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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서울문화재단의 낭독 프로그램 모두, 소리 내 읽고 있습니까
낭독은 음표 없는 노래다. 문학은 본디 말로 읊던 이야기를 글로 적으며 시작됐다. 문학과 노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물론 ‘이야기’를 심지로 삼는 다른 예술 장르 역시 마찬가지다. 시를 읊는 것뿐만 아니라, 조금 더 긴 글을 음성으로 나누는 각종 낭독회와 무대에 오르기 전 희곡을 담백하게 읽어내는 ‘낭독극’이 시민의 예술 체험에서 점점 자리를 넓히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의 여러 공간에서 진행된 낭독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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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이 정점에 달해간다. 가을과 책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얼마 전 발표된 노벨 문학상 소식은 우리의 발길을 서점으로 돌리게 만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10월에는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여기저기에서 펼쳐졌다. 서교예술실험센터를 비롯해 홍대 일대에서 진행된 와우북페스티벌(10월 2~4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책의 역사를 개괄하는 파주북소리(10월5~11일), 이탈리아를 주빈국으로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10월 7~11일)은 책이 주는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한 가지 더 두드러지는 특징은 ‘문학’이라는 장르를 파괴해 다른 영역과 컬래버레이션을 과감하게 시도한다는 것이다. 올해 서울문화재단이 선보인 문학의 외도 역시 ‘낭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낭독이 있는 문학 프로그램인 연희문학창작촌의 ‘연희목요낭독극장’을 비롯해 낭독이 있는 공연을 선보이는 서울연극센터의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 낭독이 있는 축제인 남산예술센터의 ‘남산희곡페스티벌’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여러 장르에 차려진 ‘낭독’이라는 반찬은 가을의 행사를 더 맛있게 만들었다.

목요일에 부는 낭독이 있는 문학
<연희목요낭독극장>

지난 8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진행된 연희목요낭독극장.지난 8월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진행된 연희목요낭독극장.

지난 2010년 첫선을 보인 이후 연희문학창작촌의 대표 낭독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연희목요낭독극장>. 문학에 연극, 무용, 음악 등 다른 예술 장르를 결합해 문학을 한층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문학을 통해 문인과 관객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이 프로그램은 목요일이라는 특정일에 도심의 숲속 마을에서 ‘느끼는’ 낭독극장을 보여준다. 올해는 연희문학창작촌이 계절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함으로써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5월에는 어린이 문학을 주제로 가족 문학행사가 개최됐다. 국내 동시 전문 잡지 <동시마중>과 월간 <어린이와 문학>이 함께 진행한 5월의 <연희목요낭독극장>은 송선미 시인이 연출을 맡았고, 이안과 정유경 시인이 공동으로 사회를 맡았다.
이어서 8월에는 ‘문학작품 속 여름의 장소와 기억으로 떠나보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1부 ‘시와 여름 이야기’와 2부 ‘여름과 여행 이야기’가 진행됐다. 첼리스트 김상호의 <백조>(생상스-동물의 사육제 중) 연주로 시작한 1부에서는 김소연, 신해욱, 박준 시인이 각자의 작품 중 ‘여름’이라는 주제를 품고 있는 시를 한 편씩 낭독했다. 2부에서는 여행기자 류진이 ‘내 마음이 머무는 오지들’로 여행 이야기의 문을 열고, 문인들과 ‘시인을 매혹시킨 여행들 & 여행, 놀면서 일하는 삶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작품으로만 접하던 시인의 여름나기를 계절에 맞게 생생하게 전달했다.

온라인의 원고가 낭독공연과 희곡집으로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

위) 지난 8월 열린 <남산희곡페스티벌>중 구혜미 작가의 <게으름뱅이의 천국> 낭독공연의 한 장면.		아래) 올해 상반기에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돼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낸 낭독 공연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위) 지난 8월 열린 <남산희곡페스티벌>중 구혜미 작가의 <게으름뱅이의 천국> 낭독공연의 한 장면.
아래) 올해 상반기에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돼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낸 낭독 공연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은 대학로와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서울연극센터에서 운영하는 연극 전문 웹진 <연극in>(webzine.e-stc.or.kr)의 화제 코너에서 출발했다. 이 코너의 이름은 ‘10분 희곡 릴레이’다. 말 그대로 10분짜리 희곡을 릴레이로 보여주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참여한 신진 작가의 희곡 작품을 오프라인 무대로 옮겨왔다. 웹진에 참여한 총 18편의 희곡 작품을 매주 1편씩 10분의 낭독 공연으로 선보였다. 올해는 서울연극센터가 희곡 전문 출판사인 자큰북스(대표 김해리)와 공동으로 기획해 여기에 참여한 18편의 희곡작품을 모은 동명의 희곡집도 발간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난 2월 25일(수)부터 6월 24일(수)까지 18주 동안 수요일마다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됐다. 단순한 낭독 공연에 그치지 않고, ‘작가·연출과의 대화’와 ‘관객이 직접 읽는 희곡’ 등 다양한 부대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참여자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올해 진행된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은 강소진의 <외박>을 비롯해 김세한의 <때수건으로 일어날 수 있는 짧은 극>, 신지원의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 조영주의 <힘줄>, 윤미희의 <상상해볼 뿐이지>, 이오진의 <개인의 책임>, 김승준의 <자리싸움>, 윤현지의 <Bye, June>, 양정현의 <어떤 날>, 최보윤의 <물고기들>, 김다은의 <대화의 방법>, 박다솔의 <벚꽃이 폈다 지는 사이>, 최준호의 <카페에서의 담론>, 황혜정의 <안개>, 김향희의 <거기 다 나와 있나요?>, 주지윤의 <밤>, 김보현의 <대통령이 오시네>, 원아영의 <정리> 등 18개 작품이 시리즈로 이어졌다. 특히 이들 신진 작가의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현업의 연출자가 참여해 힘을 보탰다. <광염소나타>(2012), <공이오데로 part.1>(2014)의 기매리(30·아해 프로젝트 상임연출자), <시계>(2014), <광인일기>(2014)의 장재원(27·연극 마피아), <옥상 위 카우보이>(2014)의 정현(32), <붉은달>(2014), <프라이센스>(2014)의 조성현 (28), <해맞이>(2015), <뼈의 노래>(2011)의 윤혜진(35) 등 5명이 함께했다.

