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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혹은 대담

6월호

제40회 서울연극제 학술제&토크콘서트 불혹의 서울연극제를 돌아보다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로 시작되어 1987년부터 명칭이 변경된 ‘서울연극제’는 40년의 역사 속에서 제도와 운영 방식이 수차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제로 자리매김해왔다. 2016년부터는 임기 2년의 예술감독제를 도입하고 2017년에는 창작극 외에 재연작과 번역극을 포함하며 초청작과 경연작을 분리하는 변화가 있었다. 2019년 제40회 서울연극제는 남명렬 배우를 2대 예술감독으로 해 서울연극협회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등의 후원으로 4월 27일부터 6월 2일까지 개최된다. 공식선정작 공연과 함께 서울연극제의 과거를 짚어보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학술제와 토크콘서트가 지난 5월 18일 열렸다. 서울연극제의 40년 역사를 돌아보며 그간의 성과를 점검하고 서울연극제가 직면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을 자유롭게 나눈 자리였다.

일시
2019년 5월 18일(토) 오후 2시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
주최
서울연극협회
주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학술제
사회
우수진 연극평론가
발제
김민조 연극평론가
배선애 연극평론가,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회장
백승무 연극평론가
토크콘서트
사회
마두영 배우 겸 연출가
발표
남명렬 서울연극제 예술감독, 배우

우수진

(연극평론가)

김민조

(연극평론가)

배선애

(연극평론가, 공연과
이론을위한모임 회장)

백승무

(연극평론가)

남명렬

(서울연극제 예술감독,
배우)

발제 1 ‘서울연극제의 약사(略史) - 운영 제도의 변화를 중심으로’
김민조 (연극평론가)

서울연극제의 역사는 대한민국연극제로 불렸던 1977~1986년을 1기, 서울연극제로 개칭한 다음 공연예술제로 통합되기까지의 1987~2000년을 2기, 순수 연극축제로 부활한 2004년부터 현재까지를 3기로 볼 수 있다. 1977년 문예진흥원이 주관하는 창작극 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대한민국연극제는 서울의 주요 극단들이 대거 참여해 경연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축제의 형태와 운영 방식에 본격적인 비판이 가해진 것은 3회(1979)이다. 중요한 논점은 경연 방식이 축제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4회(1980)부터는 축제운영위원회가 총책임을 지고 10개 극단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으나 경연이냐 축제냐, 자유경쟁이냐 기회균등이냐의 문제는 이후에도 반복 등장한다. 6회(1982)는 문예진흥원과 한국연극협회의 공동 주최로 열렸고 7회(1983)는 한국연극협회가 실질적으로 운영을 맡았다. 1983년에는 지방극단들의 경연 축제인 전국연극제가 처음 개최되어 대상작이 대한민국연극제에 초청되는 방식으로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대한민국연극제는 나중에 서울연극제로 개칭되고 전국연극제가 대한민국연극제의 이름을 가져갔다.
