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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서로 배우고 스며드는 예술교육 공간
서울예술교육센터와 예술교육의 변화

서울예술교육센터에서 주목할 점은 그동안 학교라는 틀 안에서 예술교육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청소년에게 집중하는 예술교육센터라는 사실이다. 예술교육센터를 예술가의 아틀리에로 설정하고,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 공동 창작 작업으로 초대하는 실험도 진행된다.
시민이 예술 경험으로 환대받고 일상적으로 감정을 소통하는 문화 라운지도 운영된다.

정책이 예고한 변화,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종합계획(2018~2022)은 ‘지역 중심’으로, 서울시 문화예술교육기본계획(2018~2022)은 ‘생활 속’으로 예술교육의 변화를 강조했다. 이렇게 변화할 예술교육의 거점 인프라로서 예술교육센터 확충이 예고돼 왔다. 서울문화재단은 2019년에 이를 준비하는 <서울형 문화예술교육 2.0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 결과를 근간으로 2020년에는 예술교육의 철학, 예술교육가, 거점, 거버넌스, 프로그램 등 세부 영역에서 변화 전략을 준비해 오고 있다. 재단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선포하는 변화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변화가 되도록 예술교육 현장의 의견을 두루 듣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예술교육 변화 공동기획단’을 위촉해 재단 직원들과 더욱 긴밀하고 지속적으로 변화 전략을 논의해 오고 있다. 아울러 ‘2020 서울예술교육 아카데미_질문의 진화’와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 변화를 위한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그동안의 변화 준비 상황을 종합해 공유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2021년 예술교육 사업 기조로 갈무리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예술교육 정책의 변화 속에서, 그리고 변화를 이끌며, 서울예술교육센터가 개관한다. 시즌 프로그램 디렉터를 위촉해 공간 구성부터 운영까지 함께 기획하고, 길게 관계 맺는 협업 방식도 실험한다. 코로나19가 요구하는 공공행정의 변화와 함께 예술교육의 진화를 위한 이런 실험의 성과는 곧이어 진행될 서서울예술교육센터 리뉴얼과 권역별 거점 예술교육센터 조성에도 적용될 것이다.

예술교육의 가치와 태도의 재확인이 필요한 시점

정책에서는 조직과 예산의 분화를 의미하는 ‘영역’의 확보가 중요한 시기가 있다. 2000년에 시작한 국악강사와 2005년에 더 확대된 예술강사 제도는 예술가 일자리 확보를 위해 공교육이라는 제도적 공간으로 기꺼이 또는 전략적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요구되는 ‘교육’이라는 형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정책의 태도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백년대계’로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호들갑스럽게 밀레니엄 버그를 잡고 나서 좀 더 진보한 정권은, 이제 삶의 질이 중요해졌다며, ‘예술의 힘’을 믿으며 ‘예술교육’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가 강조한 ‘예술교육’의 바탕에는 창의력이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는 힘이 돼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2006년에 문화예술교육진흥법에서 ‘사회예술교육’이라고 구분하고 정의하던 ‘교육’의 태도와 관점은, 지역에서 골고루 누려야 할 문화적 행복을 기본권 수준으로 요구하는 2010년대 시민의 감성 수준에도 크게 못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교육이 교육의 관점과 태도를 버렸을 때, 그 형식으로는 생활예술과 구분되지 않는 ‘영역’을 지켜줄 제도적 장치로서는 이 법의 정의가 유일하다. 그런데 2020년을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가르치던 국가권력을 전복하는 개인들의 힘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런 시민들 앞에서 예술교육 정책이 여전히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가르치는 교육의 태도’를 고수한다면, 먼저 태어난(先生) 꼰대 또는 많이 아는 엘리트 지식인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예술교육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기 위해서 제도와 형식보다는 그 행위를 통해 구현하겠다는 가치를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의 가치가 아닌 예술의 가치가 당연히 우선시돼야 한다. 예술에는 여러 가지 가치가 내재하므로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Arts in Education’이든지 ‘Arts is Education’이든지, 그동안의 AiE 프레임은 국민을 가르치는 교육과 교차할 수 있는 예술의 가치를 중시했다. 그런데 국가 주도의 성장 담론이 퇴색한 지금은, 인간 개인의 감성 표현과 소통을 도와주는 예술의 가치를 부각하는 AiC(Arts in Communication·Community·Commons) 프레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육제도 안에도 창의성보다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의 감각을 키우는 예술이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 이런 가치를 중시할 때 가르치는 태도에서 ‘서로 배우고 스며드는’ 태도로의 전환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필요조건이 된다.

정책과 서비스의 거점보다는 관계의 주체로

역병은 셰익스피어와 뉴턴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깊은 생각을 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문화정책의 ‘성과 만들기’를 잠시 멈추고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 질문에 마땅한 답을 찾지 않고는 예술교육 또는 문화정책의 지속 혹은 진화는 불 가능할 것 같다. 역병 통제와 경제 활력 유지 전략 사이에서 문화와 예술이 고려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여태까지 당연한 것으로 주장했던 문화와 예술의 가치가 정말 실재하는지 또는 국민에게 경험되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친 시민들은 이제 도시화된 삶의 조건 안에서 결코 넓게 허용되지 않는 ‘나의 공간’에서 나와서 ‘사람’과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예술교육 단체들이 지원사업으로 계획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전환한 경우는 50%도 되지 않았다. 공공 문화시설이 먼저 안전하게 문을 닫을 것이 아니라 안전한 만남의 거점으로 열려 있다면, 굳이 돈 낸 만큼 방역된 공간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소위 공유 공간을 찾겠는가? 그렇다고 시민들의 만남을 바로 ‘우리’로 호명하는 문화정책의 촌스러움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연결돼 있지만 ‘우리’로 얽매지 않는 문화적 교류가 코로나 블루로 재확인되는 현대인의 존재와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를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로 소통하기 위해 나를 먼저 감각하는 예술이 필요하다. 서울예술교육센터는 시민들의 이런 문화적 소통의 거점으로 열린다. 그런데 정책이 사용하는 ‘거점’이라는 말은 좀 전투적으로 들린다. 시민에게 전달돼야 할 문화국가의 복지 서비스가 모이고 분배되는 역동적인 양상이 상상된다. 당초 정책 입안자는 서비스 전달의 효율성을 위해 광역에서 기초로, 또는 정책에서 현장으로, 위에서 아래로 술술 흘러가는 구조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보면, 누구나 다 자기 자리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뭔가를 위에서 받아서 아래로 내리는 임무를 본인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주체는 없었다. 거점에 대한 정책의 인식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은 자원을 찾아 오가는 흐름을 만들기 위한 조건이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는 그 흐름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다. 예술이 시민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긴 호흡의 관계를 위해 열려 있는 공간, 예술가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배우는 만남의 거점, 예술의 가치로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스며들어 가보자는 창의적인 모의를 하는 곳…. 그런 예술교육센터가 돼야 할 것이다. 서울예술교육센터는 단순히 정책 서비스의 거점 시설이 아니라 서울문화재단의 문화기획자들이 그런 관계의 주체로서 일하고 있는 ‘그곳’이 되기를 희망한다.

글 김해보_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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