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판소리에 매료됐다고 들었어요.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방과 후 수업 시간에 사물놀이반에서 활동하면서 국악을 간접적으로 접했어요. 국악동요를 부를 때도 시김새1 )를 잘 살린다는 칭찬을 듣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대표로 지역 경연대회에 나갔죠. 그때 저보다 2살 많은 누나의 소리를 우연히 들었는데, 이렇게 슬프고 애절하면서 사람 마음에 와 닿는 소리가 있나 싶었어요. 그게 판소리라는 걸 알고 시작하게 됐죠. 제가 살던 강진에서 유일하게 판소리를 하던 백미경 선생님께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배우다가, 중학교 때부터 목포에 계신 전남 무형문화재 보유자 박방금(예명 박금희)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판소리를 배울 때 목청 트는 훈련을 많이 하잖아요. 특별한 훈련 방법이 있었나요?
중고생 시절에는 방학 때마다 20일간 ‘산 공부’를 갔어요. 산으로 합숙 훈련을 가는 거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침밥 먹기 전까지 합숙소에 못 들어오고 밖에서 연습하면서 목을 풀어야 해요. 오전 7시에 돌아와 아침 먹고, 좀 쉬었다 오전 9시부터 레슨을 시작해요. 정오에 레슨이 끝나면 점심 먹고 잠깐 쉬었다가 저녁밥 먹기 전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또 연습했죠. 이렇게 하면 2~3일 안에 목이 확 쉬는데, 그때 목을 낮게 하고 힘을 빼서 연습하면 며칠 지나 목이 풀려요. 그렇게 목이 쉬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면 목에 단단함이 만들어져요. 합숙 기간 동안 소리가 조금씩 성숙해지고 발전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전남예고에 진학해서는 아예 학원 근처에서 하숙하며 학업과 실기를 병행했다고요.
학교 선생님께서 실기 수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셨어요. 야간 자율학습이 오후 6시부터 9시까지였는데, 덕분에 실기실에 올라가 자율학습 시간이 끝날 때까지 실기를 준비했죠. 등교 시간이 오전 8시였는데 오전 6시에 등교해서 목을 푼다든지, 아니면 오전 7시에 전공실에 올라가 1시간 동안 연습하고 8시에 등교하는 일과를 반복했어요. 그만큼 치열하게 보냈던 것 같네요
2010년 중앙대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에 입학하면서 서울이라는 넓은 무대에서 자극을 받았을 텐데요. 대학 시절 오디션에도 활발히 도전했다면서요?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슬럼프가 왔어요. 수업 시간에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소리 스타일을 접하고, 또 단체로 공연을 관람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이만큼밖에 못 보고 살았구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죠. 그래서 더 학교 밖으로 나돌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한 선배가 국립창극단에서 심청을 주제로 한 공연에 객원 멤버 제안을 해주셔서, 그걸 시작으로 작은 역할부터 무대 경험을 했죠. 그러다 충무로 한국의집에서 가무악극 <몽유도원도> 오디션 공고를 냈기에 도전했는데, 거기에 덜컥 합격해서 대학교 1학년 말에 주인공으로 무대에 처음 섰어요. 이후로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60주년 기념공연 <춘향전>에서 이몽룡 역을 맡고, 국립창극단 <배비장전>에서 객원 오디션을 본 후 배비장 역으로 국립창극단 무대에 데뷔했어요. 당시 국립창극단 남상일 선생님과 더블캐스팅이었는데 큰 영광이었어요. 선생님을 보면서 많이 배웠죠.
대학 시절부터 이미 큰 무대의 주역으로 활동한 덕분인지, 졸업하기도 전인 4학년 때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발탁됐어요. 당시 입 단 단원 중 최연소였다고요
학교 밖으로 나돌면서 교수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아직 학교에서 배울 것들, 경험해야 할 것도 많은데 말도 없이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대학에서 연기, 화술, 무용까지 다양한 커리큘럼을 경험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당시 국가에서 지정한 3개 대회(동아국악콩쿠르,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온나라국악경연대회)에서 모두 1등을 하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었는데, 2학년 때부터 수상 경력을 쌓아서 4학년 때 군 문제도 해결됐어요. 그러고 나서 2012년 12월 국립창극단 단원 공모 오디션에 합격했고 2013년 1월 7일 입단했죠. 어린 시절 그리던 꿈의 무대에 설 수 있다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어요. 입단 후 첫 공연인 <서편제>에서 어린 동호 역할을 맡았는데 그 역할도 크게 기억에 남네요.
