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악에 대한 질문 연극<라스트 세션>과 <리차드3세>
신은 있는가 연극<라스트 세션> | 1. 7~3. 6 | 대학로 TOM1관
연극 <라스트 세션>은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이자 무신론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서재에 대표적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가 찾아와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2인극이다. 인간이 초래한 전쟁 같은 재앙과 신·종교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통해 관객에게 인생에 대한 묵직한 의제를 던진다.
우선 주제 전환이 빨라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속도감이 있다. ‘신은 있는가’라는 큰 질문을 품고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보편적 도덕률은 있는가’ ‘신이 있다면 선한 자들의 고통과 불행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주제를 물 흐르듯 꺼내 든다. 당장 답을 내기보다는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 작품의 강점은 의외로 유머다. 오영수 스스로도 프로이트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중점 요소로 유머를 꼽았다. 2인극의 지루함이나 철학적 주제로 인한 무거움을 없애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고통이 신의 뜻이라면) 내 구강암은 하나님의 목소리겠구먼. 오늘 내가 ‘믿습니다’ 하고 외치면 아주 기뻐하면서 사라지겠어.” 무신론자 프로이트의 말에 객석의 긴장감이 풀린다. 비아냥 같으면서도 유신론자인 상대방의 의중을 찌르는 통찰력이 느껴진다. 이 문장이 웃음만 남기고 흩어지지 않게 한 것은 물론 배우의 힘이다.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오영수는 물론이고,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무대에 선 신구의 연기가 관객을 몰입으로 이끈다.더블 캐스팅인 두 배우의 상대 역(루이스)은 이상윤과 전박찬이 맡았다. 이상윤은 초연에 이어 루이스로 다시 무대에 올라 안정적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연극계에서 유명한 전박찬 역시 단단하고 패기 넘치는 루이스를 연기하고 있다.
악은 무엇인가 연극 <리차드3세> | 1. 11~2. 13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극 <리차드3세>는 초연 당시보다 농익은 리차드를 보여주는 배우 황정민의 매력이 부각된 작품이다.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가 합심해 셰익스피어의 <리차드3세>를 각색한 이 작품은 4년 전 초연 당시에도 98% 예매율을 보이면서 호평을 받았다. 황정민의 10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는 다시 <리차드3세> 무대에 오른 이유를 무엇보다 “작품의 매력이 커서”라고 밝혔다. 영화나 TV 드라마 대사에서는 찾기 어려운 시적 표현이 많은 연극만의 특성이 극대화된 고전극의 매력을 말한다. 연기하는 배우는 물론 관객 입장에서도 대사를 곱씹을수록 우리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극은 꼽추로 태어난 데 콤플렉스를 가진 리차드3세의 인생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한다. 온갖 권모술수로 왕좌를 거머쥔 이 악인을 비난만 하고 돌아설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악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가렛 왕비의 대사를 통해 뒤틀린 몸만큼 꼬여버린 내면을 갖게 된 리차드가, 우리의 책임은 아닐까 물음표를 던진다. 개인의 결핍이 악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외면하고 모른 체한 시간은 없느냐고. “그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가, 그대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가.” 마가렛의 대사는 우리를 향한 물음이다.
배우 13명 전원이 원 캐스트로 진행돼 이들의 정교한 합을 보는 재미도 크다. 극 중 모든 캐릭터가 한 무대에서 각기 다른 자신의 욕망과 심정을 분출하는 에드워드4세 사망 장면은 특히 이런 점이 두드러졌다. 능청스럽고 익살스럽기까지 한 황정민의 연기는 긴장감이 돌다가도 이내 풀어지게 한다. 그가 왕으로 추대받는 장면은 인물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것이 분명한데도 콩트와 같았다. “유머를 잘 써서 관객과 (리차드가) 친밀감이 커지면 극의 마지막이 빛날 거라고 생각했다”는 연출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100분간 들끓는 권력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질주하는 악인에 빠져 있던 관객은 ‘그를 가엽게 여겨도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마음속에 안고, 우리 삶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글진달래 《한국일보》 기자 | 사진 제공 파크컴퍼니, 샘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