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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서울문화재단 연극부문 유망예술지원사업 <NEWStage> 낭독회 목소리만으로 연극이 무르익는 자리
서울문화재단 연극부문 유망예술지원사업 <NEWStage> 선정작의 낭독 공연이 10월 셋째 주 저녁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에서 열렸다. 언어의 맛과 이야기의 힘이 오롯이 전해지는 낭독극을 들으며 관객은 연극의 여백을 각자의 상상으로 채우고 극과 교감하려 한 발짝 더 다가가곤 했다.

일러스트 관련 이미지1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된 <수학 여교사, 로네펠트, 외고 전학생, 감각적>의 낭독회.

2015년 10월 12일 대학로 서울연극센터 2층 아카데미룸. 오후 7시가 되자 불이 꺼지더니, 잠시 후 20명 남짓의 관객을 마주한 낭독자 쪽 공간에만 은은한 조명이 들어왔다. 준비된 좌석은 세 개. 등장인물 둘의 대사를 낭독할 배우 둘과 지문을 낭독할 낭독자 한 사람의 자리였다. 불이 켜지자 희곡 대본을 손에 쥔 지문 낭독자가 또박또박 극 지문을 읽어가기 시작했고 두 배우는 실감 나는 연기로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극에 몰입하게 했다. 관객은 숨을 조용히 고르며 연극을 들었다. 서울문화재단 연극부문 유망예술지원사업 <NEWStage>의 선정작 중 <수학 여교사, 로네펠트, 외고 전학생, 감각적>의 낭독회는 그렇게 곧 무르익어 갔다.

언어 외의 요소를 배제한 낭독극의 매력

낭독극은 아직 많은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공연형식이다. 연극 공연을 위해 쓰인 희곡을 배우들이 ‘읽어’ 전달한다. 물론 그냥 무미건조하게 읽는 것은 아니다. 무대장치를 갖추지 않은 상태로 배우의 동작은 최소화되며, 그 최소화된 동작을 비롯해 대사 외 극의 모든 요소가 ‘지문낭독’을 통해 전달될 뿐, 낭독하는 배우들의 육성은 극중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 ‘살려낸다.’ 극의 전개에 중요한 음악이나 소품이 더러 곁들여지기도 한다. 희곡이 무대에서배우의 연기를 통해 공감각적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속성을 고려하면 낭독극은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의 일부이자 ‘중간 점검’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사 외의 거의 모든 요소가 배제된’ 낭독극은 그 자체로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오직 듣기만 함으로써 무엇보다 연극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이 그렇고, 배우 역시 보여줄 수 없는 요소들을 목소리에 집중적으로 녹여내 섬세한 감정선이 중요한 극의 경우 ‘보는 연극’ 못지않게 관객과 긴밀하게 호흡할 수 있다. 최근에는 낭독극도 매우 다채롭게 기획돼 소규모의 음악 공연이 함께하거나, 언어를 부연하는 시청각 요소들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곁들여지곤 한다.
이날 낭독회는 정주영 작·연출의 <수학 여교사, 로네펠트, 외고 전학생, 감각적>이 처음 관객과 만난 자리였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이 단둘인 심플한 구성의 극으로, 온라인을 통해 표현된 개인은 사회적 실체이기보다 과시욕의 집합에 불과함을 긴장감 있게 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울문화재단의 연극 분야 신진예술가 인큐베이팅 사업인 유망예술지원 <NEWStage>의 올해 선정작 중 하나로, 극작과 연출을 맡은 정주영 작가는 이날 관객에게 ‘낭독극’ 형태로 작품을 처음 공개한 것이었다. 본작과 함께 올해 <NEWStage>에 선정된 박웅의 <생이 사를 지배할 때>와 박정규의 <강기춘은 누구인가>도 10월 중에 연이어 서울연극센터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이들 작품은 낭독공연을 통해 1차로 점검된 피드백 내용을 수렴하고 워크숍과 모니터링 과정을 추가로 거쳐 2016년 1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서 완성된 연극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1, 2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된 <수학 여교사, 로네펠트, 외고 전학생, 감각적>의 낭독회. 3 <수학 여교사…>의 낭독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정주영 작가.2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된 <수학 여교사, 로네펠트, 외고 전학생, 감각적>의 낭독회.
3 <수학 여교사…>의 낭독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정주영 작가.

낭독할 때 버리는 것과 얻는 것

이날 낭독회에서는 길지 않은 낭독공연 후 정주영 연출이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오직 들었을 뿐이지만 자리에 모인 관객은 이미 각자 머리 속에 <수학 여교사, 로네펠트, 외고 전학생, 감각적>의 장면을 하나하나 그렸을것이다. 극의 설정과 디테일에 대해 질문이 집중됐고, 극이 무대에 올라갔을 때 어떤 점이 더해질지에 대해 관객들은 궁금해했다. 극의 설정과 구성이 워낙 간결한 편이었기에 정주영 작가는 관객의 질문에 세세한 설명을 붙이기보다는 다양한 피드백 내용을 수용하듯 관객과의 대화에 임했다. 낭독공연만을 위해 덜어낸 부분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는데, 원래는 대사 없이 배우의 모션만으로 끝나도록 설정됐다는 마지막 장면이 그런 예다. 실제 무대에 올라갔을때엔 배우들의 스킨십으로 처리할 예정인데, 이것을 지문으로 적어 낭독회에서 언어로만 전달하기엔 연출자의 의도와 다소 다르게 느껴질 가능성이 큰 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정주영 작가는 “관객에게 극을 처음 선보이는 자리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 작가의 의도가 관객에게 언어만으로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오늘 오간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완성해 내년 1월에 좋은 공연으로 선보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언어예술이 사람의 ‘목소리’라는 가장 단순하면서 힘이 센 도구를 만나 빚어내는 시너지에 하나둘, 중독되는 관객이 늘고 있다. 현란하게 시각을 자극하는 콘텐츠, 빨리 소비하고 빨리 잊히는 스낵컬처가 대중의 눈과 귀를 지배하는 때에,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사람의 음성에 집중해 ‘귀 기울이는’ 모습은 아날로그로의 회귀가 아닌, 단지 본질이 제 장점을 발휘하며 다채롭게 공존하는 풍경으로 다가오기에 의미가 있다.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김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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