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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11월호

10대들이 즐겨 찾는 그곳엔 무엇이 있나
X·Y·Z 세대의 핫플레이스로 본 청소년 놀이 문화

우리 사회가 청소년 발달과 놀이의 관계에 주목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청소년의 다양한 체험과 놀이를 표방하며 만들어진 전용 공간들도 기대만큼 많은 청소년을 불러들이지 못한 채 외형만 키워왔다. 그사이 청소년들은 어디에서 모여 어떤 놀이를 공유해 왔을까. 신인류의 출현으로 주목받은 X세대부터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Z세대까지 세대별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청소년 놀이 공간의 역사를 탐색해 본다.

1, 2 1980년대를 배경으로 10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는 어김없이 이들의 놀이 문화와 공간이 등장한다. 영화 <써니>(사진1)와 <품행제로>(사진2)에서는 1980년대 청소년의 놀이와 일탈, 롤러장의 모습 등을 엿볼 수 있다.

노는 10대들은 어디로 갈까

지금도 기성세대가 보는 청소년의 놀이란 언제든 일탈의 위험을 안고 있는 행위다.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고 시간 낭비로 치부되기 일쑤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설립한 청소년 전용 공간이 새로운 문화예술 체험 기회와 놀이의 장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10대의 관심과 생활에서 멀어진 것은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청소년 전용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놀이를 규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2020년 현재 50대 전후인 기성세대가 청소년이던 시절, 젊은이들의 놀이터란 일탈 혹은 탈선의 장소였다. 이 세대는 청소년의 건강한 신체 활동과 사교의 장으로 등장한 롤러장이 탈선을 부추기는 장소로 변질되고 유흥업소로 분류돼 청소년 출입이 금지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1980년대에 전자오락실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청소년에게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을 피해 출입해야 했던 일탈의 공간이었다. 이성 교제나 취미 활동은 대학에 간 이후로 미루고 넉넉하지 않은 용돈을 아껴 쓰라고 교육받으며 자기들만의 놀이 문화를 갖지 못한 베이비붐 세대가 이후 세대의 청소년 공간을 온전히 놀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조국 근대화가 최우선 과제인 사회에서 생산 지향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X세대는 신인류의 출현이라는 설명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소비 지향적이다. 이후 등장한 Y세대, Z세대도 이름은 달라졌지만 항상 소비와 유행을 주도해 온 존재다. 소비와 유행은 1990년대 이후 시대별로 청소년이 어디로 모이고 무엇을 하며 노는지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3 1996년 신촌 민들레영토의 모습. 1인당 문화비 몇천 원을 내면 카페 공간과 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사진: 《조선일보》, 1996)

X세대의 감성과 ‘민들레영토’

X세대는 1970년대에 태어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성장기를 보냈다. 경제적 풍요를 바탕으로 문화의 혜택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생산보다 소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공동체 정신보다 개인주의가 두드러지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 규정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X라는 문자를 붙인 세대다. X세대의 강한 자기주장과 새로운 감성은 새로운 소비 트렌드와 유행을 만들어냈다. ‘민들레영토’는 감성 소비를 추구하는 X세대에게 각광받은 대표적 공간이다.
시험 기간이면 구립 도서관으로 모이던 친구들이 “민토 가자”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그때도 10대들은 줄임말을 즐겨 썼다. 민토라는 말을 모른다는 것은 유행에 뒤처지고 무리에 속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라는 뜻이었기에 당시 10대들은 민토에 갔다. 풍요롭게 자랐다고 해도 어느 시대에나 청소년은 용돈이 부족하다. 1990년대의 민토는 가성비가 좋은 놀이터이면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장소 사용료로 몇천 원의 문화비를 내면 음료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었고, 다른 곳에서 구입한 음식도 자유롭게 반입이 가능했다. 장소 사용료를 문화비라고 칭한 이유는 이곳이 문화 카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스터디 카페처럼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고 소모임을 갖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골목마다 하나씩 있던 개인 빵집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무렵부터 2000년 전후로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민들레영토는 X세대의 감성과 통하는 독특한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다. 동화 속 세상 같은 독특한 인테리어와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격식 있는 옷차림, 예쁜 종이컵과 식기들이 이질적인 감각을 전달했다. 수려한 외모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한다는 소문이 민토의 인기를 더욱 높였는데 실제로 그 시절 민토에 드나들던 사람들 중에는 ‘단정한 용모’가 알바생 선발 조건에 있었다고 기억하는 이가 적지 않다. 지금처럼 아이돌 스타와 팬이 다양한 수단으로 가깝게 소통하는 팬덤 문화가 자리 잡기 전에 민토의 알바생은 청소년이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동경한 대상이었다.

