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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6월호

청계천 베를린 장벽 낙서 사건좋은 그라피티, 나쁜 그라피티
그라피티를 둘러싼 초기의 논쟁이 그것이 예술이냐 예술이 아니냐라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라피티가 좋은 예술이냐 나쁜 예술이냐를 논하는 단계에 와 있다. 쉽고 강렬한 메시지 전달,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예술가의 자유로운 표현 행위, 엘리트주의를 벗어난 대중성과 교육성 등이 그라피티의 매력으로 꼽힌다. 한때 사회의 빈부 격차를 상징하던 그라피티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경제적 효과도 있어, SNS 시대의 도시재생 사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반면에 그라피티를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앞세운 반달리즘으로 보는 부정적 시각도 팽팽하게 존재한다.

현대적 예술로서 그라피티는 197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사에서는 장 미셸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 같은 작가들이 그라피티의 선구자로서 호명된다. 하지만 오늘날 미술관의 중요한 자리에 전시되는 그들의 ‘낙서’는 한때 사회적 위법 행위로 간주되었다. (유튜브에서 지하철 낙서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는 키스 해링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시대 아트신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스타 작가 카우스(KAWS)도 버스 정류장, 공중전화 부스, 광고판 등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라피티 작가인 뱅크시의 작업은 매번 국제 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를 모은다.

예술적 표현과 공용물 훼손 행위 사이

한국에서 그라피티의 반달리즘적 속성을 잘 드러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명 ‘베를린 장벽 낙서 사건’. 2018년 초여름, 서울 중구 청계천2가에 있는 베를린 장벽에 정태용 씨(활동명 HIDEYES)가 그라피티 작업을 했고, 이를 자신의 SNS에 올린 것. 이 베를린 장벽은 2005년 독일 베를린시가 서울시에 기증한 것으로, “독일 분단의 평화로운 극복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인 장벽 3개는 베를린시를 대표하는 곰상, 독일 전통식 공원 의자와 조명을 갖춘 30여 평 면적의 베를린광장에 함께 놓였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은 정태용 씨의 SNS 계정에는 당시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 작업을 하면서 촬영한 기념사진이 남아 있었다. 그라피티를 마치고 난 후 베를린 장벽이 있는 베를린광장의 야간 풍경, 장벽에 “날 비추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라고 적는 그의 뒷모습, 그 반대편 벽면에 파랑, 빨강, 노랑, 은색 등의 유성 래커 스프레이로 색칠을 하고 태극기 4괘를 활용한 패턴을 그리는 모습, 마지막으로 작업을 마치고 베를린 장벽 앞에 앉아 있는 모습까지. 그는 네 장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었다. “Save Our Planet (지구 이모티콘) KOREA IS ONLY DIVIDED COUNTRY IN THE WORLD.”
안타깝게도, 그의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의 이상인 의미를 담아 그 뜻을 내포”했다는 행위에 공감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해당 게시물에 달린 댓글은 그를 향한 대중의 분노를 잘 드러낸다. 요점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베를린 장벽을 예술 같지도 않은 예술로 무책임하게 훼손했다”는 것이다. 대중의 판단으로 그의 예술적 표현은 문화재 파괴 행위와 같았다. 댓글에는 갖은 욕설과 함께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난도 여럿 보였다. 1년여가 지나, 법원은 그에게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의 결과를 판가름한 주요 쟁점도 대중의 댓글에 이미 내재된 것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공용물인가, 그의 행위는 베를린 장벽의 효용을 해한 것인가, 작가의 의도와 그라피티의 예술적 가치는 사회적 위법성에 우선하는가…. 법원의 판결은 이랬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베를린 장벽은 공용물이며, 이 장벽의 양쪽 벽면은 서독과 동독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원형 자체로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따라서 그가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 원형의 완전한 복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베를린 장벽을 손상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정태용이 아닌 뱅크시였다면…

정태용 씨의 작업이 얼마나 매력적이며 예술적으로 훌륭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각자의 몫일 테다. 다만, 그의 행위와 결과물인 그라피티가 베를린 장벽을 둘러싼 다양한 정보를 환기 및 공유하고, 베를린 장벽의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관한 대중적 여론을 형성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그라피티 예술이 지향하는 장소의 역설, 사회적 소통, 작품 소유를 둘러싼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베를린광장과 베를린 장벽의 존재와 뒷이야기를 알고 있었을까. 우리는 이 장벽을 앞으로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혹은 활용할 수 있을까. 헛된 상상이지만, 문득 서울의 베를린 장벽에 뱅크시가 그라피티 작업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 뱅크시에게도 법원에서 똑같은 판결을 내렸을까 아니면 그의 작업이 그려진 다른 도시처럼 그 낙서를 보호하려는 펜스를 장벽에 둘러쳤을까.

1, 2 전면(서독 측) 훼손 전과 후. (서울시 제공)

글 김재석_<아트인컬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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