11회(1987)에 이르러 관 주도형에서 민간 주도형으로 전환하며 한국연극협회가 단독 주최하고 서울연극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2회(1988)는 올림픽을 이유로 다시 문예진흥원과 공동 주최하며 국제연극제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상 제도를 없애고 공연 장소도 다변화했다. 1991년 15회에서는 자유참가 부문을 신설해 범 연극계가 참여하는 축제로 확대하고자 했다. 이후 서울연극제 참가 부문은 희곡 이외에 실연 심의의 비중이 늘어나고, 재공연, 각색, 번역극으로 문호를 개방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제2기에 이르러 연극 생태계 전체의 수요를 바라보는 축제로 확장되어간 것이다. 22회(1998)와 23회(1999)에서는 경연을 없애고 다양한 부대행사를 마련해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진정한 축제상에 근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제2기에도 운영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축제의 성격이나 운영이 바뀌는 것과 상설 사무국과 상근 운영위원의 부재는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는 최초로 축제 사무국을 개설하는 23회에 가서야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을 명목으로 서울연극제는 2001년 서울무용제와 통합, 2003년까지 ‘서울공연예술제’로 치러진다.
서울연극제가 순수 연극축전으로 부활한 것은 2004년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운영 주체가 서울연극협회로 순차적으로 이양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생산적인 마찰은 서울연극제의 원만한 새 출발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2004년 부활한 서울연극제는 공식초청작과 자유참가작 부문 이외에 기획초청 부문을 확대했다. 2009년 30주년 기념기획전은 대표작 재상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연극제들과 국공립 제작극장들이 부상하면서 서울연극제의 입지는 다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극계 전체의 지형 변화 속에서 서울연극제의 모호한 정체성에 대한 지적은 지속되었다. ‘서울’이라는 지역성과의 결합 부족, 초연작 우대와 우수 재연작 우대 사이에서의 갈팡질팡, 참가작을 몇 개의 카테고리에 기계적으로 배분하는 경향 등이 제3기에 가해진 지적들이다. 서울연극제는 확실히 2010년대 이후 그 위상이 변했다. 오히려 국가를 대표하는 연극제로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은 내적 혁신의 계기로 작용했다. 2010년대 이후 젊어지고 가벼워진 서울연극제는 신진 연극인들이 기성 연극계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서울연극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2014년 말 아르코예술극장 대관 탈락 사태이다. 이 사태가 2016년에 이르러 연극계 블랙리스트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극 검열의 문제로 비화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논점은 이 사태로 인해 축제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점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학로X포럼’이라는 새로운 공론장이 등장했고, 서울연극제의 문제를 주관하는 협회의 소관 아래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형성되었다. 공공성의 측면에 주목하면서 축제 운영 방식에도 새로운 문제 제기가 있었다. 공식참가작 부문 지원 자격을 서울연극협회 회원으로 한정하는 단서조항에 어폐가 생긴 것이다. 공공성과 대표성은 서울연극제의 역사를 반추해볼 때 핵심적인 키워드이며, 이는 과거에 남겨놓고 온 문제가 아니라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문제로 보인다.

