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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9월호

막장 드라마를 욕하지 않는 이유 자극의, 자극에 의한, 자극을 위한 드라마

김순옥·문영남·임성한. 한국 막장 드라마의 계보를 이어온 세 작가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매운맛 소재를 다루는 작가들의 신공은 여전하지만 이를 대하는 미디어와 대중의 반응은 달라졌다. 드라마의 개연성, 부적절한 대사나 장면을 비판하는 의견이 줄었다. 대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전개’에 대한 찬사가 뒤따를 뿐이다.

한국 막장 드라마를 이끈 세 주역

한국 막장 드라마의 계보를 만들어온 대표 작가를 꼽는다면 김순옥·문영남·임성한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다. 임성한 작가가 1990년, 문영남 작가가 1991년, 김순옥 작가가 2000년에 데뷔했으니 모두 작가 생활 20년을 넘긴 중견 작가다. 지금이야 이들의 신작 드라마가 방영될 때마다 시청률 고공 행진을 예측하지만 미디어와 대중의 반응은 늘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10년 전 드라마 <아내의 유혹>(김순옥) <조강지처 클럽>(문영남) <신기생뎐>(임성한) 방영 당시 쏟아진 기사의 헤드라인만 훑어봐도 이들의 드라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막장 드라마, 이대로 괜찮나” “막말, 욕설, 핏빛 복수, 무속 신앙으로 얼룩진 안방극장”이라며 작가를 비판하기 바빴다. 2021년 현재까지 세 작가 모두 왕성하게 활동하는데, 그사이 막장 드라마를 대하는 한국 미디어의 태도는 달라졌다. “믿고 보는 주말드라마 강자 문영남” “김순옥 월드, 확장은 어디까지?” “이번에도 먹힌 임성한 효과”라며 비난보다는 인기 요인 분석에 치중한다. 무엇보다 과거 TV 비평이 드라마의 개연성을 지적했다면 지금의 방송 리뷰는 발 빠른 내용 스포일링(기사 제목에 보란 듯이 범인 이름이나 반전 내용을 쓴다)과 시청률 보도, 재미있는 시청자 댓글 받아쓰기, 다음 시즌을 예측할 뿐이다. 10년 사이 반응이 이토록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주의 드라마를 써온 문영남 작가는 최근작으로 올수록 분열되는 가족 사이에 멜로와 스릴러 요소를 가미한다. 방영하고 있는 KBS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는 엄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주요 갈등 요소다. 물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불륜을 하고 또 누군가는 불우한 형편에서도 꿈을 좇으며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부모 세대의 고난과 동생들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장남 서사는 문영남 작가가 주로 쓰는 가족극의 원형이지만 그 사이에 미스터리를 끼워 넣어 극에 물음표를 준다.
임성한 작가는 은퇴를 번복하고 필명 피비Phoebe 로 돌아와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의 시즌2까지 끝냈다. 아마 그의 전작과 가장 다른 모양새를 갖춘 드라마가 <결혼작사 이혼작곡>일 것이다. 그의 전작이 “행복한 가정을 파괴 하는 행위는 천륜에 어긋나며 천벌 받아 마땅하다”는 교훈을 준 것과 달리 신작은 오로지 누가 누구와 부적절한 관계인지, 부유층의 위선과 변명을 길고 긴 대사로 실어 나른다.
시즌3까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김순옥 작가의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역시 시즌마다 ‘주요 캐릭터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가 서막을 연다. 드라마를 봤다면 알겠지만, 누가 누구를 왜 죽였는지는 중요하면서도 안 중요하다. 오늘의 선한 인물이 내일은 살인자가 될 수도 있고, 악역인 줄 알았던 인물이 알고 보니 선량할 수도 있다. 오늘 방영분에서 죽은 인물이 진짜 죽었을까?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시청자 반응은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도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의 작가들은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반전과 호기심 유발이다. 또한 포털과 유튜브에서 1분 영상만 보는 시청자에게 떡밥도 줘야 한다. “○○인 줄 알았던 오윤희의 믿을 수 없는 과거!” 자극적 섬네일을 달고 100만 조회 수를 달성하는 것 역시 드라마의 의무다. 지금 시청자와 작가는 대립항에 있다. 얼마 전 시즌3 방영을 예고한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드라마 내내 마주친 적도 없던 인물들이 재혼식을 올리며 시즌2를 마무리했다. 이 판에서 시청자는 어차피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작가는 시청자에게 상상할 수 있는 퍼즐을 던져주지 않는다. “생각은 내가(작가) 할게, 당신(시청자)은 그냥 즐겨.”

시청률 높으면 장땡

김순옥 드라마에서 낯선 캐릭터가 범인으로 밝혀져도, 임성한 드라마에서 뜬금없는 인물끼리 결혼해도 비판은 적다. 다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는 한없이 너그럽다. “킬링타임용 드라마에 뭘 요구해? 재미있으면 됐지.” “앞뒤 안 맞는 이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거야!” 이런 의견들이 지배한다. 김순옥 작가는 자기 드라마를 막장이라 폄훼하는 시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삶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 아프고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가 드라마를 보는 사이에는 고통을 잊게 한다는 데 자부심이 있습니다.” 과거 막장의 요소가 자극적 장면을 이어 붙여 시청각적으로 빠져들게 한다면 지금 드라마는 더 빠른 롤러코스터를 만드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TV 비평은 드라마에 ‘막장이 아닐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콘텐츠 전쟁에서는 시청자 눈길을 길게 사로잡는 자가 승자다. 전 세계에 판매되며 제작비가 몇 배로 커진 드라마 시장에서 실패하고 싶은 제작자는 없다. JTBC 드라마 <SKY 캐슬> <부부의 세계>가 첫 회에 미스터리를 던지고 상류층의 욕망을 전시해 성공한 후 다수의 드라마가 그 방식을 취하는 이유다. 성공한 사례를 따라해 ‘실패할’ 가능성을 줄인다. ‘막장’의 요소가 시청률을 담보 한다면 어느 드라마건 그걸 안 할 수는 없고, 막장 드라마와 막장이 아닌 드라마 사이에는 변별성이 사라진다. 막장과 명품 사이에 변별성이 없다면, 일단 많이 보게 해야 한다. 오직 그것만이 지금 콘텐츠 시장의 정의이며, 정답이다.

김송희 《빅이슈코리아》 편집장, 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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