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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여성이 직접 말하는 이야기, 그리고 모두가 들어야 할 이야기
문학·대중문화·공연에서의 여성 서사

2~3년 사이 문화 콘텐츠에서 여성이 주체가 돼 이야기하고 큰 인기를 얻는 일이 늘었다.
문학뿐만 아니라 TV 예능 프로그램·드라마·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그리고 연극·뮤지컬 등 공연예술에서 여성의 서사와 연대는 이제 ‘흐름’이 됐다.
여성 서사의 확대는 문화적 다양성 확보와 사회의 인식 변화 측면에서 중요하다.
2020년 한국의 문화예술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온 여성 서사 경향을 짚어보고 2021년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여성을 마주하는 문학 기억하고, 연대하며 이어가는 여성문학

2020년에도 변하지 않은 출판계의 확고한 흐름은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이었다. 여성의 이야기는 더는 변방에 머물러 있지 않다. 독자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이, 가부장제의 그늘을 직시하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연대와 상상력을 보여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팬데믹 시대, 출판 시장에서 한국 소설의 약진을 견인한 것 역시 여성 작가들이었다. ‘여성 서사’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여성 서사가 쓰인 현장이 2020년 한국문학이었다.

1 강화길 소설집 《화이트 호스》
2 박민정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

가부장제를 넘어, 기억해야 할 여성의 이야기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여성 히어로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 정세랑이 2020년 ‘가모장’이 중심이 된 ‘여성 공화국’으로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는 2020년 한국문학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뎌온 여성 심시선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모계 중심 3대의 이야기로, 여성에게 유독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모든 여성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소설이다. 가부장제의 민낯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부장제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연대를 모색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보여줘 독자들의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한정현의 첫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거나 드러나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를 소설의 무대 위로 소환한다. 일제강점기 여성 국극단에서 활약한 소녀 연예인들, 나체 시위를 벌인 여공들, 미군 기지촌의 여성들,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여학생들, 시대에 순응하기도 맞서기도 했던 레즈비언. 소수자라는 이유로, 이상하다는 이유로 존재가 지워진 이들의 이야기를 외면하거나 지나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는 일, 문학이 가진 힘과 가능성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여성만 감지하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연대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문학은 특히 현실을 예민하게 반영한다. ‘N번방 사건’을 비롯해 2020년에도 끊이지 않은 성범죄 사건에 많은 이가 분노했다. 여러 여성 작가가 소설 속에서 한국 사회의 다층적인 여성혐오와 젠더 불평등의 양상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등 시대와 긴밀하게 호흡했다. 박민정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는 디지털 성범죄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 폭력의 역사와 지형도를 입체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란 호평을 받았다.
강화길은 소설집 《화이트 호스》에서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도 존재하는, 오직 여성만이 경험하는 불안과 공포를 스릴러의 문법으로 예리하게 그린다. 결혼 후 시댁에서 지낸 첫 제사가 일종의 가족 스릴러로 변하는 내용의 단편소설 <음복>은 문단은 물론 독자의 큰 호응을 받았다. 작가는 남자들은 몰라도 되는, 몰라도 지장이 없는 것들을 여성만이 감지하고 견뎌왔음을 이야기한다.
2020년에도 시대의 상흔 속에서 여성의 연대를 그린 작품들이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두터운 독자층을 보유한 작가 김금희의 장편소설 《복자에게》는 2009년 제주의료원에서 발생한 간호사들의 산재 사건을 모티프로 두 여성이 상처와 실패를 다독이며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그린다. 여성·퀴어·노동에 대한 또렷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온 조우리는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에서 ‘번갈아 핸들을 잡는’ 여성들의 연대를 이야기한다.

‘연년세세’ 이어질 여성의 이야기

시대의 비극과 아픔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이를 소설로 써온 황정은이 2020년 연작소설 《연년세세》로 독자를 만났다. 사는 동안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작가는 ‘순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 붙였을 그 이름과 달리 고단했던 그네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소설 속 순자와 그 두 딸이 겪은 숱한 고난과 폭력, 피로에도 삶은 연년세세 지속된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황정은은 2019년 《디디의 우산》에 이어 이 소설로 교보문고가 발표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2년 연속 선정됐다.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상위권에는 김연수와 레몽 크노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 서사의 저력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2020년 여성 작가들이 증명해 냈다. 이들이 펼쳐 보인 다양한 세계를 ‘여성 작가’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뭉뚱그리는 것이 이제는 더 뭉툭하고 게으른 분석이 될 것이다.
《나의 할머니에게》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언니밖에 없네》 등 다양한 여성·퀴어 서사를 담은 앤솔러지도 2020년 한 해 내내 출간되는 등 출판계도 다채로운 여성 서사를 기다리는 독자의 갈망에 적극 화답하고 있다. 2021년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글 선명수_《경향신문》 기자
사진 제공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대중문화가 여성 서사를 그리는 방식 평범한 여성 이야기가 지닌 힘