발제 2 서울연극제의 영향 ‘서울연극제 40년, 불혹(不惑)의 성과’
배선애 (연극평론가)

서울연극제의 ‘창작극’과 ‘경연’이라는 원칙은 연극제를 지속시키고 다른 연극제와 변별되는 중요한 원칙이었다. 대한민국연극제(1~10회) 때의 참가작들을 보면 희곡작가들에게는 자신의 필력을 펼쳐낼 수 있는 장이 마련된 셈이었다. 1986년 제10회 참가작 목록에 아시아의 두 작품이 포함되면서 연극제는 조금씩 다른 모습을 취하게 된다. ‘서울연극제’로 명칭을 바꾼 1987년에는 프랑스 작품이 참가했다. 1988년에는 ‘서울국제연극제’라는 명칭하에 세계 연극이 총망라되어 참가했으며 국내 참가작에도 번역극과 재공연 작품이 이름을 올리면서 ‘창작 초연작’이라는 조건이 대거 변모된 양상을 보인다.
국제화와 축제의 흐름을 타고 ‘경연’도 약화되었다. 제1회에는 단체상만 시상했다가 2회부터 희곡상과 연출상으로 나눠 개인상을 시상했고, 그 후로 연기상, 스태프상까지 분야가 확대되었다. 1988년에는 경연제가 없어져 다양한 장르와 국적의 작품이 공연되는 양상을 보였다. 비경연은 1999년과 2000년 다시 적용되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때도 유지되다가 다시 서울연극제가 되면서 현재까지 ‘경연’ 원칙이 지속되고 있다. 경연은 창작 의지를 응원하고 고된 노력을 격려한다는 측면에서 유효한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초연의 창작극만 대상으로 할 것인가, 재공연도 허락할 것인가, 번역극도 포함할 것인가 등등 서울연극제는 오랜 시간만큼 운영에 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졌고 참가 작품에 대한 기준이 변주되어왔다. 2016년부터 예술감독제를 도입한 것 또한 서울연극제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효과적인 운영을 꾀하려는 것으로,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한 질풍노도의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연극제 각 해의 대상(작품상)과 희곡상, 연출상 수상자 목록에서 드러나는 것은 작가의 등장과 성장이다.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것이 극작가 부분이다. 기성 작가의 활발한 활동은 물론이고 신인 작가의 역량을 선보일 수 있는 자리였기에 다양한 세대와 스타일의 작가들이 적극 참여했다. 당대의 대표성을 가지는 동시에 작가 활동의 대표성을 지닌 작품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창작극의 산실이라는 서울연극제의 목적이 지난한 노력과 시간을 통해 견지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연극제 참가작의 범주가 넓어진 것은 서울연극제 이외에도 완성도 높은 희곡을 제공할 곳이 늘어난 환경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성과는 연출가 부분이다. 서울연극제는 흥행 부담을 덜어 내면서 연출가가 충분히 자신의 색을 입혀가며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그들의 역량을 선보이는 성과를 냈다. 우리나라 연극사를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연출가들이 서울연극제에서 기량을 선보였다는 것은 연출가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 성과는 우수한 레퍼토리 발굴이다. 대상에 이름을 올린 작품을 보면 지금도 공연되는 작품들이 허다하다. 서울연극제는 레퍼토리 발굴에 기여한 바가 크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연극계가 풍성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연극인들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이다. 기성 작가와 연출가들은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때 적극적인 활동을 했고, 그 시간이 지나면서 간헐적으로 연극제에 참가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신진 연극인들은 발랄함과 신선한 해석으로 연극계의 풍향계를 바꿔놓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그 시간들이 축적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통해 개성 있는 연극인으로 역할하게 되었다. 다양한 세대의 연극인들이 서울연극제 참가작 명단에 함께 있을 때 기대가 되는 것은 우리 연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제 3 서울연극제의 발전 방안 ‘서울연극제, 다시/역시 문제는 작품성이다’
백승무 (연극평론가)

