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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유튜브를 보고선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

나는 책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시절 봉고차에 책을 싣고 아파트 단지로 찾아오는 ‘이동도서관’을 애타게 기다렸다. 중·고교생 시절에는 지역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고, 주말이면 지하철을 타고 대형 서점을 찾았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1판 1쇄 본’을 갖고 있다. 대학생 시절에도 학교 도서관을 애용했다. 책이 가득한 서가에서 풍기는 종이와 잉크 냄새를 들이마시면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으로 울렁거렸다. 명색이 신문기자인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어른이 됐다. 문화부에선 매주 1권씩 서평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강제 독서 중이지만 사회부에서 근무할 때는 책과 사이가 멀었다. 업무와 관련한 사회과학이나 법률 서적을 조금,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추리소설을 조금 읽는 것이 전부였다. 완독한 책이 10권을 넘기지 못하는 해가 많았다. 그런 내가 유튜브는 하루에 2시간 이상 꼬박꼬박 본다. 출퇴근하는 버스에서, 혼밥을 즐기는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부엌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본다. 나는 어쩌다 영상과 가까워지고 활자와 멀어졌을까. 최근 창간 기획으로 ‘요즘, 책 어떻게 읽으세요?’라는 기사를 준비하며 떠올린 상념이다. 이 기획 보도는 서울연구원(서울기술연구원)이 서울시민 1,037명을 대상으로 독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서 출발했다. 10대의 19.6%, 20대의 13.5%는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매체까지 독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강신영, 「디지털 환경에 따른 시민 독서문화 활성화 방안」, 2022) 당장 ‘아전인수도 적당히 해야지!’라는 반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른바 ‘유튜브 독서가’들을 인터뷰한 뒤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반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독서에 내포된 의미는 ‘지식을 익힌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지식을 익히는 매체가 파피루스에서 종이로 바뀌었듯이, 현대에는 활자에서 영상으로 바뀐 것이죠. 글에 적절한 소리나 이미지를 추가한 것인데 ‘책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유튜브에 ‘북튜브’를 검색하기만 해도 상당한 양의 오디오북을 즐길 수 있다

책의 모양은 변해왔다. ‘책’이라는 한자는 죽간이나 목간을 끈으로 엮은 모양을 나타낸 상형문자다. 책이라는 한자가 만들어진 고대의 책과 현대의 책은 모양이 다르다. 이제 책의 모양이 영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가리키는 ‘도서圖書’라는 단어는 ‘그림 도’에 ‘글 서 書’로 이뤄졌다. 특히 ‘서’라는 한자는 ‘가로 왈’과 ‘붓 율’을 합쳐 ‘말을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다. 책이 본래 그림과 글로 이뤄진 것이며 말의 기록이라면, 유튜브도 책이 아닐 수만은 없지 않을까. 그들은 이렇게도 말했다. “종이책을 찾아서 읽을 시간이면 유튜브로 짧은 독서를 한 번 더 할 수 있죠. 좋은 책을 찾는 것도 일이잖아요. 1개를 얻을 시간에 10개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유튜브 알고리즘 기술이 저에게 맞는 영상을 계속 띄워줘 취향에 맞는 독서를 할 수 있어요.” 유튜브 독서가들은 자신의 삶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문학의 경우 영상이 종이책을 대체할 수 없다는 데는 동의했다. 하지만 비문학의 경우 ‘북튜브’와 ‘지식 채널’의 요약 정리된 지식이 가성비가 좋다고 봤다. 종이책은 유튜브에 비해 같은 시간을 투자했을 경우 얻는 지식의 질과 양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실존적 생활에 심오한 통찰보다는 폭넓은 교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튜브로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들은 정작 책의 가치를 지지했다. 이들은 책의 가치를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이 돼보고,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경험이 책의 본질이라고 봤다. 지식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것의 가치를 옹호했다. 북튜브 ‘겨울서점’을 운영하는 김겨울은 이렇게 말했다.

북튜버 김겨울은 구독자 26.5만 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운영하며, 2019년에는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텍스트에 능동적으로 뛰어들어 타인이 돼보는 경험이에요. 책이 독자에게 능동성을 요구하지만, 유튜브는 독자를 수동적으로 만들죠. 유튜브에서 10분으로 요약한다면 특정 내용을 얻을 순 있지만 그 책을 읽는 일과 같지 않아요. 우리가 어떤 시간을 들이는 일에 대해서 너무 가성비적 사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요약해 잘라내는 순간 독서의 풍부함을 못 누리게 돼요.” 하지만 그런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사람마다 다른 가치관의 영역이라 기사로 다룰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그래도 ‘경험의 풍부함’보다 ‘지식의 유용함’을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누군가에게 독서를 강권해봤자 통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야 더 나은 인생을 산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다. 20년 전에는 책을 읽자는 공익 예능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어쩌면 벌써 새로운 세상이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이 여러 번 와도 여전히 책과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종이와 잉크 냄새에 느꼈던 설렘이 문득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

허진무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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