1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 현장 이미지
2 <내가 죽던 날> 순천댁(이정은)·현수(김혜수)

‘평범한’ 여성 히어로의 탄생

“심효정, 69세. 병원 간호조무사 이중호에게 성폭행당했습니다.”
이 문장이 적힌 A4용지 수백 장을 양팔로 안고 힘겹게 계단을 오른 ‘효정’은 옥상 난간에 서서 이 종이를 뿌린다. 2020년 8월 개봉한 임선애 감독의 영화 <69세>의 마지막 장면이다. 자주 다니던 병원의 남자 간호조무사인 29세 ‘중호’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효정은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다 경찰에 중호를 고소하지만, “젊고 훤칠한 중호가 당신을 왜?”라는 사람들의 편견에 부딪힌다. “노인 여성을 무성적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과 싸우고 싶었다”는 임 감독의 기획 의도대로 이 영화는 나이 든 여성에 대해 우리가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임 감독은 이 영화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인 박남옥 감독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남옥상’과 제21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기존 여성 서사 작품들과 <69세>가 다른 것은 영화가 효정의 평범성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효정이 성폭행이 일어난 병원 옥상에 올라 피해 사실이 적힌 A4용지 수백 장을 뿌리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효정은 가해자 중호에게 임신한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의 성폭행 사실을 폭로하려 한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자문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69세 노인, 자기검열 앞에서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을 그림과 동시에, 그 나약함을 주변 인물과 연대해 깨부수는 과정을 담았기에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올해는 <69세>처럼 평범한 여성이 고난을 겪으며 강해지는 과정을 조명한 여성 서사 작품이 많았다. 코로나19 여파에도 관객 156만 명을 모으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역시 인기 비결에는 ‘평범한 여성들의 연대’가 있었다. 영화는 고졸 여사원 동기 세 명이 회사 비리를 내부고발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혼소송, 신체마비 등의 아픔을 가진 여자 경찰 현수(김혜수)와 몸을 가눌 수 없는 가족을 홀로 돌보며 살아가는 순천댁(이정은)이 한 소녀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내가 죽던 날>도 평범한 여성들의 연대를 그려 호평을 받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비범함 속에서도 평범함을 구현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젤리 괴물 ‘엑토플라즘’을 볼 수 있는 고등학교 보건교사 안은영이 엑토플라즘으로부터 학생들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광선검과 비비탄총으로 물리친다는 설정은 단련 없이 초능력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기존 히어로물과 비슷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버거운 능력에 때론 괴로워하는 평범한 모습을 그림으로써 전에 없던 히어로를 만들어냈다.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나이 든 산모의 산후조리원 적응기를 그린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이 대표적이다. <산후조리원>은 자연분만과 모유수유 여부에 따라 모성애 등급을 매기는 조리원의 적나라한 모습, 출산 후 아이의 똥을 보며 헛구역질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나는 사이코패스인가’ 하고 고민하는 산모의 자아분열 등 아이를 낳은 여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출산과 육아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뤘다.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무협만화 <취접냉월>을 선보인 황미나 만화가는 기자와의 한 인터뷰에서 “출산이라는,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자 고통을 오롯이 담아낸 <산후조리원>이 여성 서사가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디바> 같은 영화에도 투자가 이뤄지는 시대를 기대하며

3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정유나(이솜)·이자영(고아성)·심보람(박혜수)

“여성 ‘투 톱’ 주연이라고 하니 모든 투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2020년 개봉한 영화 <디바>와 <오케이 마담>에서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제작사 ‘영화사 올’의 김윤미 대표가 기자와 인터뷰하면서 한 이야기다. 여성 배우 두 명이 주연이라는 것이 장벽이었다. 여성 서사가 콘텐츠 업계의 주류가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여성만 등장하는 콘텐츠는 흥행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이 때문에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시나리오 자체가 드문 데다, 좋은 시나리오가 나와도 투자를 받거나, 드라마의 경우 편성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작품은 꼭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한 투자사 여성 이사님의 용기 덕에 <디바>를 만들 수 있었다”는 김 대표의 말처럼 여성 서사를 다룬 콘텐츠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넷플릭스처럼 광고가 아닌 가입자의 구독료로 수익을 내는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하는 흐름도 좋은 여성 서사가 발굴될 수 있는 기회다. <에놀라 홈즈> <퀸즈 갬빗>처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2020년 넷플릭스에서 대거 쏟아졌듯, 2021년에는 디즈니플러스 등 다양한 OTT의 경쟁이 시작되면 여성 서사뿐만 아니라 생소한 소재, 배우의 낮은 인지도 등 기존에는 장벽으로 인식돼 제작하지 못했던 작품들도 빛을 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 김재희_《동아일보》 기자
사진 제공 래몽래인,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롯데엔터테인먼트

공연계 ‘여성 서사’, 남녀 구분 떠나 ‘사람’으로 결국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이른바 ‘여성 서사’ 작품들이 최근 몇 년 사이 공연계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인형의 집> <신의 아그네스>와 같이 여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엔 연극,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계속해서 무대에 올라 공연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어 눈길을 끈다.