서울연극제는 40년 연배답게 많은 논의가 진행되었다. 경연 vs 축제, 대표성, 협회 vs 사무국, 작품 선정/심사 결과, 규모, 다양성, 철학/방향성/정체성 등이 연극제의 전반과 본질을 꿰뚫는 사안들이다. 그중 선정/심사와 정체성 문제는 뼈아프다. 철학/정체성은 구호만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다. 의도가 감지되는 심사자 지정이나 ‘안배’, ‘고려’란 이름의 암묵적 할당제도 원칙적으로 자제해야 한다. 엄격성과 객관성이 전제되었을 때, 연극제의 철학/정체성은 자연스레 규명된다. 연극제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또 다른 조건은 관객들의 관극 경험이다. 예술에 관한 한 최고의 철학은 ‘좋은 공연과의 건강한 만남’이다. 예술가와 관객의 밀도 높은 만남을 주선하는 것 외에 연극제가 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내실을 갖춘 공연으로 실속을 차릴 때이다. 본선작을 정하는 자체가 연극제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 선정과 심사의 문제가 발생한다. 논의에 앞선 선결과제는 예술감독이다. 3년째 예술감독 체제가 유지되고 있지만, 2년이라는 임기는 너무 짧다. ‘예술감독’ 수준의 안목과 행정 수행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4년은 걸린다. 최소 10년은 해야 자신의 색깔과 비전을 선보일 수 있다. 임기를 10년 이상으로 못 박고 해임 사유를 규정에 명시해야 한다. 종신제라면 금상첨화이다. 흔히 종신제라면 독재/독단, 횡포/전횡을 떠올리지만 이는 기우다. 권력 독점의 위험이 있을지언정 2년제의 폐해보다 클 리 없다. 예술감독 종신제란 연극제의 독립을 의미한다. 조직뿐만 아니라 재정도 장기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별도의 종신제 이사회도 필수다. 서울연극제는 주기적으로 교체되는 협회 집행부의 불안정성에 더 이상 의존해선 안 된다. 가장 큰 목적은 일관성과 지속성 확보이다. 심사 제도는 예술감독 종신제를 전제로 논의해야 한다. 외부 전문가의 권위와 안목에 기대어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채택되었지만 취지와는 달리 신통치 않았다. 심사단의 ‘권위와 안목’에 승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사단도 심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연극제가 최고의 권위를 확보하려면 최고의 심사평이 나와야 한다. 짧은 전문으로 수상작을 통보하는 요약형 고시문은 윽박과 강요로 오인된다. 이의 제기에 대한 대응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종신 예술감독이 이 과정을 주도해야 한다.
심사자의 중요 덕목은 자기 객관화와 조율 능력, 그리고 책임성이다. 그 기준은 전체 판도와 흐름을 읽는 예술감독이 되어야 한다.
상기 논쟁들은 다시 작품성으로 수렴된다. 최근 들어 매진된 공연이 꽤 눈에 띈다. 재연과 번역극의 수용이 으뜸 원인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공연 하나 만들면 2~3년 써먹는 건 예사고 10년 넘은 공연도 흔하다. 최근 몇 년간 작품성 논란이 고질병처럼 따라붙었다. 수정과 숙성 과정을 거친 재연, 검증 절차를 밟은 번역극은 작품성을 보증한다. 서울연극제는 창작극 자충수에 갇혀 반복된 비판을 벗어나지 못했다. 평단은 연극제에 대한 과잉비판을 통해 한국연극의 실재를 회피했고, 연극제는 ‘보스’를 보호하기 위해 대신 칼을 맞았다. 이런 무의식적 욕망의 담합구조가 깨진 것은 빗장이 풀리면서다. 2017년부터 재연과 번역극에 빗장을 푼 것은 지당한 결정이었다. 연극제는 한국연극 자체가 되었다. 큰 책임감과 그에 걸맞은 배포와 뚝심이 필요하다. 평단도 연극제를 비판하기 전에, 한국연극을 먼저 사유해야 한다. 재연과 번역극의 합류로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서울연극제의 ‘급’은 달라졌는가. 빗장 풀기 결정은 수세에 몰린 연극제가 쥐어짜낸 응급 편법이 아니라, 한국연극의 중심에 서겠다는 욕망의 징후이다. 40년 장기 플랜의 방향은 ‘한국연극의 수준 향상 → 작품성 높은 공연의 유입 → 좋은 공연과 관객의 접촉면 확대 → 권위와 책임성을 갖춘 연극제의 선순환’으로 명확해진다. 장기적으로 ‘서울’이라는 빗장도 풀어야 한다.
연극제에서 흥행한 작품도 단독 제작으로 올리면 관객이 들지 않는다. 레퍼토리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공연의 때와 장소를 예측할 수 있고, 주기적으로 공연이 올라간다는 약속이 있다면 객석이 채워진다. 연극제에서 상연 기간을 점차 늘리거나 혹은 매일 공연을 교체하면서 일시적으로 레퍼토리 시스템을 실험해볼 수 있다. 레퍼토리 시스템 없이 한국연극의 부흥은 없다. 좋은 공연은 필승한다는 공식을 연극제가 증명해야 한다. 제작지원금을 대관료로 돌리고, 매표수익금은 극단이 가져간다. 연극제의 성과를 독점하지 말고 예술가와 관객에게 돌려주는 묘안을 구상해야 한다. 물론 머리띠는 종신 예술감독의 몫이다.

