풀려났다” “고요는 살아 있다”고 하셨어요. 시 한편 한편이 시인에겐 세계의 확장일 텐데요. 이번 시집은 더욱 강렬하게 ‘자유’가 느껴져요.

맞습니다. 어떤 자유를 얻은 기분이에요. 그것은 회피나 도피, 핑계나 외면, 방기가 아닙니다. 자유는 현실을 정면으로 볼 때 생겨납니다. ‘정지에서 풀려났다’는 건 지루함 고루함 상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고요는 적막과 달라요. 고요는 내가 다다른 곳입니다. 그 고요 속에 들면 모든 것이 생동감 있게 살아납니다. 나비가 다시 날고, 새가 다시 울고 물고기들이 강물 위로 뛰어오르고, 개구리가 뛰고, 구름이 흘러가고 오리들이 물을 차고 날아가는 모습이 틀림없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생명입니다. 순환이지요. 세상의 이치이고 순리지요. 수학이고 과학이고 음악이고 철학입니다. ‘시’지요.

시를 쓰기 전에 그림이 먼저 그려져요.
모든 시가 다 그랬어요. 내 삶의 내용이, 내가 보던 풍경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림으로 그려지면, 시가 됩니다.

김용택 시인이 찍은 나비

Q 초등학교 2학년생을 오래 가르치셨어요.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데요. 코로나 시대를 우린 어떻게 견디며, 건너가야 할까요.

아이들에겐 모든 게 새롭습니다. 신비롭지요. 그래서 심심하지 않고, 세상이 감동적이겠지요. 감동은 느끼고 스며들어서 생각과 행동을 바꿔줍니다. 그러면 또 세상이 새롭지요. 코로나가 우리 일상에 큰 그늘을 주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늘 우리가 사람임을 잊지 않고, 나 혼자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내 것이 아까우면 남의 것도 아껴가며 삽시다. 뉴턴이 살던 시기에 흑사병이 유행했어요. 학교도 직장도 멈췄지요. 고향으로 돌아간 뉴턴은 그곳에서 미분 적분, 빛의 원리, 만유인력 세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뉴턴의 그 시간을 ‘창조의 시간’이라고 하지요. 지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코로나 이후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아프지 마시고, 용감하고 씩씩하고, 희망찬 나날이 되길 빕니다.

박동미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문학과 연극을 담당하고 있다 | 사진제공 김용택,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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