올해 3월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 공연에서 <수궁가>로 첫 완창을 마쳤어요. ‘미산제’라는 부연설명이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
‘미산’은 박초월 선생님의 호예요. 그래서 ‘미산제 박초월 바디’라고 표현을 해요. 미산 선생님으로부터 제자들에게 전승된 소리라는 뜻이에요.
완창은 혼자서 오랜 시간 무대를 이끌어가야 하잖아요. 여러 동료들과 함께하는 창극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압박감이 있었을 텐 데 어땠나요?
이번 완창에는 3시간 정도 걸렸어요. 어렸을 때 박방금 선생님께 소리를 배우면서 <수궁가>로 무형문화재를 이수했기 때문에, 첫 완창을 한다면 꼭 <수궁가>로 하고 싶었어요. 무대에 오르기까지 서울과 목포를 오가며 6개월간 준비했어요. 병든 용왕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토끼가 수궁에서 육지로 나오는 과정은 어땠을까 상상하며 연습했죠. 창극단에서 여러 선생님이 표현하는 발림이나 몸짓이 주는 시각적인 느낌을 보고 배웠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아니리를 재미나게 살리는 방법도 고민을 많이 했고요.
1) ‘음을 꾸며내는 모양새’라는 뜻으로 화려함이나 멋을 더하기 위해 음을 꾸며내는 모양새를 뜻한다.
1 2017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 역을 맡았다.
2 지난 3월 국립극장에서 열린 <완창판소리> 공연에서 <수궁가>로 첫 완창을 마쳤다.
3 2017 국립창극단 <산불>에서 규복 역을 맡았다
판소리의 매력을 대중에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국내 유수의 록페스티벌과 재즈페스티벌, 예능 프로그램까지 종 횡무진하며 ‘국악계 아이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어요.
어렸을 때 친구들이 항상 제게 이렇게 물었어요. “너는 왜 판소리 같은 걸 해? 그게 뭐가 재미있어?” 이 좋은 소리를 친구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안타까웠고, 소외감도 컸지요. 앞으로 판소리를 계속한다면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여러 공연이나 협업에 도전하게 됐죠. 음악 예능 프로그 램에도 나갔고요.
소리꾼 김준수의 존재감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계기는, 퓨전 밴드 두번째달과의 협업이었나요?
예전에 두번째달 멤버 중 한 분의 대타로 록페스티벌 ‘그린플러그드 서울’에 참여해서 2곡을 부른 적이 있어요. 그러고 나서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2015년에 다시 연락이 왔어요. <판소리 춘향가> 음반을 기획 중인데 같이해보면 어떻겠느냐고요. <춘향가>에 나오는 눈대목, 이른바 하이라이트 대목들로 기획한 음반인데 저는 <적성가>부터 <어사출두>까지 14개 트랙 중 절반 정도를 불렀어요. 음반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음악 예능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했는데, 그 프로그램을 계기로 <불후의 명곡>을 비롯한 다양한 방송에 출연을 제의받았고 판소리를 알릴 수 있었죠.
대중을 대상으로 한 퓨전 음악 음반에 들어가는 판소리는 어떻게 다른가요?
두번째달과 함께했던 <춘향가>도 똑같이 전통 판소리예요. 다만 4분짜리 한 곡에 <춘향가>의 <이별가>가 들어간다면, <이별가> 중 눈대목을 골라 4분이란 시간에 압축시켜 곡을 만들 뿐이죠. 또 다른 점은 우리 소리의 시김새가 들어가긴 하지만 완급 조절이 있다는 거예요. 편안한 가요 느낌을 살린 곡도 있고, 전통 판소리처럼 힘 있게 확 다가오는 곡도 있죠. 또 각 트랙마다 왈츠, 재즈 등 테마가 있어서 한 음반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접하는 재미도 있어요. 노래는 전통 판소리지만, 같이 어우러지는 음악 스타일이나 느낌은 이질감이 들지 않죠.