좋은 작품을 담는 그릇

발제 후에는 질의응답과 함께 서울연극제의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우수진 평론가는 “서울연극제 출품작의 면면을 보니 화려하다. 작가, 연출가, 배우 등 연극인들의 산실이자 활동의 장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질문은 다소 논쟁적인 발제를 한 백승무 평론가에게 집중되었다. ‘종신 예술감독제’에 대해 플로어의 김철리 연출은 과장해서 표현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백승무 평론가는 “목표는 종신이 맞다. 일단 지금의 2년제는 문제가 있다. 장기적으로 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고 교체하면 된다. 해임 사유를 명확하게 규정하면 된다. 종신일지 10년일지는 조직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이어 남명렬 예술감독은 “레퍼토리 시스템은 우리도 꿈꾸는 바지만 극장을 소유하고 있고,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극장은 세트를 보관할 창고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작품을 매일 혹은 3~4일에 1번 바꿔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레퍼토리화만이 살 길이라는 얘기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백승무 평론가는 “민간극장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금의 지원금 제도로는 레퍼토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 연극계에서 이 제도를 계속 수용할지, 레퍼토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장기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에 부응하는 지원을 요구할지의 문제이다. 레퍼토리 시스템이 아니면 연극은 살 수 없는 구조라는 진단은 명확하다. 대안이 없으면 힘들더라도 이 길을 가야 한다. 최소한 연극제에서만은 실험해볼 수 있다.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내팽개치기에는 우리의 앞길이 막막하다”고 주장했다.
플로어의 김윤걸 연출가는 빗장 풀기의 결정은 한국연극계의 중심에 서겠다는 욕망의 징후라고 했는데, 예술가들이 욕망을 가져야 한다는 건지 버려야 한다는 건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백승무 평론가는 “한국연극의 대표성을 부정하고 기피해오다가 모든 문을 열고 서울연극제를 보면 한국연극은 이거라고 말할 수 있는 책임성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국연극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매를 맞겠다는 중요한 결정이었다. 매와 동시에 영감을 갖는 측면에서 욕망이 드러났다면 좀 더 과감하게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윤걸 연출가는 “개인적으로 서울연극제는 욕망의 희생물이라 생각하고 욕망은 결국 예술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우수진 평론가는 “빗장 풀기는 서울연극제가 창작극뿐 아니라 번역극이나 재공연으로 확장하겠다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기본적으로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좋은 작품은 입소문이 나려고 할 때쯤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재공연 요구를 서울연극제가 담아내면 연극인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공공적인 축제 형식을 띠기 위해 창작극, 초연, 재공연을 막론하고 좋은 공연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표현했다.
연극을 공부하는 한 학생은 평론가들에게 서울연극제뿐 아니라 한국에서 연극평론이 활발해지려면 어떤 점이 해결되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배선애 평론가는 “평론을 평가나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다. 평론은 애정 없이 할 수 없다. 쓴소리 자체를 경계하거나 연극의 영역이 아니라는 시선도 있다. 기본적으로 평론에 대한 시각이 바뀔 필요가 있다. 다양한 매체와 지면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연극제에서도 기획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평론을 결합시켰으면 한다. 객관적인 시각이 확보되면 평론이 활성화되고 현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우수진 평론가는 “평론을 하다 보면 작업자들의 반응이 좋을 수도 있고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주고받을 때의 불편함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나아지는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김철리 연출은 “현장에서 40년 가까이 작업했다. 센 소리만 하는 평론가도 있지만 애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기 작업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작업하는 사람들도 최대한 객관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면서 “서울연극제에는 한 번 참여해보았다. 서울연극제가 고민해야 할 지점을 이렇게 강하게 얘기해준 적은 없었다. 젊었을 때 좀 더 솔직했으면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나에게 서울연극제는

2부 토크콘서트는 마두영 배우 겸 연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남명렬 예술감독은 배우로서 1995년 <이디푸스와의 여행>을 시작으로 2002년 연기상을 받은 <사물의 왕국>,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2009년 <한스와 그레텔>, 2014년 <알리바이 연대기>까지 총 10회에 걸쳐 참가한 10개의 작품 이야기를 공연 사진과 함께 들려주었다. 올해 서울연극제에 처음 참가한다는 이강호 배우가 서울연극제 참가의 의미를 묻자 그는 “1993년 서울에 올라와 2년 만에 처음 서울연극제에 참여했다. 당시 37세였고 위치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김석주 배우 겸 연출은 젊었을 때와 나이 든 지금 배우를 하는 것의 차이를 궁금해했다. “젊은 시절에는 배경이 전혀 없었다. 연기 전공도 아니었고 서울에서 활동하던 사람도 아니었다. 학연, 지연, 혈연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었다. 혼자 현장에서 느끼면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30대에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호사였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만 고민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나락에 떨어질 것 같은 강박과 위기의식이 있었다. 나이가 드니 선배로서의 책임이 커져서 운신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대에 같이 서는 순간은 동료 배우이다. 나의 경험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남명렬 배우의 답이다.
다음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40세에 연기를 시작한 최세나 배우가 지금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자 남 배우는 “어떤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무조건 환영하는 곳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소모품이 될 확률이 높다. 좋은 집단이라면 먼저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관찰할 것이다. 인생은 길다. 당장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속상해하지 말라. 예술 작업은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예술감독으로서 “어떻게 작품을 선정하고 심사할 지가 가장 중요하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고 심사위원을 위촉해서 모두가 인정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심사할 때 기존의 명성이나 작가, 배우, 단체가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결과만이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정리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사진 손홍주

※ 외부 행사의 토론 내용은 서울문화재단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며 [문화+서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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