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읽다
책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와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때로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은 관점이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 김혜리 지음 | 어크로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는 《씨네21》의 김혜리 기자가 2010년부터 연재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그중 저자가 2014년부터 2017년 1월까지 관람한 영화가 국적과 상업-독립의 경계를 막론하고 월별로 재편됐다.
‘김혜리의 영화일기’가 아니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가 제목인 까닭은 영화가 제1저자이기 때문이라고 김혜리 기자는 밝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화가 보여준 것을 적어두는 속기사를 자처한다. 역할에 충실하게 영화를 있는 그대로 옮기면서도 텍스트의 함의와 저자만의 사유를 따뜻하게 덧붙였다.
책의 제목은 ‘1월/내일을 위한 시간’ 챕터에 실린 ‘나를 바라보는 당신을 나도 봤다’와 연결된다. 영화 <캐롤>의 두 주인공 캐롤과 테레즈의 관계 역학을 시점과 시야, 시선의 움직임을 통해 포착했다.
<캐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수미상관을 이룬다. 동일한 장면이지만 관객의 감상은 그사이 달라지는데, 저자는 이 역시 영화 전반에 걸쳐 설득력 있게 바뀌어온 시선과 시점의 영향이라고 해석한다. “때로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은 관점이다.” 캐롤이 들어서는 순간 테레즈의 삶엔 관점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영화 관람 후 이 책을 읽는 것이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을 듯하다.
모래알처럼 작지만, 볕을 곁에 두어 반짝이는 우리 삶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 최재훈 지음 | 걷는사람
‘다양성 영화’는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시네마워크 사업계획안’ 에서 사용한 이래로 독립영화·예술영화·다큐멘터리영화 등을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장르와 소재의 제한이 비교적 적고 소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를 우리는 다양성 영화라 한다. 2021년 출간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는 한국의 다양성 영화를, 그리고 그 너머의 관객과 독자의 삶을 다독이는 책이다.
저자는 ‘성장’ ‘사랑’ ‘꿈’ 등의 굵직한 주제 아래 24편의 다양성 영화를 소개한다. 책의 제목은 제1장 ‘지독한 성장’의 서문에서 다시 한번 언급된다. “어른들은 모두 겪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어린 날의 시간은 왜 그렇게 날을 세워 날카로웠는지”로 시작하는 글을 통해 저자는 영화 등장인물에게, 그리고 관객이자 독자에게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동시에 모두가 겪기에 더 쉽게 넘기는 타인의 성장통을 방관하는 ‘어른’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반문한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책은 제목처럼 투정과 비난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내 ‘볕에 곁을 둔 삶’도 조명하며 아픈 시기를 살아낼 연대의 희망도 보여준다. ‘볕에 곁을 둔 삐뚤빼뚤한 날들’이란 제목이 붙은 글에서 저자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주인공 찬실이가 왜 복이 많다고 하는지 알려준다. 일감은 타의로 끊겼고, 집도 돈도 애인도 없는 찬실이지만 그의 방에는 늘 따뜻하고 풍요로운 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설렘을 느끼게 해주는 영, 친한 배우 소피, 집주인 할머니, 심지어 찬실이 곁을 떠도는 장국영 귀신까지 찬실이에겐 뜨겁지 않은 볕과 같은 사람들이다. 과하지 않은 애정을 바탕으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되찾아 준다.
마지막 장까지 읽고 책을 덮으면 ‘특별하지 않은 나를 닮은 사람들’을 한아름 알게 된다. 별볼일 없는 주인공들의 인생을 잠깐 엿본 것만으로 이 세상에 아프게 성장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겐 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글 연재인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 | 사진 제공 어크로스, 걷는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