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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월호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의 <피부를 판 남자> 경계에 선 예술 혹은 예술의 경계, 그 사이

예술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예술이 자유와 평등의 의미를 전파할 수 있을까? 창작의 자유는 윤리적 경계선을 침범해도 되는 걸까? 예술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논쟁적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하게 그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창의성 없는 재능을 독처럼 품고 있는 예술가가 더 위험한지, 타고난 재능을 지닌 비윤리적 예술가가 더 위험한지 물어도, 결국 그 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경계에 선 예술

2010년대 초, 아랍권 민주화운동이 격렬한 시절에 샘(야히아 마하이니)은 생존을 위해 시리아에서 탈출해 난민으로 살아간다. 그는 종종 음식을 훔치기 위해 전시 오프닝 행사에 난민 친구와 함께 참석한다. 그러다 예술가 제프리(코엔 드 보우)를 만나게 된다. 제프리는 샘에게 자유와 명예, 돈을 모두 갖는 조건으로 샘의 등 피부를 자신에게 팔아, 살아 있는 예술품이 돼달라고 한다. 제프리가 샘의 등에 타투로 새긴 쉥겐협약 비자는 유럽 26개 국가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비자다. 영화 속 예술가인 제프리는 물건이 사람보다 훨씬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 의도로 샘의 등에 비자를 새기고, 샘의 등이 작품으로 전시장에 옮겨지는 순간, 노골적 메시지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지독한 질문이다. 미술품 거래를 목적으로 열리는 전시 오프닝 행사는 누군가에게는 사교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음식을 훔쳐야 하는 생존 공간이다.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은 예술과 인권 문제를 노골적으로 비꼬지만, 그의 연출은 느리고 우아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어 공격적이지 않다. 인신매매를 예술로 포장했다는 윤리적이고 사회적 맥락에 따른 비난과 예술의 창의성이 발현되는 자유 사이, 그 경계를 집요하게 바라본다.

예술의 경계

<피부를 판 남자>는 예술과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예술 소비자인 관객 혹은 미술품 구매자 사이에 빚어지는 모순과 속물적 욕망을 희화화한다. 하니아 감독은 예술과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 시대에도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한 절대 빈곤에 빠진 난민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계에 대한 조롱을 넘어, 동시대성에 대한 질문을 담는다. <피부를 판 남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자신의 피부를 팔아 스스로 작품이 된 시리아 난민 샘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난민 문제, 생존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은 세상에서 과연 예술이 의미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와 사람의 존엄 사이, 그 경계에서 존엄을 지워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놀라운 점은 영화가 실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예술가 빔 델보예가 팀 스타이너라는 남자의 등에 타투를 한 후, 미술관에서 전시했고, 그의 사후에 그의 피부를 액자에 보관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는 실화에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빔 델보예는 영화화에 동의했을 뿐 아니라, 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사실 예술 작품의 윤리와 그 가치를 진심으로 되묻는 <피부를 판 남자> 역시 예술 작품이다. 금기의 영역을 침범하는 나쁜 예술도 있지만, 이 영화처럼 수많은 예술 작품은 동시대 예술과 그 존재 가치를 되묻고, 윤리적 질문을 환기해 왔다. 그래서 어떤 예술은 여전히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는 동시대적 매체로 남아 있다. 윤리적 의심에 빠진 관객과 온통 창작의 장난에 들뜬 제프리의 무신경함이 충돌하면서 생긴 미스터리한 기운은 영화의 속도를 흥미진진하게 끌어올린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히지는 않지만 <피부를 판 남자>가 숨겨둔 마지막 이야기는 모작模作이 된 이들의 삶을 무작정 비난하거나 동시대를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서, 결국 마침표가 아닌 말줄임표 같은 화두를 남긴다.

<피부를 판 남자>(2021)

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

출연 야히아 마하이니(샘 알리 역), 모니카 벨루치(소라야 왈디 역), 코엔 드 보우(제프리 고데프로이 역)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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