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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공연계 배리어프리 확산 장벽을 낮추는 극장

배리어프리barrier-free 공연이 공연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BTS방탄소년단 서울 공연에서 수어 통역사가 춤을 추면서 통역을 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 배우가 청각 장애 배우에게 수어로 축하 인사를 한 것이 화제가 되기 전부터, 공연계는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를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2021) 중

최근 공연에서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서비스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통역(자막 해설)과 수어 통역,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대, 배우의 움직임, 소리 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음성 해설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시각장애인들이 공연 시작 전 무대에서 공연에 사용되는 의상, 소품 등을 직접 만져보고 설명을 듣는 ‘터치 투어Touch Tour’가 있다. 공연 수어 통역은 일반 통역과는 달라서 공연 전문 수어 통역사가 맡아서 한다. 동시통역이 아니기 때문에 수어 통역사도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미리 대본을 보며 통역을 준비한다. 공연 문자 통역 역시 일반 행사에서 속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입력하는 문자 통역과는 다르다. 대사뿐만 아니라 배경음악, 음향효과에 대한 설명도 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대본을 작성해 공연과 연동해서 보여준다. 음성 해설을 위해서는 작품 배경, 무대, 의상 등의 정보를 전달하는 대본이 별도로 필요하고, 이를 낭독할 음성 해설가가 있어야 한다. 주로 개인 수신기를 통해 음성 해설이 제공되지만, 배우가 직접 무대에서 음성 해설을 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배리어프리에 도전하다

서울문화재단은 2019년 남산예술센터에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과 <7번 국도>를 제작하면서 구자혜 연출의 제안으로 배리어프리 공연을 시작했다.1 남산예술센터 디지털 아카이브 www.nsac.or.kr/archives/incident/H000342019년 4개의 시즌 프로그램에 음성 해설, 수어 통역, 문자 통역(폐쇄형, 개방형)과 점자 리플릿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팬데믹 이후 2020년 12월에는 2020년 시즌 프로그램 4개를 배리어프리 공연 영상으로 제작해 ‘장벽 없는 온라인 극장’에 공개했다.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에서는 청각장애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어린이 창작 공연 <끼리?>를 2021년 10월 무대에 올렸다. 농인학교의 자문과 수어통역협동조합의 협력, 한성자동차 후원으로 수어 통역과 문자 통역을 제공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 만큼 배리어프리 인력 양성에도 앞장섰다. 2020년 서울연극센터 PLAY-UP 아카데미에서는 ‘공연 배리어프리 버전 제작 가이드’ 과정을 개설했으며, 메세나팀에서는 국내 최초로 공연예술 분야 수어 통역 전문가 양성 과정을 운영해 15명의 전문가를 배출했다.
비슷한 시기부터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인력 양성 과정이 잇달아 개설되고 있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는 2020년 ‘무용 음성 해설가 양성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심화 과정을 열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올해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에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 입문 과정’을 개설해 음성 해설과 수어 통역 분야로 구분해 진행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2년 예술극장에서 공연 예정인 6개의 단체와 배리어프리 공연을 준비하면서 지난 3월 온라인 워크숍을 개최했으며, 배리어프리를 적용해 6월 17일 <발이 되기>부터 차례로 공개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극장에서 만나기 위해