1 한국 근대사의 굴곡진 순간을 살아낸 여성들을 그린 연극 <화전가>

3~4년 전부터 변화 조짐… 시대 반영 결과
공연계가 여성 서사에 주목한 것은 2017~2018년부터다. 특히 이른바 ‘티켓파워’가 있는 남성 배우 중심으로 움직이던 뮤지컬계에서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시작됐다. 아이비·유리아 등이 주연을 맡았던 창작 뮤지컬 <레드북>(2017),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을 원작으로 정영주·황석정 등 뮤지컬계 대표 여성 배우 10여 명이 출연해 화제가 된 <베르나르다 알바>(2018)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뮤지컬을 중심으로 여성 서사 작품이 등장하는 것은 여성문제를 점점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공연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결과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관객들이 공연에 대한 체험이 늘어나면서 점점 새로운 이야기를 찾게 됐고,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 등 여성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면서 관객의 관심도 여성의 정체성 등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여성 서사를 다룬 뮤지컬의 활약이 돋보였다. 노벨상 수상 화학자 마리 퀴리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마리 퀴리>는 여성의 연대를 작품 전면에 내세웠다. 소극장 규모로 먼저 선보인 공연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약 4개월 만에 중극장으로 규모를 늘려 화제가 됐다.
국내 초연으로 선보인 뮤지컬 <리지>는 1892년 미국에서 일어난 여성들의 살인 사건을 소재로 시대에 억눌린 여성의 욕망과 심리를 강렬한 록 사운드로 풀어냈다. 2019년 초연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을 휩쓸었던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최근 재공연으로 관객과 다시 만나고 있다. 여성 중에서도 70대 노파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공감 가는 스토리와 메시지를 풀어내 창작 뮤지컬 레퍼토리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여성의 삶과 애환, 무대로 공감대 형성
연극계도 뮤지컬 못지않게 여성 서사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연출가, 극작가 등 여성 창작자들이 직접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크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곳은 창작집단 LAS다. 연출가 이기쁨을 중심으로 2009년 창단한 창작집단 LAS는 그리스 여신을 통해 현대 여성의 삶과 애환을 풀어낸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로미오와 줄리엣>을 새롭게 재해석한 <줄리엣과 줄리”엣>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왔다. 2020년 10월에는 이기쁨 연출과 배우 겸 작가 한송희가 서울시극단과 함께 나혜석의 삶을 조명한 연극 <나, 혜석>을 선보이기도 했다. 비록 코로나19로 온라인 공연만 진행했지만 “시대를 앞서간 여성의 아픔과 삶을 공감 가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립극단 <화전가>도 2020년 주목할 만한 여성 서사 작품이다. 극작가 배삼식이 극본을 집필하고, 이성열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출한 <화전가>는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6·25전쟁 등 한국 근대사의 굴곡진 순간을 살아낸 사람들,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찬가지로 배삼식 작가가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비극을 각색해 전쟁 속 여인들의 아픔을 그린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도 2020년 12월 3년 만에 무대에 다시 올라 호평을 이어갔다.

2 ‘리지 보든 사건’을 소재로 시대에 억눌린 여성의 욕망과 심리를 풀어낸 뮤지컬 <리지>

결국엔 인간… ‘여성 서사’ 범주화 벗어나야
2021년에도 여성 서사 작품은 계속된다. <베르나르다 알바>가 1월 정동극장에서 재공연을 앞두고 있다. 초연에 출연한 정영주가 프로듀서까지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립극장은 한국 영화사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의 이야기를 그린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을 1월 중 개막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특정 공연을 ‘여성 서사’로 범주화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남녀 구분을 떠나 한 인간의 이야기로 공연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에 출연한 여성 배우들의 공통된 이야기도 “여성 서사를 떠나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국립극단 연극 <햄릿>에서 ‘공주’ 햄릿 역을 맡은 배우 이봉련은 최근 인터뷰에서 “공연계에서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런 구분조차 사라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의 여성 서사 작품들은 반짝하고 사라질 유행이 아닌, 공연계가 인간의 보편적인 이야기를 반영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봐야 할 것이다.
글 장병호_《이데일리》 기자
사진 제공 국립극단, 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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