희곡의 발견과 낭독으로 첫발을 내딛다
<남산희곡페스티벌>

<남산희곡페스티벌>에서 큰 인기를 끈 이강백 작가 ‘마스터 클래스’.<남산희곡페스티벌>에서 큰 인기를 끈 이강백 작가 ‘마스터 클래스’.

창작 희곡의 매력을 가장 먼저 음미할 수 있는 낭독 공연축제 <남산희곡페스티벌, 다섯 번째>가 지난 8월 24일(월)부터 28일(금)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진행됐다. 올해로 3년째 계속된 <남산희곡페스티벌>은 2009년 재개관 이후 국내 창작극의 메카로 우뚝 선 남산예술센터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자리이자, 낭독 공연이 가져오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금이야 극장에서 진행하는 낭독 공연이 일반화됐지만 재개관 당시만 해도 생소한 풍경이었다. 무대에서 대본을 읽으며 대중에게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 신선하면서도 생생한 희곡을 처음 만난다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번 페스티벌이 다섯 번째로 열린다는 의미를 되살려 <남산희곡페스티벌, 다섯 번째>로 명칭을 정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극작가 이강백의 ‘마스터 클래스-희곡 창작의 단계별 글쓰기’(8월 24일)로 시작해 구혜미 작가의 <게으름뱅이의 천국>8월 25일), 고정민 작가의 <초상, 화(畵)>(8월 26일), 김명화작가의 <봄>(8월 27일)을 잇따라 무대에 올렸다. 첫날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 이강백 작가는 1971년 등단 이후 정치, 사회적 억압을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남산희곡페스티벌, 네 번째>에서 ‘마스터 클래스-체험적 글쓰기 시작에서 완성까지’를 처음으로 선보여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바있다. 당시 이강백의 마스터 클래스를 참관하려는 신청이 한꺼번에 몰려 이 강의의 성공을 미리 점칠 정도이기도 했다. 올해는 그 두 번째 순서로 ‘희곡 창작의 단계별 글쓰기’ 라는 주제로, 소재 선정부터 탈고까지 작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운다. 특히 이 강의는 희곡을 쓰고자 하는 작가와 지망생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이어지는 3일간의 낭독공연 무대에는 상시 투고 시스템 선정 작품과 신인 작가의 수상작, 그리고 중견 작가의 작품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낭독 공연은 조명이나 음향등 무대장치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배우들이 실제 연극할 때처럼 대본을 읽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남산희곡페스티벌>은 기존 낭독 공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무대를 적극 활용한 입체 공연을 선보였으며, 희곡이 실제 연극 무대에 오를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점을 부각했다. 남산예술센터 상시 투고 시스템 ‘초고를 부탁해’를 통해 선정된 구혜미 작가의 <게으름뱅이의 천국>은 동명의 동화를 소재로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읽어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담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면서 이어져 서로를 비추는 구조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날카롭고 풍자적으로 그렸다. 지난 상반기 ‘초고를 부탁해’ 투고작 중 유일하게 2차 피드백 과정을 거친 이 작품의 연출은 남산예술센터와 처음 만나는 실험적인 시각의 젊은 연출가 적극이 맡았다. 고정민 작가의 <초상, 화(畵)>는 “대사에 담긴 연극성과 문학성이 단연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3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 제목은 가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장례식장에 모인 가족의 풍경을 담은 그림(畵)을 뜻한다. 가족과 회사가 한 죽음을 대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며,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수작이다. 마지막으로 중견 극작가 김명화는 3년 만의 신작 <봄>을 낭독 공연으로 선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의 총아인 영화제작 현장을 중심으로, 인간 군상과 그들의 욕망과 절망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초상, 화(畵)>가 장례식에서 손익을 따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봄>은 자살 현장을 마주한 등장인물들의 불안을 보여주며 뼈 있는 질문을 던진다. 2001년 <돐날>로 함께 돌풍을 일으킨 최용훈 연출가와 다시 한 번 손을 잡았다.
이번 축제에는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지난해 <남산희곡페스티벌, 네 번째>에서 낭독 공연으로 처음 공개된 장우재의 <햇빛샤워>가 지난 7월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정식으로 올랐다. 낭독 공연을 통해 미리 작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후 1년 남짓 수정과 보완 과정을 거쳐 본 공연으로 제작된 첫 번째 사례로 꼽힌다. 게다가 장우재 연출가는 <햇빛샤워>로 ‘제17회 김상열 연극상’ 수상자로 선정돼 그 의미를 더했다.문화+서울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사진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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