인력 양성과 함께 최근 배리어프리 공연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곳은 공공극장이다. 국립극단은 ‘2021 작품개발사업’의 ‘창작공감: 연출’ 주제를 ‘장애와 예술’로 정한 후 1년간 고민하고 창작한 결과물 3편을 지난 3월부터 소극장 판에서 선보였다.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3월 12~20일, 김미란 연출, 이하 <이것은...>)은 농인聾人 배우와 청인聽人 배우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두 배우는 각자의 언어인 한국수어2 ‘보이는 언어’를 수어(手語, Sign language)라고 하며,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농인’이라고 한다. ‘한국수어’는 우리나라 농인들이 사용하는 보이는 언어로, 한국어와는 다른 고유한 형식이 있다. 한국수어는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sldict.korean.go.kr/front/main/main.do와 한국어로 소통했으며, 무대에는 한글 자막과 수어 통역이 제공됐다. <커뮤니티 대소동>(3월 30일~4월 10일, 이진엽 연출)에는 시각장애인 배우 6명, 비장애인 배우 3명이 출연했으며, 관객은 공연장 밖에서 안대를 한 채 이동해 깜깜한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청각, 시각, 뇌병변, 비장애 배우 4명이 출연한 <소극장판-타지>(4월 20일~5월 1일, 강보름 연출) 공연에는 객석과 무대 사이에 경사로가 설치됐고, 출입구부터 비상구까지 점자 유도 블록이 놓였다. 강보름 연출은 “다양한 사람들이 극장에서 만날 때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장애물은 무엇인지, 비장애 중심 공연예술계에 어떤 감각과 태도가 필요할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장애와 예술’이 주제인 만큼 공연별 특성에 맞춰 배리어프리를 세심하게 적용했다. <소극장판-타지>는 휠체어석을 6석으로 확대 운영하고, <이것은...>은 수어가 잘 보이는 1, 2열 좌석을 농인이 우선 예매할 수 있게 했다. <커뮤니티 대소동> 공연 기간에는 극장과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 버스 정류소에서부터 이동 지원 서비스를 운영했다. 국립극단은 2022년 공연하는 작품 3~4편에도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 국립극장은 <소리극 옥이>에 이은 두 번째 무장애 공연 <함께, 봄>을 올리면서 공연 해설과 수어 통역 외에도 점자 안내지를 배치하고,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사전 예약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세종문화회관은 4월 <천 원의 행복> 공연에서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을 선보였다. 현장에서는 수어 통역과 음성 해설을 제공했고, 현장 관람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공연 후 온라인으로도 공개했다.
공공극장에 앞서 배리어프리를 고려해 온 민간 극단으로는 ‘학전’이 있다. 극단 학전의 어린이 뮤지컬 <슈퍼맨처럼!>(4월 2일~5월 22일) 일요일 공연(격주)에는 수어 통역사가 무대 2층에 등장한다. 2008년 초연 이후 2013년 공연에 수어 통역을 1회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재공연 때마다 꾸준히 수어 통역을 하고 있다. 배리어프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극단이 바로 구자혜 작가·연출가가 이끄는 ‘여기는 당연히, 극장’이다. 2018년 시각장애인 인물이 등장하는 공연 <대성당>3 구자혜 연출은 “내 집안에 맹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A blind man in my house was not something I looked forward to)”라는 원작의 문장을 “이 극장 안에 맹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로 변주한 것이 계기라고 밝혔다. 전 회차에 한글 자막을 제공한 이후 한글 자막, 수어 통역, 음성 해설을 공연의 일부로 들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신작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는 국립극단 최초로 전 회차 문자 통역, 수어 통역, 개방형 음성 해설을 제공했다. 작품 기획 단계부터 이를 포함해 창작하고 연습했기에 어찌 보면 ‘전 회차’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필자는 지난 2020년 10월, 잠실창작스튜디오의 ‘같이 잇는 가치’에서 구자혜 연출의 <도착되려 하는 언어들> 공연을 관람한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잠시 눈을 감고 해설만 집중해서 듣거나, 연기하는 것과 같은 수어 통역사의 동작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특히 무대 배경처럼 설치된 한글 자막 스크린은 공연과 하나가 되어 공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구자혜 연출은 “음성 해설, 자막, 수어 통역이 정보의 과잉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오히려 관객은 공연을 따라가기가 용이해졌고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감각할 수 있다고 한다. 관객이 혼선에 빠지거나 피로도가 높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각자 알아서 선택해 공연을 즐기더라”고 말했다. 4 [문화+서울] 2020년 11월호 진실 혹은 대담, <같이 잇는 가치> 오픈포럼 ‘창작으로의 연대’ magazine.sfac.or.kr/html/view.asp?PubDate=202011&CateMasterCd=800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2022) 중

세심한 적용과 제작 지원 필요

최근의 배리어프리 공연은 좀 더 세심하게, 장애 유형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추세다. 먼저 배리어프리가 어떻게 제공되는지 사전에 상세하게 안내한다. 자막 영상을 송출하는 곳, 수어 통역사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관람하기 좋은 좌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각·청각장애인들에게는 휠체어용 장애인석이 오히려 불편하다.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적으로 자리에서 수신기를 착용하고 음성 해설을 듣는다. 문자 통역을 폐쇄형으로 제공하는 경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화면이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어 뒷좌석에 배치하기도 한다. 장애 유형에 따라 제공할 서비스를 좌석까지 연결해서 고려해야하는 이유다.
이렇듯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제작 초기부터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 아무래도 가장 높은 장벽은 비용이다. 음성 해설을 예로 들면 대본 작가, 음성 해설가, 자막 오퍼레이터 등 분야별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현재는 비용 문제로 한 사람이 여러 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다. 수어 통역도 현장에서 2명이 번갈아 해야 하고, 공연 당일에만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연습 단계에도 참여한다. 장애 당사자의 의견 수렴 절차도 거쳐야 한다. 관련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공공기관의 교육과정을 통해 조금씩 인력이 배출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여러 높은 장벽을 넘어 배리어프리 공연이 더는 화제가 되지 않고, 장애인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에만 선택적으로 적용하지 않기를, 배리어프리가 배려가 아닌 필수가 되어 ‘당연한 것들’로 여겨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전민정_객원 편집위원 | 사진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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