4 2000년 문을 연 삼성동 코엑스몰은 쇼핑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핫플레이스’였다.(사진: 《헤럴드경제》, 2007)
5 <2008 동대문패션축제>의 일환으로 ‘알파걸 콘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동대문 밀리오레 앞 무대(사진: 《뉴시스》, 2008)

2000년대의 동대문에서 코엑스까지

1990년대의 10대들이 민들레영토에 가기 위해 신촌과 명동으로 향했다면, 2000년대의 청소년들은 그곳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신촌, 명동, 압구정동 같은 전통 상권이 쇠락하던 시기는 동대문과 삼성동 등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선 시기와 맞물린다. 동대문 상권은 1998년과 1999년에 밀리오레, 두산타워가 연이어 문을 열면서 젊은 세대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민토 가자”는 말보다 “두타 가자”는 말을 더 자주 썼다.
2000년대 소비, 유행의 주역으로서 밀레니얼 세대라고도 불리는 Y세대는 X세대처럼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면서도 유행에 더 민감하고 소비에 적극적이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접했고, 1990년대 말 급속도로 확산된 인터넷을 빠르게 받아들여 활용한 세대다. Y세대는 유럽발 최신 패션 트렌드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동대문이 새로운 유행의 메카라는 것을 바로 알았고, 두산타워와 밀리오레는 이들 Y세대를 적극적으로 불러모았다. 밀리오레는 아예 청소년 백화점을 표방하면서 옷뿐만 아니라 푸드코트까지 청소년을 겨냥해 저렴한 간편식 위주로 구성했다. 두타는 전 상가에 초고속인터넷망을 구축한 것으로도 화제가 된 바 있다. 밀리오레와 두타 앞에서 열리는 행사는 청소년 고객에게 쇼핑과 엔터테인먼트가 결합된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대중가수의 공연을 비롯한 각종 쇼와 축제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노래 자랑, 댄스 경연 등 10대의 흥과 끼를 발산할 무대가 마련되는 동대문은 굳이 쇼핑을 하지 않아도 즐길 거리가 넘치는 청소년의 해방구로 자리 잡았다.
쇼핑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을 극대화함으로써 10대들의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된 곳은 삼성동의 코엑스몰이다. 새천년을 맞아 문을 연 코엑스몰은 청소년의 놀이, 여가 활동이 갖는 특성에 정확히 부합하는 곳이었다. 코엑스몰은 도심 속 문화 쉼터를 표방하면서 상품뿐만 아니라 공간을 소비하도록 기획됐고, 비일상의 놀이를 원하는 청소년들을 끌어들였다. 쇼핑, 외식, 문화와 레저 체험이 모두 가능한 복합쇼핑몰로서 여가 시간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추구하는 놀이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매장마다 빠르게 선보이는 신제품과 신기술은 유행에 민감한 Y세대가 정보와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이러한 복합쇼핑몰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며 청소년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띠게 되고, 청소년 놀이 문화가 갖는 관계 지향적 특성과도 조응한다.

6 경복궁을 비롯해 북촌과 서촌, 고궁 등에 가면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 찍기에 한창인 청소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진: 《뉴시스》, 2019)

SNS와 사진에 진심인 Z세대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는 유년기부터 디지털 환경을 경험하며 자란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환경을 함께 겪은 직전 세대와 비교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이들은 디지털 기기와 네트워크를 활용해 문화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문화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Z세대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을 발굴해 공유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어떤 경험에서 얻는 감상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타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게 이들의 규칙이다. 이들은 유행에 민감하지만 무작정 따르지 않는 정신, 이른바 ‘힙함’을 추구한다. 힙하다는 것은 낯설고 새로운 감각을 의미한다. 낡은 창고를 개조한 공간이 개성적인 성수동이나 낙후된 건물, 오래된 상점이 민낯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을지로가 Z세대의 명소로 떠오른 것은 낯선 것이 주는 설렘 때문이다.
Z세대에게는 낯선 설렘을 경험하고 사진으로 기록해 SNS로 공유하는 것 자체가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이고 놀이 문화다. 개성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다면 어디든 찾아가는 이들에게는 번듯한 외형의 건물, 많은 사람이 몰리는 대형 몰, 전통 상권은 특별히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다. Z세대가 찾아가는 곳은 오히려 한복을 빌려 입고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경복궁이나 북촌·서촌 거리다. 혹은 눈에 띄는 간판으로 손님을 불러모으는 곳보다 아는 사람만 들어오게 만들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가게, 작은 규모라도 독특한 콘셉트로 포토존을 꾸며둔 곳이다. Z세대 청소년에게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행위는 자기만의 개성과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는 재미있는 놀이이며 문화다.
글 김문영_객원 기자
사진 《뉴시스》 《조선일보》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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