두번째달과의 협업을 계기로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도 참여해 6곡의 창작 판소리를 선보였는데요.
2017년 7월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두번째달과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평창 동계올림픽 관계자가 공연을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참여하기로 확정된 시기는 작년 11월쯤이었어요. <수궁가> 완창을 준비하던 기간이고 개인 일정도 있어 힘들었지만, 폐막식 공연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비록 <심청가>나 <수궁가> 같은 전통 판소리가 아닌 창작 판소리였지만 우리 소리를 세계인에게 들려줄 수 있는 자리잖아요. 제겐 가문의 영광이었죠.
<수궁가> 완창 이후 국악인으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올해 <수궁가>로 완창을 시작했으니 조만간 나머지 네 바탕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그 외에 올해 말쯤 클래식 장르, 성악가 분들과의 협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디지털 싱글 앨범 발매도 생각하고 있고요. 언젠가 전통 판소리 음반도 내보고 싶습니다. 올해 계획을 다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라도 꼭 이루고 싶어서 다양한 일을 기획하고 있어요. 싱글 앨범을 낸다면 전통 판소리의 눈대목을 넣는다든지, 저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이를테면 한두 곡 정도는 직접 작사에 참여한다든가….
그럼 개인적으로 작사 연습도 하고 있나요?
글쓰기 솜씨가 좋아서 작사를 한다기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고민하고 있어요. 직접 글을 써 곡을 만들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싶고, 그런 곡들을 계기로 나중에 다양한 관객을 만날 때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을 넓히고 싶어요. 평소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들이 있거든요. 이를테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판소리에 대한 생각들이요. 억지로 생각하려면 잘 안 되니까, 문득문득 생각나는 내용을 휴대폰 메모장에 써보기도 하고 공책에 끄적거리면서 하나씩 생각을 맞춰가고 있어요. 최대한 제 감수성을 끌어 낼 수 있도록 마음을 정리하면서요.
판소리를 배울 때 부단한 연습을 하듯 글쓰기에도 꾸준한 훈련이 필요할 텐데요.
일단 좋은 글귀나 명언을 많이 읽어요. ‘이 글은 정말 따오고 싶다’ 하는 게 있으면 필사를 해보기도 하고요. 주변에서도 글은 많이 써보고 많이 읽어야 는다고 조언하더라고요. 창극단에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인생이 담긴 자서전을 즐겨 읽게 돼요. 여러 캐릭터에 대한 상상력을 일깨우는 소설도 많이 읽고요. 공연과 관련된 책도 자주 읽는데 이를테면 <코카서스의 백묵원>이라는 작품을 할 때는 브레히트의 다른 책도 함께 찾아보는 식이죠. 자기계발서를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마음이 힘들 때 자기계발서를 보면서 위안을 받아요. 혜민 스님 책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고요. 마음이 울적하고 지치거나 힘들 때, 가끔 그런 책 속 글귀를 보면 마인드컨트롤이 되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5월에 열릴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두번째달과 <춘향가>로 다시 호흡을 맞춘다고요.
작년에도 참여했는데 올해에도 다시 하게 됐어요. 평소 만나기 힘든 관객들과 함께하는 공연이라 소중하죠. 우리 소리를 들려주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관객들과 어우러지면서 무대에서 함께 놀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판소리도 이렇게 재미있고 신날 수 있구나’ 하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열리는 국립창극단 창극 <심청가>도 비슷한 시기에 준비하느라 바쁘겠어요. 공연에 대한 소개도 간단히 해주세요.
이번 공연은 전통 판소리, 우리 소리꾼들의 소리를 제대로 보여주는 무대가 될 거예요. <심청가>의 오리지널 사설을 그대로 보여줄 거거든요. 완창 공연은 보통 5시간 정도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약 2시간 동안 <심청가>의 알짜배기 대목만 모아 들려줄 예정이고요. 특히 소리꾼들이 갖고 다니는 부채를 활용한 군무가 장관입니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군무, 소리꾼의 너름새에 어우러진 우리 소리의 힘에도 관객들이 주목하면 좋겠어요.
- 글 고경원 자유기고가
- 사진 오계옥 사진 제공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