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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11월호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 개막 공연봄은 마음속에 있다
코로나19로 긴장감이 높았던 올봄, 두 계절쯤 지나면 예전과 같은 일상을 되찾으리라 기대했지만 2020년 가을은 기대와 달랐다.
축제나 공연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거나 오프라인 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해 온라인과 병행하는 가운데, 5월에서 10월로 일정을 미룬 제15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새로운 상황을 반영한 프로그램으로 8일간 열렸다.
한 해가 저무는 풍경 속에서, 지난 14년을 찬찬히 되짚은 축제는 음악과 우리 마음이 쉽게 저물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 자리였다.

10월 10일 영산아트홀에서 진행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개막 공연 <2014>

해마다 5월이면 어김없이 열리던 봄 축제가 있다. 무려 14년 동안 계속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SSF)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유구한 역사의 축제는 미뤄졌지만 소멸되지 않았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가을에야 개막했다. 10월 10일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개막 공연 <2014>를 봤다. ‘신세계, 어제와 오늘’이란 주제로 펼쳐진 2014년 축제를 회고하는 공연이었다. 가을의 중심으로 향하는 절기에 어둠과 갈마드는 파란 하늘을 보며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첫 곡은 하이든 플루트 4중주 제5번이었다. 조성현의 플루트와 이경선의 바이올린, 이수민의 비올라와 임희영의 첼로가 함께했다. 연주자가 직접 곡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는 모습은 예년과 마찬가지였다. 조성현은 “악기 간의 대화가 있고 생기를 띠고 있어 오프닝으로 알맞은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연주에 들어갔다. 1악장에서는 고전주의 시대 특유의 단정함과 함께 즐거움과 명랑함, 여유가 묻어났다. 2악장에서는 세 현악기의 어울림이 자리를 잡았다. 플루트가 나머지 세 악기를 견인하는 듯한 분위기로 연주가 진행됐다. 3악장에서는 이경선의 바이올린과 주고받는 조성현의 완급 조절이 돋보였다. 4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요소들이 즐거움으로 피어났다. 전체적으로 플루트의 대활약이 돋보인 곡이었다.
두 번째 곡이자 1부 마지막 곡은 에르뇌 도흐나니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라리넷,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6중주 Op.37이었다. 양인모의 바이올린, 이한나의 비올라, 김민지의 첼로, 채재일의 클라리넷, 미샤 에마노브스키의 호른, 박종화의 피아노가 함께 어우러졌다. 박종화는 “도흐나니는 20세기 초반에 브람스 스타일의 낭만주의를 선보인 작곡가”라고 소개했다. 브람스의 전통이 느껴지는 4악장 형태의 곡에서 1악장은 현악기와 관악기가 실내악답게 녹아드는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2악장에서는 여섯 악기가 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나무들처럼 텁텁하면서 다양한 색채감을 선사했다. 클라리넷으로 시작한 3악장은 더욱 브람스를 생각나게 했고, 역시 브람스가 사랑한 호른의 역할이 비중 있게 다가왔다. 재즈와 빈 왈츠의 요소가 보이는 4악장은 가장 신나고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발랄한 영화음악에 우아함과 리드미컬함까지 곁들여진 이 작품을 들으며 실내악의 묘미에 빠질 수 있었다. 명지휘자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의 할아버지인 에르뇌 도흐나니의 작품들을 더 들어보고 싶어졌다.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실내악은 이렇게 근사한 음악을 찾아 듣게 만드는 자극으로 작용한다. 연주자들이 서로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는 음악의 그림이 완성도가 높을 때 현장에서 느끼는 희열은 대단하다. 답답한 화면과 평면적 음향으로 전달되는 온라인 콘서트와는 비교 불가하다.

가을을 펼쳐 보이며 다가올 봄을 기약한 축제

2부에서는 브람스 피아노 5중주 Op.34가 연주됐다. SSF 음악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을 위시해 바이올리니스트 박재홍, 비올리스트 최은식과 첼리스트 주연선, 그리고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가 함께 연주했다.
1악장이 시작되자마자 무대에서 객석으로 단풍빛 가을이 왈칵 쏟아졌다. 강동석의 바이올린은 가늘었지만 관록의 긴장감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어서 양감이 도드라졌다. 두 바이올리니스트는 절도 있게 함께 움직였고, 비올라는 무심히 중역대를, 첼로는 깊숙한 곳에서 저음을 길어 올렸다. 2악장은 서정적이었다. 생각보다 앙상한 고음현에 대비되는 첼로의 굵은 저역이 인상적이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를 연상케 하는 앙상함은 가을과 잘 어울렸다.
3악장 스케르초에 들어서자 모두가 반복적인 패시지(passage)를 격렬하게 연주했다. 중간 부분에 평정을 되찾은 뒤 이어진 민첩한 합주는 마치 다섯 악기가 목소리를 모아 합창하는 듯했다. 4악장 피날레는 쌉싸래한 맛이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볼 때면 느껴지던 코끝의 차가움과 맵싸함이 음악을 통해 들어왔다.
이번 SSF는 축제 일정도 줄어들었고, 해외에서 오기로 했던 연주자들은 14일의 자가격리 기간까지 포함해 일정을 짤 수는 없어 부득이 우리나라 연주가들로만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주력은 기존의 축제와 큰 차이 없이 다가왔다. 15회에 이르는 동안 우리 연주자들의 기량이 향상되고 인재층이 많이 두터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객석을 빠져나오며 문득 ‘가을의 한때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향긋한 늦봄에 만났던 실내악 축제를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을에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공연 애호가들에게 올해는 참 이상한 한 해였다. 공연을 기획하고 연주를 하고 청중을 살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흘릴 눈물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늦게나마 찾아와 준 축제가 고마웠다. 봄은 마음속에 있다. SSF로 인해 2020년의 가을은 새롭게 시작한 봄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 류태형_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두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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